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할로윈, Rob Zombie
여기 한 중년 뮤지션이 있다. 성공적인 록밴드 생활을 뒤로하고 솔로 뮤지션으로 데뷔한 후 오히려 밴드 시절보다 더 큰 음반 판매량을 올렸고, 부업으로는 영화감독도 한다. 마약은커녕 술담배도 건강을 해친다며 하지 않고, 도축당하는 동물들이 불쌍하다고 본인만의 농장을 차리고 순수한 목적으로 자연 친화적으로 소, 돼지 등을 기르며 40년 이상을 채식주의자로 살고 있다. 예쁜 와이프를 만나 결혼하여 오랜 기간 동안 구설수 하나 없이 건실하고 금슬 좋게 함께하고 있다. 위의 설명만을 보자면 마치 잘생기고 멀끔한 록 가수 존 본 조비 같은 사람을 머리에 떠올리기 쉽지만, 그런 외양과는 거리가 먼 록계의 이단아, 롭 좀비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의 외모만을 봤을 때 앞서 설명한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시부야역 육교 아래 노숙자도 명함을 못 내밀 것 같은 막 기른 장발의 머리와 수염, 그런 외모를 더 기괴하게 부각시키는 과한 메이크업과 분장, 거기에 농장 주변을 기웃거리는 히치하이커들을 도륙한 후에 뺏어 입은 옷일까 싶을 정도로 마구잡이로 입은 듯한 무질서한 패션 센스까지 롭 좀비의 외모는 건실하고 건강하고 말쑥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가 이러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이유는 그의 음악과 모든 창작 활동에 영감을 주는 요소들이 오래된 호러 영화와 몬스터 무비, B급 SF 영화들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Dragula', 'Living Dead Girl', 'House of 1000 Corpses' 같이 그의 트랙 제목들의 과반수 이상은 오래된 호러나 B급 영화의 타이틀에 대한 오마주이거나 그가 만들고 싶은 호러 영화의 타이틀인 경우가 많다. 첫 솔로 앨범 타이틀인 'Hellbilly Deluxe' 역시 컨트리 명반인 'Hillbilly Deluxe'에 대한 패러디 센스가 짙게 배어있으며, 활용하는 전자음이나 효과음에서도 고전 몬스터 영화나 호러에 대한 오마주가 강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대다수의 음악팬은 아마 영화 '매트릭스'의 클럽 씬의 BGM이었던 'Dragula'의 리믹스 버전으로 그를 처음 접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절에 나는 중학생이었는데 친구 중 하나가 "너 Dragula 부른 가수 실제로 생긴 거 봤어? 진짜 처참하게 생겼다."라고 했는데 너무 큰 기대(?)를 해서 그런지 막상 실제로 그의 얼굴을 봤을 때 '생각보다는 괜찮은데? 멋진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그의 음반의 요소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한 가지 요소를 딱 찝어서 말하기가 힘들다. 전체적으로 연주는 메탈과 일렉트로닉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렇게 테크닉적으로 훌륭하다거나 사운드 믹스가 죽여주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창력은 좋게 봐줘도 '노래를 잘한다' 혹은 '그로울링과 스크리밍이 끝내준다'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무리가 있는 수준이고 캐치한 멜로디가 있는 것도 딱히 아니다. 그러나 이 별 것 아닌 것 같은 요소들이 그가 일관되게 짜놓은 강렬한 컨셉트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질 때 정말 '롭 좀비만의' 분위기가 형성이 되며,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성공적인 뮤지션으로서 아직까지도 록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로 설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내세우는 전체적인 음악적 세계관에 있어서 그것이 단순한 기믹에 멈추지 않고 거기에는 그의 인생과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들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의 디스코그래피 전체에서 딱히 '이건 졸작이다'라며 까내릴 만한 정도의 음반은 없지만, 그래도 그의 솔로 1집인 'Hellbilly Deluxe'의 퀄리티에 미칠 수 있는 앨범은 이후 그의 커리어에서 없었다고 생각한다. 