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공연 in안티노크신주쿠
둘째 날 공연은 원래 덤이었다. 기존에 처음부터 계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기왕 간 김에 한 번만 하고 돌아오기엔 아깝다고 생각돼서 추가로 잡은 공연이다. 그러기에 그냥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하기로 했으나, 문제는 공연 라인업이었다. 우리 음악은 동요 & 팝처럼 들릴 정도로 잡혀있는 모든 팀들이 다 지독하게 헤비한 음악을 하는 팀들이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 하면 보통 관객들이 밴드의 분위기를 따라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즉, 빡센 음악을 하는 밴드들의 고정 관객일수록 그만큼 빡세지 않은 밴드에 대한 시선이 안 좋을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팀 개수가 11팀이었다. 지독하게 긴 공연이 될 예정이었다.
물론 우리 측에서도 마냥 안일하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은 아니었고, 나름 준비를 했다. 첫째 날 곡 라인업에 비해 둘째 날 라인업은 우리 곡 중에 더 '쎈' 곡들을 중심으로 구성했고, 이 날 서는 팀 중 한 팀인 NILIEKANAI와 미리 컨택해서 콜라보/합동 무대도 준비했다. 우리 곡 중 한 곡의 가사를 일부분 일본어로 개사해서 직접 녹음해서 그쪽에 보내주는 등 사전 준비를 마쳤다.
규탕(우설/소의 혀를 요리한 것)을 사랑하는 키보디스트 정헌 군의 의지로 점심식사를 백화점 식당가 규탕 집에서 마치고 공연장에 도착하였다. 안티노크는 꽤 큰 공연장으로 밖에는 다수의 관객이 식사를 하며 대기할 수 있는 꽤 큰 홀이 있고 내부 공연장도 Crescendo에 비해 1.5배 정도 큰 규모였다. 첫날 그랬듯이 번역기를 돌려 겨우겨우 큐시트를 작성하고 리허설을 위해 무대로 올라갔다. 합동 무대를 할 NILIEKANAI의 보컬 분과 이때 처음 인사를 했는데 너무나도 예의가 바른 분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리허설을 시작하자 기대했던 것보다도 너무 열심히 준비한 모습에 놀랐다. 함께 곡을 맞춰볼 수 있는 시간이 리허설 때밖에 없었기 때문에 약간 걱정했는데, 이미 수십 번 곡을 듣고 모든 파트를 완전히 숙지한 것 같은 느낌이라 수월하게 진행이 가능할 것 같았다.
공연이 시작되고 관객들이 클럽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꽤 많은 관객이 들어왔음에도 정작 무대 주변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이들은 적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밖에 나가보니 상당수의 관객이 홀에서 식사만 하고 있었고, 본인이 보고 싶은 팀의 공연만 보기 위해서 대기 중이었다. 급격하게 내적 긴장도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해외에서 온 이름도 없는 우리 팀을 보기 위해서 이들 중에 몇 명이나 들어오게 될까, 혹시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빈 객석을 바라보면서 공연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마구 샘솟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내가 세울 수 있는 대책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 대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지만)이라는 것은 바로 모든 밴드의 공연을 맨 앞에서 감상하는 것이었다. 맨 앞에서 공연하고 있는 팀 멤버들과 아이컨택을 하면서 '나는 너희의 공연을 보고 있다. 너희도 있다가 우리 할 때 밖에서 밥 먹지 말고 꼭 들어와서 봐라!'라는 메시지를 무언으로 눈빛으로 전달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첫날의 공연에 비해 관객들의 분위기가 다소 싸한 것도 긴장을 끌어올리는 요인이었다. 호기심에 들어온 관객이라도 무대에 올라온 밴드의 공연이 취향에 맞지 않으면 바로 나가버리는 이들이 상당수였고, 정작 본 무대에서 호응을 유도해도, 멘트에서 뭔가 개그를 쳐도 거기에 웃거나 응하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상당히 까다로운 관객들인 걸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만화 BECK에 보면 호기롭게 해외 투어를 간 주인공 밴드가 관객이 던진 맥주병에 맞고 그러던데 그 일이 오늘 나에게 벌어지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타국의 인디밴드들의 공연을 보는 일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인데 이 날도 독특한 팀들이 많았다. 그로울링/스크리밍 보컬만 세명인 9인조 밴드도 있었고, 대체 어디까지 빡세질 수 있을까 싶은 느낌의 그라인드코어 밴드, 시종일관 "여고생이 좋아!!"라고 외치는 독특한 아저씨들로 구성된 펑크밴드(위험한데...?) 등 각양각색의 팀들의 공연이 펼쳐졌다. 꽤나 탄탄하고 세련된 트랜스코어 음악을 선보이는 팀도 있었고, 다소 연식이 있어 보이는 음악을 하는 팀도 있었다.
