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기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눕는 것이다. 나에게 침대란 그저 '잠'을 위한 가구이고, 눕는 걸 안 좋아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다들 뜨악!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눕는 것도, 자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은 왜 자야 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나였는데. 근데! 요즘은 자는 시간을 기다릴 정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잠을 좀 자야 피로가 풀리니까. 피로회복에 좋다는 약을 챙겨먹고 있지만 뚜렷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두세 달은 더 챙겨 먹어야 할 것 같다.
하루를 바쁘게 보냈다면 마무리까지 잘해줘야 다음날을 맞이할 수 있다. 만약 하루를 대충 마무리 지었다면 다음날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태가 될 것이다. 마음이든 몸이든.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니 몇 가지 루틴이 정해졌다.
1. 배를 채운다.
왜 바쁘게 사는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거 아닌가? 요즘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들어온다. 그 사이에 먹는 거라곤 김밥 한 줄 정도. (김밥을 먹을 땐 내가 뭘 위해서 이러나 싶다.) 김밥으로 버틴 내 배는 더 많은 걸 달라고 소리친다. 그럼 하루를 고생한 날 위해 나름 맛있는 저녁을 챙겨 먹는다. 매일같이 고기를 먹을 순 없고. 적당히 그날그날 땡기는 음식을 먹는다. 요즘은 분식에 미쳐있다. 저녁 늦게 분식을 먹기엔 건강에도, 또 옷 사이즈에도 문제가 생겨서 주말마다 먹는다. 심지어 더 맛있는 분식집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얼마나 순대를 좋아하게 됐냐면, 순대 빼고 내장만 골라먹었던 내가 요즘엔 그냥 다 먹는다.
와중에 속상한 건 순대와 떡볶이를 동시에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원망스러운 배가 둘 다 감당하기는 벅찬가 보다. 나도 먹방 유튜버처럼 한 번에 다양한 종류를 먹을 수 있는 위를 가지고 싶다. 물론 그렇게 되면 식비를 감당하기가.. 하지만 먹자고 하는 짓인데.. 그렇다고 먹는 것에만 돈을 쓰기가..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2. 책상정리를 한다.
나는 참 정리정돈과 거리가 멀다. 평소에는 이것저것 꺼내놓고 대충 모아두다가 하루 날 잡고 정리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정리를 안 한다고는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잘한다고도 할 수 없다. 근데 책상에서 할 일이 많아서 책상정리는 기본이다. 물론 책상에 있던 물건들이 잠시 어딘가로 이사를 가는 것뿐이지만.
책상에 꼭 있어야 하는 물건이 있다. 달력, 안경집, 멀티탭, 연필꽂이와 음료수. 달력은 휴대폰에도 날짜를 쉽게 볼 수 있게 해놨지만 한눈에 봐야 좋고, 또 은행 달력이 있으면 돈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풍수지리(?)상 책상에 뒀다. 퇴근 후 바로 렌즈를 빼자마자 안경으로 갈아탄다. 안경은 나의 두 번째 눈이자 나의 앞길을 밝혀주는 빛이다. 그렇다고 안경이 항상 안경집에 들어가 있는 건 아니다. 멀티탭은 나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준다. 주로 쓰는 게 휴대폰, 노트북, 태블릿인데 멀티탭이 3구다. 딱 세 가지를 위한 목숨연장도구. 휴대폰은 생각보다 충전을 자주 하지 않는다. 아마 셋 중에 가장 충전을 많이 하는 건 태블릿일 것이다.
지금 내 시야에 있는 것들을 이렇게 나열하니 정말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없어도 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어떤 것이든 이유 없이 존재하진 않는다.
3. 일기쓰기.
일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언젠가 일기에 대한 긴 글을 쓰고 싶다. 내가 내 인생에 이렇게 만족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일기 덕분이다. 일기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이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쓰길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거창하지 않다. 일기는 말 그대로 그날 하루를 적는 것이다. 근데 어떻게 매일매일이 똑같이 흘러갈까. 물론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내가 느낀 감정이나 생각이 다를 것이다. 달라야만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에 별 거 아닌 일이어도 난 뭐든 일기장에 하루를 기록한다. 하루 마무리 루틴 중 가장 중요한 루틴이다.
3-1. 일기 쓰는 법.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쓰고 있다고 하니 누군가 물었다. "일기는 어떻게 써?" 그래. 그럴 수 있다. 일기 쓰는 방법을 잊어버렸거나, 모를 수 있다. 나에겐 학교 숙제였지만 그런 숙제를 내주지 않은 학교도 있었을 테니까.
방법은 간단하다. 일기를 쓰기 전, 하루를 곱씹어 본다. 사실 나는 아침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열하는 걸 좋아한다. '무슨 꿈을 꾸다가 몇 시에 깼는데 더 잘까 고민을 했다.' 이렇게 시작을 하다가, 그 꿈에 나온 인물에 대해 쓰기도 하고, 꿈을 꿔서 어떤 기분이었는지 쓰기도 하고. 근데 꿈을 안 꿨다면? '오늘은 꿈을 안 꿨다. 신기하다. 내가 꿈을 안 꾸다니.' 등으로 마무리해도 된다.
하루는 말도 안 되게 맛없는 제육볶음을 먹은 적이 있었다. 제육볶음이 맛없기가 쉽지 않은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온 한 식당이 떠올랐다. 회기 쪽이었나. 서울이었는데 고기를 못 먹는 사장님이 고기가 상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고기를 먹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 시도까지 하면서 맛을 보완하려고 했고, 결국 아직도 줄서서 먹는 식당이 됐다고 한다. 맛있는 제육볶음? 조만간 먹으러 가야지. 하고 마무리해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기의 가장 큰 장점은 나의 감정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 든 예시는 보통의 일기를 쓰는 것과 관련된 예시였고, 나는 감정을 정리하는 용도로 더 많이 쓴다. 기분이 안 좋았다거나, 누군가에게 서운한 행동, 혹은 정말 좋았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빠지지 않고 전부 기록한다. 그걸 일기로 쓰면서 정리하는 것이다. 좋든 나쁘든 나의 감정을 직접 마주하는 건 방을 청소하듯 마음을 청소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도 일기를 쓰면서 '이런 내용으로 브런치를 써볼까?' 해서 쓴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별거 아니지만 공유하고 싶기도 했다. 이제 내일 출근을 위해 침대로 향해야 한다. 오늘은 어떤 꿈을 꾸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