기량이 전성기에 오른 록 뮤지션이 "이게 나다. 온전히 받아들여 봐라."라며 그의 모든 걸 하나의 음반에 담아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졌고, 그것이 단순한 메탈 씬을 넘어 메인스트림까지도 먹힌 경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사랑하는 B급 영화 및 만화의 정서가 마치 눈앞에 펼쳐지듯이 선명하게 청자에게 전달되며, 'Dragula', 'Superbeast', 'Living Dead Girl' 같은 기괴하면서도 훌륭한 트랙들이 리스너의 기억 속에 확실하게 각인되어 버린다. 굳이 싱글컷 되지 않은 트랙들이라도 'Demonoid Phenomenon'이나 'Meet the Creeper' 같은 곡들도 굉장히 훌륭하고 인상적이다. 이후 앨범들에도 'Scum of the Earth'나 'Feel So Numb', 'Foxy Foxy', ‘What?’, ‘Great American Nightmare’ 등 대중적으로도 사랑받은 인상 깊은 트랙들이 수두룩하지만 이 앨범 정도로 타이트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음반은 그의 음악인생에서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인더스트리얼 메탈이라고 많이 분류되지만, 사실 그의 음악은 장르 자체로 보기보단 그냥 '롭 좀비의 음악'이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전 밴드인 화이트 좀비 시절을 회상할 때도 그는 "우리는 항상 어떤 씬에도 속하지 못했다. 메탈 밴드들과 어울리기엔 너무 얼터너티브했고, 얼터너티브 장르의 밴드들에 비하면 너무 기괴하고 헤비했다."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만큼 밴드 시절부터도 그의 음악적 성향은 한 마디로 규정짓기가 힘들었던 것이 아닐까. 하나의 장르로 분류되기는 힘든 음악이지만 의외로 그가 이후 밴드들에게 미친 영향은 꽤 크다고 생각한다. 그의 친동생이 프론트맨으로 이끄는 밴드 Powerman 5000을 비롯하여 Dope, Static-X까지 그에게 영향을 받은 듯한 밴드들이 꽤나 있으며, 그와 동시대에 비슷한 음악을 했다고 할 수 있는 Marilyn Manson이나 Nine Inch Nails에 비해 그도 만만치 않게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다고 볼 수 있겠다.
아쉽게도 그가 음악 못지않게 열정을 지니고 임하고 있는 영화감독 쪽의 커리어는 상대적으로 많이 아쉬운 편이다. 기본적으로 'The Devil's Rejects' 정도를 제외하면 평론가와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 거의 없고 필모그래피 전반이 졸작으로 채워져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의 영화를 몇 편 감상한 입장에서 그가 객관적으로 영화를 못 만드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 그는 일반적인 주인공이 아니라 몬스터나 살인자의 시선에 더 이입하여 영화를 만드는 편이고 스토리와 내러티브보다는 분위기와 자신의 취향을 작품에 녹여내는 데에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쩌다가 그게 잘 얻어걸리면 좋은 작품이 나오고 그런 요소들이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그것이 일반적인 시선에서는 졸작으로 인식되는 것이라고 느낀다. 어쨌든 악평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소신대로 졸작을 계속 장인정신으로 찍어내는 것도 참 그 다운 일이고, 세간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와이프를 영화의 주연으로 내세우며 애처가임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도 재미있다. 누구보다도 동물을 사랑하고 가정적이지만 일반인이 공감하기 힘든 잔인하고 기괴한 호러 영화를 만드는 남자,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지만 어두운 세계관이 진하게 녹아든 메탈 음악 씬의 한가운데에서 성공을 거두고 흔들리지 않는 장인정신을 내세우는 롭 좀비,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그가 음악사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당당히 한 획을 긋고 여전히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아티스트임은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