우리 바로 전 팀이 무대에 올라갔고, 우리는 무대 준비를 위해 대기실로 들어가 있던 시간, 밖에서 우리 머쳔다이즈 일을 도와주던 친구가 들어와서 앞 팀이 방금 멘트에서 우리 얘기를 했다고 전달해주었다.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일본을 싫어하는 한국 놈들을 조져버리자!!"같은 멘트를 했을 줄 알고 긴장했으나, 전달받은 내용은 그 반대의 내용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Nuclear Idiots라는 팀이 공연하러 와주었는데, 여기에서 양국의 정치적인 이유를 들먹이면서 야유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매우 저질스러운 행동이니 온전히 관람하고 응원해주자."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었다.
긴장을 가득 품은 채로 무대에 올라가니 준비하는 시간 동안 객석은 거의 텅 비어있었다. '아,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던 건가.'라는 생각에 체념하고 있을 무렵, 무대 시작이 임박하니 관객들과 이전 공연 팀 멤버들이 들어와서 객석이 꽉 차게 되었다. 우리의 공연이 그들 보기에 괜찮았던 것인지 이전 밴드의 멘트 덕인지 다행히 분위기는 매우 좋았고, 어설픈 일본어와 영어를 섞은 멘트임에도 관객들이 잘 호응해주었다.
문제는 세 번째 곡이 끝날 때 즈음에 발생했다. 갑자기 드럼 하이햇 페달이 고장 난 것이다. 다행히 고칠 수는 있었으나 문제는 수리하는 시간 동안의 딜레이와 공백이었다. 이때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침묵이 유지된다면 분위기가 엉망이 될 것은 뻔한 일이었고, 정말 있는 말 없는 말을 총동원하여 지옥의 멘트 타임을 시작했다. 뭔가 '오늘이 일본 첫 번째 아니고 두 번째 공연인 밴드 뉴클리어 이디엇츠입니다.'와 '긴장 레벨 마구마구 상승중!!' 이런 류 멘트를 남발했던 것 같은데 다행히 나의 노력과 절박함이 전달된 덕인지 관객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적당히 웃어주면서 반응해주었던 것 같다(지금 막상 쓰고 보니 저거에 왜 관객들이 웃어준 걸까).
이후에는 분위기가 더 좋아져서 첫날보다도 관객들의 호응도가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관객들이 다 같이 점프도 하고 함께 손도 흔들고, 마지막곡 때 기타리스트 형이 무대에서 객석으로 내려갔을 때에는 분위기가 거의 절정에 무르익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덕인지 우리가 마지막 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앵콜까지 나와서 뭔가 '이게 현실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고맙고 감사한 기분이었다. 물론 나의 흥분한 목은 이미 한계치에 도달했기에 앵콜곡은 삑사리의 연발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와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열광해주었다. 이전에 한국에서 한 차례 같이 공연했던 일본 팀인 THE MORGUE의 드러머 다이스케 군과 Calaveras의 켄 상이 우리의 도쿄 공연을 응원해주기 위해 이 날 방문하였고, 함께 공연했던 팀인 NILIEKANAI의 멤버 전원이 우리의 CD를 구매했다. 또 다른 공연 팀인 Perseverance의 기타리스트 Bobb은 시종일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고 맨 앞자리에서 응원해주며 관객 호응을 유도해줬고, 이 외에도 라인업에 있는 모든 팀, 그 자리에 온 관객들이 우리에게 호응해주었고 우리의 물건을 구매해주고 열광해주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아득하고도 먼 일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다. 많은 팀들이 해외 무대 진출을 위해서 준비를 하고 크고 작은 무대에 선다. 단지, 안일한 생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간다면 아무리 작은 무대라도 삐끗하고 망신과 의욕상실의 길을 걸을 수 있기에, 그것을 피하고자 어느 정도의 준비를 하고 갔고, 준비한 만큼의 성과는 거두고 왔을 뿐이다. 그냥 혹시라도 미래에 다시 해외 길이 열려서 타국의 무대에 서고 싶은 밴드가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아 이럴 수 있구나. 이런 돌발상황이 생기는구나. 이런 건 미리 준비해야 되는구나.'라는 정보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뿌듯할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의 기억 속에서 이 날의 기억들이 흐려지기 전에 기록하기 위해 이 글을 썼을 뿐이니 읽으시는 분들이 여기에서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하진 마시길 부탁드린다.
막상 다시 그 시기를 돌아보며 글을 쓰다 보니, 생각보다 쓸 내용이 방대하기도 하고, 정작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 부분이 많아져서 기억을 더듬다 보니 마지막 글이 늦어졌다. 다 쓰고 보니 '이게 이렇게까지 쓸 내용인가? 너무 별거 없는데.'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쓴 것은 추억을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때 그 사람들을 떠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2년이나 지속되어 밴드가 해외에서 공연을 하는 게 불가능해진 지금, 밴드가 공연을 하며 활동 반경을 넓히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 이 시점에서 그렇지 않았던 시기에 우리가 느꼈던 기분과 쌓았던 경험, 그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 더 흐려지고, 더 아득하고 모호한 과거에 방치되고 잊히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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