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 치기 Taproot
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밴드 림프 비즈킷의 보컬 프레드 더스트의 업계 내에서의 위상은 어마어마했다. 성공적인 2집 'Significant Other'의 대흥행 이후에 그는 Interscope 내에서 부사장으로까지 직위가 올라갔고 본격적으로 후배 밴드들의 양성 및 흥행몰이에도 힘을 쓰고 있었다. 그가 키운 밴드 중에 Staind는 뉴메탈과 얼터너티브의 조화를 통해 당시에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흥행 측면에서는 림프 비즈킷 본인들을 업계에 올려준 선배 밴드 Korn의 위상까지 넘어서며 명실공히 넘버원 뉴메탈 밴드 정도가 아니라 당시 록밴드 중에 가장 핫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밴드 자체를 떠나 보컬 프레드 더스트 자체의 스타 파워도 어마어마했고 당대에 잘 나가던 팝스타들과 염문까지 뿌리며 관심과 논란을 한 몸에 받는 셀러브리티였다고 볼 수 있겠다.
당시에 그가 눈여겨보던 신인 밴드 중에 한 팀은 Deftones의 끈적하면서도 묘하게 감성적인 멜로디, Korn의 웅장한 기타 리프, 프레드 더스트 특유의 날티나는 래핑 등 대표적인 뉴메탈 팀들의 핵심 스킬들을 다채롭게 구사하면서 일반 뉴메탈 음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비정형적인 곡 구조와 전개로 업계 내부에서는 괴물 신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에 후진 양성에 의욕이 넘쳐났던 프레드 더스트는 이들과 적극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업계의 거물에게 연락을 받은 신인 밴드 역시 들뜬 분위기였다. 문제는 정작 계약을 진행하려고 보니 의견 차가 생겼고 이 과정에서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빴던 프레드 더스트와의 컨택이 늘 수월하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결국 지지부진한 연락과 마음에 들지 않는 계약사항 때문에 고민하던 신인 밴드는 선배 팀인 System of a Down의 주선으로 Atlantic Records와 계약을 맺게 된다.
양쪽의 정확한 입장을 들어봐야 정확히 파악이 될 사항이고 정작 20년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모두 언급을 꺼리고 있기에 쉽사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당시에 프레드 더스트가 이에 대해 엄청나게 분노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계약 직전에 이미 확실한 플랜을 갖고 있었고, 이 신인 밴드를 띄워주기 위해서 여기저기에 연락을 해놓았던 상태였다고 한다. 즉, 당시 그의 시선에서 봤을 때 이 밴드는 자신들의 은인이 될 사람의 등에 칼을 꽂은 괘씸한 놈들이었던 것이다. 단, 차근차근 본인의 입장을 나중에 설명했거나 다르게 조치를 취했다면 좋았겠으나 프레드는 당시에 본인의 위상을 떨어뜨릴 만한 경솔한 행동을 하고 마는데 높은 직위에 있어서 힘에 취한 것인지 분노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은 것인지 모르지만 싸구려 깡패나 할 법한 행동으로 이에 대응했다. 바로 그 밴드의 연락처 자동응답기에 찌질한 협박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이봐 친구, 너는 지금 완전 조진 거야. 이 바닥에서 너에게 먹이를 주는 손을 물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너희 매니저는 멍청한 거고. 나는 너희를 집에도 초대하고 라디오와 언론에 너희에 대해서 얘기하고 홍보해 줬는데 너는 나와 우리 회사에게 망신을 줬지. 너희는 더 이상 림프 비즈킷과 관계가 없는 거야. 너희 밴드도 완전히 망한 거고 이제 적이 생긴 거야. 우리 공연에 얼굴 비출 생각도 하지 마. 너희의 커리어는 시작하기도 전에 망한 거라고. 행운을 빈다. 엿이나 먹어."(프레드 더스트의 당시 메시지 요약)
업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를 적으로 두게 된 신인 밴드라면 보통 이랬을 경우 당장 찾아가서 사과를 하거나 수습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당시에 프레드 더스트는 만만하게 볼 사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밴드는 아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에 대응하는데 이 메시지의 녹음본을 그대로 바깥에 뿌려버린 것이다. 그 결과 프레드 더스트는 속 좁은 소인배로 이미지를 구기게 되었고, 반대급부로 이 신인 밴드는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패기 넘치는 당시의 신인 밴드가 바로 Taproot이다.
