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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전시하기

by 김시월

나는 매일 일기를 쓰지만 일기에 적지 않는 것이 있다. 우울한 문장, 부정적인 단어,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던 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 일기는 나의 하루를 기록하는 것이지만, 미래의 내가 몰랐으면 하는 마음에 언젠가부터 긍정적인 내용만 쓰고 있다.


그랬던 내가 오늘은 일기장 한 페이지를 모두 우울한 문장으로 담았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우울한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잘 우울해하지도 않고 내 마음에 우울한 것들이 보통 없어서 우울과 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일기장에 해소하고 싶었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일기장에게 하소연하고 싶었다. 오늘 이런 일들이 있었고, 너무 서운했고, 너무 슬펐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잠깐 미래의 나에게 미안했다. 미래의 나는 이미 오늘 일을 기억하지 못할 텐데 왜 굳이 기록으로 남겨! 하지만 미래의 나도 뭔가를 알긴 알아야지. 과거의 나는 슬퍼했지만 그걸 이겨내고 미래의 나까지 잘 도달했다고 좋아해야지. 뿌듯해하고 나 자신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줘야지.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나는 한 번에 감정을 쏟아내면 다음 날에는 괜찮아지는 능력이라고 하기에 소소한 능력이 있다. 그래서 슬픈 일이 있을 때 일기에 쓰지 않고 혼자 감정을 쏟아내곤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일기에 쓰지 않아도 됐었다. 나 혼자 다스릴 수 있는 감정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일기에 쏟아냈다. 괜찮다. 쏟아내도 괜찮다. 어차피 누가 볼 일기장도 아닌데. 오직 나만 보고, 나만 쓸 수 있는 내 일기장인데.


맞다. 오늘은 쏟아내도 풀어질 일이 아니라서 일기장에 남겼다. 효과는? 사실 부족하다. 그래서 마지막 수단으로 이 페이지를 열었다. 아직도 쏟아낼 것이 많은가보다. 내가 오늘 좀 힘들었나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몇 문단 안 되도록 쏟아내고 있는 지금, 점점 괜찮아지고 있다. 심지어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도 올라간다. 난 나를 정말 잘 안다. 마지막 수단으로 브런치를 여는 내 자신이 웃기기도 하다.


어쩌면 왜 다른 사람들이 보는 공간에 나의 우울을 전시하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난 꼭 누군가 봐주기 위해서 쓰는 건 아니다. 배설욕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뭐든 쏟아내야 털어지는 모양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일기를 쓰기 전에 한 번 쏟아내봤지만 부족했고, 일기에 써도 아직 모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브런치에 쓰는 거지 공감해달라거나 위로해달라고, 응원해달라고 쓰는 게 아니다. 오직 내가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해야 괜찮아지기 때문에.


그래서 추천한다. 나처럼 주변 사람들의 위로로는 해결되지 않는 조금 우울한 일이 있을 때, 첫 번째는 혼자 쏟아내보고 (방법은 다양하다. 소리지르거나 한참을 그 일만 생각하거나) 두 번째는 일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일에 대해 적어보고, 그래도 해소가 안 된다면 마지막에 브런치에 들어오자. 그리고 나의 우울을 전시하자. 글을 올렸을 때 어떤 반응이 날 찾아올지는 생각하지 말자. 그냥 적자. 무작정 적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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