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부 형들의 랩메탈 Papa Roach
거친 근육질 마초들이 판을 치는 듯 보이는 메탈의 세계지만 의외로 밴드 멤버들은 학교폭력의 피해자이거나 과거에는 말라깽이 울보였던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의 울분과 분노를 승화시켜 스스로를 거친 록커로 담금질하는 눈물 서린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기에 야생마의 갈기처럼 머리를 기르거나 과감히 삭발을 하고 가죽옷과 근육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가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슬픈 마초들로 가득한 록과 메탈의 무대에서 밴드 Papa Roach는 이런 면에서 볼 때 조금은 이질적이다. 시종일관 에너지가 넘치고 비교적 유쾌하며, 근육질은 아닐지라도 건강해 보이는 만년청년 같은 모습으로 무대 위를 날아다닌다. 랩메탈부터 얼터너티브 록까지 그 시기의 자신들의 기분 따라 장르를 예고 없이 변화시키기도 하며 뜬금없이 스쿨 밴드들의 단골 레퍼토리인 Blur의 Song2를 커버하면서 관객과 함께 뛰어노는 등 가오 잡고 인상 쓰는 메탈 밴드들의 통상적인 모습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실제로도 밴드의 초창기 멤버인 보컬 Jacoby Shaddix와 드러머 Dave Buckner는 고등학생 시절 미식축구를 하다가 처음 친해졌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무대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유쾌하면서도 건강한 에너지는 뭔가 깐죽대고 뒤틀린 느낌이 전해지는 림프비즈킷의 라이브와 차별화되는 무언가가 있다. 제대로 된 표현은 아니지만 이들이 한창 히트할 당시에는 국내 매체 중 하나에서 파파 로치를 가리켜 "미국의 쿨 같은 팀"이라고 써놨으니 당시 이 밴드의 이미지가 어땠는지 짐작해 볼 만한 에피소드이다.
사실 이들의 메이저 데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Infest'는 조금만 삐끗했어도 흔해빠진 유행에 편승한 랩메탈 밴드의 함량미달 음반으로 묻힐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Papa Roach의 1집에서 특별한 밴드의 개성이 느껴지거나 엄청난 재능이 보이는 부분이 전무하며, 처음 메이저로 데뷔하는 록밴드의 의욕과 열정과 에너지만으로 꽉 찬 앨범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Korn의 음울하면서 뭔가가 기어오르는 듯한 불쾌한 기운, Limp Bizkit의 저속한 깐죽거림, Deftones의 끈적한 이끌림, Linkin Park의 잘 빠진 깔끔함 등 당대의 뉴메탈 밴드들에게는 그 개성으로 인해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특유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만한 이미지와 독보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반면에 Papa Roach의 1집 시절 이미지는 그냥 '힘과 에너지와 의욕이 넘친다' 정도였던 것 같다.
실제로도 이들의 1집 노래들의 라이브 무대 영상을 보면 보컬 Jacoby Shaddix(당시에는 스스로를 Coby Dick이라고 칭했다)가 시종일관 숨이 차서 헐떡이는 걸 볼 수 있는데 의욕이 넘쳤던 탓인지 쉴 틈 없이 랩과 멜로디와 스크리밍으로 모든 곡에 빈 공간 없이 가사를 꽉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다소 루즈한 템포 때문에 리스너에게는 쉬어가는 곡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Between Angels and Insects' 같은 곡도 막상 따라 불러보면 보컬의 지구력을 갉아먹는 엄청난 밀도와 난이도에 경악할 수 있다. 대학생 시절 당시에 이 곡을 카피하는 친구들이나 타 과 밴드 동아리들이 많았는데 그중 과반수 이상이 3분 지점에 지르는 부분에서 삑사리를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몰개성한 의욕과 에너지만으로 점철된 듯했던 이들의 1집은 어째서인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랩메탈/뉴메탈 장르에서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앨범 중 하나로 남아있다. 어쩌면 뉴메탈의 침체기 이후 유행했던 이모코어의 정서가 가사에 녹아들어 있었기에('Last Resort'나 'Broken Home' 같은 곡의 가사는 뉴메탈보다는 이모코어와 접점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의외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일 수도 있으며, 상대적으로 더 건강한 느낌의 사운드와 그루브에서 호불호 없이 많은 리스너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들이 갖고 있던 순수하게 높은 에너지의 레벨이 보편적으로 진입장벽을 낮추었고 많은 리스너들에게 Korn이나 Deftones는 부담스러워도 Papa Roach는 들을 만하다고 느껴지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유쾌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밴드이지만 이들에게도 당연히 어두운 면은 있다. 앞서 잠시 얘기했지만 'Last Resort'나 'Broken Home' 같은 곡의 가사가 emo의 정서에 가깝다고 이야기한 것도 그 깊이가 깊진 않지만 멤버 스스로의 우울한 가정환경이나 자살충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1집 당시에도 이들을 가리켜 '마냥 신나는 밴드'라고 지칭하기는 좀 힘들었다. 또한 보컬인 Jacoby Shaddix를 비롯해 멤버들이 알코올 문제나 트러블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학창 시절 Jacoby의 절친이자 초창기 창립멤버였던 Dave Buckner가 밴드에서 탈퇴하고 후에 법정다툼까지 이어졌으니 이들도 나름 트러블이 많았다고 불 수 있다.
그러나 순전히 에너지와 의욕만으로 치고 나갔던 앨범 1집 'Infest' 이후 이들이 고꾸라질 것이라는 냉소적인 시각과는 대조적으로 파파 로치는 매 앨범마다 자신들의 장르를 바꾸어가며 롱런하는 팀으로 아직까지 메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장르의 판도를 바꾼 선구자라거나 메탈의 역사에서 명반으로 꼽힐 음반을 낸 뛰어난 밴드라는 칭호는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늘 한결같은 추진력으로 팬들에게 안정적으로 사랑받는 이들의 가치도 이제 와서는 함부로 폄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뭔가 듣고 싶은데 아무것도 땡기지 않는 애매한 기분일 때 이들의 앨범을 들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