물론 이 일이 밴드에게 영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장 이들의 계약을 주선해 준 밴드 System of a Down만 해도 당시에 꽤나 스타 밴드였지만 프레드 더스트의 압력으로 Family Values 투어에서 제외당하는 등의 불이익을 겪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가장 큰 영향은 이들의 음악에도 나타났는데 메이저 데뷔 앨범인 'Gift'에서 랩메탈적인 요소가 거의 싹 사라진 것이다. 이들의 데뷔 전 초창기 데모인 'Lowlife'나 'Comeback'의 초기 버전을 들어보면 림프 비즈킷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듯한 랩메탈 사운드와 날티나는 래핑이 돋보이는데, 1집의 트랙리스트에서 'Lowlife'는 아예 제외되어 있으며, 'Comeback'은 수록은 되어있으나 데모에서는 상대적으로 가볍고 경쾌했던 랩이 음울하게 읊조리는 톤과 진중한 멜로디로 대체되어 있다. 즉,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이들 스스로 림프 비즈킷과의 연결고리를 아예 싹 지워버렸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상대적으로 'Gift'는 이들이 갖고 있던 포텐셜에 비해서 좋게 말하면 더 진지한 앨범이 되었고, 나쁘게 보자면 좀 재미없고 어려운 음반이 되었다. 뉴메탈이라고 하면 흔히 드러나는 경쾌하며 신나는 느낌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분명 그루브와 리프에는 락/메탈 매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으나 전개에 있어서 비정형적인 느낌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전형적이지 않은 뉴메탈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에게는 더욱 고평가를 받게 되긴 했으나, 당시 흥행 면에서는 빌보드 200에서 160위에 오르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만약 프레드 더스트와의 계약이 잘 성사되었다면 Staind나 Puddle of Mudd 이상으로 주목받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흥행 부진은 이들의 후속 앨범인 'Welcome'이 빌보드 200에서 17위, 싱글 'Poem'이 메인스트림 록 차트 5위에까지 오르면서 어느 정도 해소된다. 이전의 독특한 면모를 많이 들어내고 보다 더 대중 친화적으로 얼터너티브 사운드의 틀을 갖춘 이 음반은 Taproot의 경력에서 가장 일반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은 음반이기는 하나, 이전 'Gift'에서 느껴졌던 이들 특유의 개성은 많이 줄어들었다는 아쉬움도 있다. 이들의 후속 앨범인 'Blue-Sky Research'는 독특하게도 평소 뉴메탈에 대하여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던 Smashing Pumpkins의 Billy Corgan과의 합작으로 이루어졌는데, 더욱더 이전 뉴메탈의 색깔을 지우고 멜로디에만 집중한 음반이다. 'Welcome' 정도로 흥행하진 못했으나 역시 빌보드 200에서 33위에 올라가는 등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아쉽게도 이후에 이들은 계속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다가 5집부터는 다시 빌보드의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가게 되었고, 이제는 록 페스티벌의 서드 스테이지에 가끔 얼굴을 비추는 정도로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반갑게도 작년 2023년에 약 11년 만에 새로운 앨범을 발매함으로 인해 다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으니, 20년 넘게 뉴메탈과 얼터너티브 장르를 오가며 아직까지 살아남은 굳건한 뚝심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겠다. 게다가 업계의 거물인 프레드 더스트를 상대로 새파란 신인이 정면으로 맞선 일화 하나만으로도, 아무래도 꽤 오랫동안 음악 역사에서 이들의 이름이 꾸준히 거론되기는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