brunch

북적북적 책읽기

by 김시월

재밌게 읽었던 책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까먹어버렸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지나간 책들만 생각하면 그냥 자신감이 넘쳤던 것이었다. 그래서 독서기록 어플을 찾아봤다. 표지로 저장하는 어플도 있고, 리뷰까지 같이 쓸 수 있는 어플도 있었는데 내 눈에는 '북적북적'이라는 어플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눕힌 모양으로 기록하는 어플인데 높이에 따라 귀여운 이모티콘 같은 것들을 줬다. 아직 몇 개 못 받았는데 더 받고 싶어서 책을 읽게 만든다.


책을 읽고 기록을 남겼던 건 초등학생부터였다. 방학에 써야 하는 일기 말고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했다. 정확히 기억하는 건 3학년 때. 책을 좋아해서 교내 도서실에 자주 갔었다. 그때는 사서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보다 좋았다. 항상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출과 대여를 해주셨다. 잠깐 사서의 꿈을 꾸긴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그건 지옥일 거라고 생각했다.


도서실에 자주 가다 보니 어떤 책이 인기가 많은지 어떤 책이 독후감 쓰기에 쉬운지 알 수 있었다. 두꺼워도 잘 읽히고 독후감으로 남길 만한 내용이 있는 책, 얇은데 글씨체가 읽기 싫고 내용이 어려운 책이 있었다. 도서실과 친하지 않은 친구들은 후자를 선택했고, 나 같은 애들이 전자를 선택해서 금방 읽고 독후감을 채울 수 있었다.


독후감을 쓰면서 얻는 장점 중 하나는 글씨체 교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때 내 또래 친구들은 글씨를 예쁘게 쓰기 위해 노력을 했다. 억울하지만 타고나는 친구들은 제외였다. 나는 독후감을 쓴 후에도 책을 반납하지 않고 공책에 그대로 옮겨 썼다. 지금은 필사로 부르며 많은 사람들이 책을 옮겨 쓰지만 그때는 우리에게 그저 노동일뿐이었다. 그래도 그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책이라도 옮겨 썼으니 지금의 글씨체가 나온 게 아니겠나.


우리 학교에는 독후감을 많이 쓰는 아이들에게 주는 상이 있었다. 나도 작은 상을 받아봤지만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큰 상이 아니라서 더 기억을 못 하는 것 같다. 이 상을 받기 위해 반 친구들은 서로의 독후감을 숨기기 바빴다. 몇 줄만 훔쳐봐도 책에 내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어서 책을 읽지도 않고 읽은 척 독후감을 쓰는 친구들이 있었다. 물론 그런 친구들은 상을 받진 못했다. 최소한의 양만 채우려는 친구들이 많았으니까.


그게 벌써 몇 십년 전인데 이제야 독후감을 다시 쓰려고 한다. 기록을 남기는 것에 이유가 몇 개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기억력이 갈수록 나빠져서 더 늦기 전에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분명히 도서관에서 읽고 난 후 소장가치가 있어서 산 책인데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안 나는 책을 발견했다. 다시 읽어야 하는데 새로 나온 책들도 궁금하고, 그렇다고 그냥 두기엔 짐 같고. 어렵다.


어렵지만, 벌써 2023년 하고 두 달이 지났다. 힘들다고 미루기엔 두 달 동안 남긴 게 없으니 힘내서 시작해야겠다. 그래서 궁금한 게, 요즘은 어떤 책이 인기가 많지? 인기보단, 어떤 책이 재밌을까. 가장 최근에 읽은 책 중 <홍학의 자리>는 앉은자리에서 끝냈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일주일 동안 필사를 하면서 읽었다. 이런 책이 있다면 더 알고 싶다. 서점을 더 열심히 다녀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진짜 발리에서 생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