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도착, 준비와설렘그리고 신난 유부남들...
공연을 위해 해외에 가는 것은 그냥 여행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일단 악기와 장비의 부피/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공항 수속부터 별도의 단계와 추가 시간, 노력이 들고 무사히 도착하고 수속을 마치기 전까지 뭔가 잘못되지 않을까, 기자재 중 하나가 망가지는 일은 없을까 불안함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평소 여행 갈 때보다 약 30~40분 정도 더 긴 수속 및 등록 끝에 우리는 일본으로 출발했고, 다행히 막상 도착하니 해당 공항에서의 수속은 예상보다 빠르고 무난하게 지나갔다.
한국의 여름도 덥고 습하기로 유별난 편이지만 도쿄의 여름 날씨는 불쾌지수의 액기스를 모아놓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분명히 동남아시아의 습도에 비하면 양호하고 기온도 열대지역보다는 낮지만, 그와는 또 다른 성질의 더움을 선사하여 이동에 큰 지장을 준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악기까지 어깨에 메고 이동한다면 중고등학교 때의 여름 수련회 등산 정도는 우스울 정도의 힘듦을 느낄 수 있다. 당시 40세를 맞이한 우리의 기타리스트 형의 당장에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래도 행복해. 이렇게 해외에 공연도 오고."라고 땀에 젖은 얼굴로 힘없이 웃는 그의 표정에서 슬램덩크 마지막 화의 강백호와 괴짜가족 고테츠 아빠의 소울을 느꼈다면 과장일까.
간단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일본에서의 다른 환경, 전압에 맞춰서 공연에 지장이 없을지 체크도 하고 미리 몸도 풀 겸 도쿄에 살고 있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예약한 합주실로 향했다. 합주실은 매우 쾌적하고 장비가 잘 갖추어져 있었는데 근시일 내에 있는 주변 지역 공연 전단지들이 앞에 있는 가판대에 꽂혀있는 게 일본의 아날로그적인 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신기하게도 우리의 다음날 공연 홍보 전단지도 찾았기에 다음 날에 있는 우리의 첫 해외 공연이 실감 나게 다가왔다.
다음날의 일정이 있기에 체력을 비축해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공연을 하는 날 이외에는 자유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간단히 멤버들끼리의 첫 해외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관광객들이 흔히 가는 시부야, 신주쿠 위주의 판에 박힌 코스였지만 간만에 집에서 나온 유부남들이 해방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 그냥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이제 한국에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 CD가게 구경도 하고, 일본에 와서 굳이 타이완 흑당 버블티를 먹으면서 당을 보충하며 나름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스탭과 멤버들이 모두 모여서 간단한 저녁식사 및 회식을 마친 후에 다음 날의 빅 이벤트에 앞서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일찍 숙소로 들어갔다. 다음 날에 공연이 있기에 나는 일부러 회식임에도 술도 입에 대지 않았고, 웬만한 준비를 마쳤으니 일찍 잠에 들기 위해 씻고 잘 준비를 마쳤다. 문제는 이 유부남들이 신남을 자제하지 못하고 숙소에서 맥주와 안주를 깔아놓고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시끌벅적한 신남을 외면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으나, 술이 문제인지 해외 로케가 문제인지 갑자기 감성적으로 변한 드러머가 나를 붙잡더니 "형, 제가 밴드에 계속 있는 게 나머지 멤버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요?"라면서 지옥의 대화를 시작했다.
'응...확실히 지금의 너는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거 같아...'라고 응수하고 잠에 들고 싶었지만 또 장단을 맞춰주어야지 어쩌겠나 싶어서 얘길 들어주고 내 깊은 내면에 있는 명언이란 명언을 끌어올려 스피릿을 정상 궤도로 돌려주고 나니 어느덧 새벽 두 시가 되었다. 과연 우리는 내일의 첫 해외 공연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는 걸까.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