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멘 뉴메탈 음악대 Slipknot
록과 메탈의 역사에서 가장 기이하고 속된 말로 돌아이 같은 밴드나 뮤지션을 꼽으라고 할 때 흔히 등장하는 이름들은 보통 Mayhem, GG Allin 등의 자기 파괴적이고 실제로 범죄에 가담했던 이들이거나 Ozzy Osbourne처럼 비둘기와 박쥐를 뜯어먹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펼친 사람들이다. 그런데 비교적 현대의 록/메탈 밴드 중에 이런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들을 꼽는다면 그건 아마도 Slipknot일 것이다. 지금은 멤버 중 과반수 이상이 번듯한 가장들인 데다가 나름 멤버 개개인이 밴드와 솔로 및 프로젝트 활동까지 착실하고 성실하게 수행하는 이들이기에 사실 Mayhem과 Slipknot을 동일선상에 놓고 보는 데에는 큰 무리가 있는 편인데 상대적으로 멀쩡하고 건실한 록밴드인 슬립낫은 왜 대중에게 이런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일까?
아마 일차적으로는 그들의 멤버 수와 비주얼을 꼽을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는 많아도 5~6인 정도로 구성되는 록밴드 포맷을 한참이나 벗어난 9명의 멤버가 슬립낫이라는 거대한 괴생명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들 모두가 마치 슬래셔 호러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살인마를 연상시키는 가면을 쓰고 등장하며, 초창기에는 코리 테일러와 조이 조디슨 정도를 제외하면 멤버들의 맨얼굴도 공개하지 않았다. 9명이라는 다소 과해 보이는 멤버 수에 마스크를 이용한 신비주의와 공포스러운 비주얼이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초창기에는 라이브에서 멤버들이 서로의 몸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9명의 마스크맨들이 무대에 올라가 속된 말로 개난장을 피웠으니 지옥에서 올라온 텔레토비를 보는 것 같은, 이세계의 존재들을 목격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강렬한 비주얼에도 만약 음악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면 슬립낫이라는 이름이 메탈 역사상에서 큰 존재감을 과시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이들과 동시대에 라이벌로 꼽혔던 또 다른 마스크 착용 메탈밴드인 Mushroomhead가 당시에 준수한 퍼포먼스와 음악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Sun Doesn't Rise'의 반짝 히트 이후에 슬립낫 정도의 성공을 거두진 못했던 것, GWAR가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기는 하지만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진 않은 점 등을 생각하면 Slipknot은 비주얼과 기믹이 인상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비슷한 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음악적으로 더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메이저 데뷔 1집이라 할 수 있는 셀프 타이틀 앨범 'Slipknot'과 2집 'Iowa'는 이미 Korn의 데뷔 앨범과 Sepultura의 'Roots'를 통해 초창기 뉴메탈의 공식을 정립한 Ross Robinson이 프로듀싱을 맡았는데 그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한층 더 진일보한 정신 나간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당시에 슬립낫의 앨범을 듣는 건 단순한 청취를 넘어서 일종의 체험과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신병자의 오두막에 강제로 초대받아 원치 않는 그의 접대(?)를 받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Eyeless'의 막 나가는 가사와 스피드, 'People=Shit'의 어마무시한 파괴력, 이 많은 요소들을 대체 어떻게 한 트랙에 다 쑤셔 넣는 게 가능할까 싶었던 'Spit it Out'의 타이트한 숨막힘까지 리스너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시험하는 듯한 트랙들이 앨범의 러닝타임 내내 쉴 새 없이 귀와 정서를 자극했다.
본래는 Stone Sour의 보컬이었던 코리 테일러가 Slipknot에 합류하게 된 과정도 굉장히 흥미롭다. Slipknot은 본래 미국의 Iowa 주의 Des Moines라는 지역의 로컬 메탈 밴드였는데, 이들에게 가장 눈엣가시였던 존재가 바로 라이벌 밴드인 Stone Sour였다고 한다. 비대중적인 메탈을 고집하는 Slipknot에 비해 Stone Sour는 그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더 대중 친화적이기도 했는데, 두 밴드 간의 라이벌 의식이 꽤나 강력했기에 당시 팬들의 회고에 따르면 두 팀 사이에 언제 싸움이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고 한다. Kerrang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느 날 코리 테일러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가게에 슬립낫의 멤버 숀과 조이가 들이닥쳤는데 이들은 다짜고짜 그에게 "당장 우리 밴드에 가입하지 않으면 널 이 자리에서 패버리겠다."라고 했고, 코리 테일러는 슬립낫의 합주에 반강제적으로 참여한 후에 밴드 가입을 확정했다고 한다. 물론 인터넷에는 Slipknot과 Stone Sour가 지역 밴드 라이브 대회에서 대결한 후에 Stone Sour가 패배하여 내기에 진 코리 테일러가 울며 겨자 먹기로 슬립낫에 가입했다는 설도 있고, 평소 슬립낫을 인상적으로 생각했던 그가 자발적으로 찾아가서 보컬로 합류했다는 이야기도 있기에 어느 쪽이 정설인지 확신하긴 어려울 것 같다.
9인의 멤버 중 특별히 빠지는 이가 없으나 개인적으로는 슬립낫 음악의 핵심은 드러머 조이 조디슨과 베이시스트 폴 그레이가 형성하는 '이 위에 노래를 넣어볼 테면 해봐라'라는 패기가 느껴지는 막 나가면서도 다채로운 그루브, 그리고 어려움 없이 그 괴랄한 박자 위에서 적재적소에 랩과 멜로디와 그로울링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보컬 코리 테일러의 합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뉴메탈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슬립낫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힙합 비트보다는 스래쉬 메탈의 그루브로 느껴지는 박자가 자주 등장하며 이런 포맷 위에 어설프게 랩을 했다가는 촌스럽고 싸구려 느낌이 가득한 엉터리 음악이 되어버릴 위험이 크다. 그러나 코리 테일러는 40대 후반에도 젊은 힙합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며 트랩 비트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만만치 않은 내공과 랩 실력을 가졌기에, 'Spit it Out'과 같은 트랙에서 다른 보컬이라면 어설픈 랩을 시도하다가 좌절하거나 어설픈 그로울링으로 간극을 메웠을 부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면돌파하여 훌륭한 보컬 라인을 만들어냈다.
이후 3집부터는 거장 릭 루빈의 프로듀스 하에 막 나가는 느낌을 자제하고 좀 더 서정성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올드 팬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으나 또 다른 팬층을 유입시키고 꾸준히 준수한 퀄리티의 음반들을 발매하며 지금까지도 메탈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은 개인적으로 슬립낫 음악의 핵심이었던 그루브를 형성하는 두 멤버 조이 조디슨과 폴 그레이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이후 그들의 음악에서는 뭔가 채울 수 없는 공백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조이 조디슨은 2021년에, 폴 그레이는 2010년에 각각 사망하였고, 게다가 피노키오 마스크로 나름의 귀여움(?)을 자랑하던 멤버 Chris Fehn까지 밴드를 탈퇴하고 멤버들을 고소함으로 인해 슬립낫은 예전만큼의 타이트한 가족적인(?) 분위기를 자랑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 이들이 어떻든 간에 처음 메탈 씬에 Slipknot이라는 머리 9개가 달린 괴수가 등장했던 순간만은 메탈 팬들의 뇌리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