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메탈간지

지독한 매력과 경박함 사이 그 어딘가

by 핵보컬

사실 어릴 때부터 락 계열의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딱히 메탈을 좋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처음 락을 듣기 시작하던 시기 주로 많이 듣던 계열의 뮤지션은 그린데이, 블러, 너바나 쪽이었지 메탈리카, 메가데스, 슬레이어 쪽이 아니었고, 고전 락 밴드 중에서는 지금도 레드제플린이나 딥퍼플보다는 퀸이나 비틀즈를 좀 더 선호한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가 이 시끄러운 장르에 빠지게 됐고 지금도 뉴메탈 밴드를 하고 있는 걸까?


일단 뉴메탈은 이미지가 강력하다. 당시에 가장 하드한 느낌의 음악이던 메탈과 힙합 두 장르에서 일정 부분을 골고루 차용하여 섞었기에 당시 미디어에서도 이 부분을 강조하며 세상에서 제일 헤비한 음악인양 포장하기도 했다. 패션이나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도 뉴메탈의 개성은 독특했다. 기타를 매고 드럼을 치고 있지만 이들은 마치 랩퍼처럼 스스로를 치장했고, 거대한 턴테이블 세트를 돌리는 DJ를 대동하고 허리가 꺾일 듯이 헤드뱅잉을 했다. 어떤 이들은 자메이카 레게 아티스트처럼 드레드로 땋은 머리를 휘날리며 맹수처럼 포효했고, 다른 이들은 탈색한 머리를 뾰족하게 세우고 성대가 찢어질 것처럼 비명을 지르거나, 모자를 눌러쓰고 날티나는 랩핑을 구사했다.


힙합 아닙니다. 메탈입니다.


SF 액션, 슬래셔 호러 등 가장 빡센 느낌의 영화의 OST에 이들의 음악이 필수적으로 몇 곡씩 수록되면서, 뉴메탈은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전성기 동안 날카로우면서 힙한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구축하고 어필했다.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에는 한국의 아이돌 가수들도 뉴메탈의 요소를 상당히 많이 차용한 음악을 했다. H.O.T.의 Iyah나 신화의 Yo!(악동보고서) 등의 곡들은 거의 대놓고 뉴메탈 어레인지를 선보였고, 아무도 이에 대해서 당시에는 "아니 왜 아이돌이 이런 음악을 해?"라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당시에 뉴메탈은 가장 트렌디한 음악이라는 기조가 있었기에 이런 게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메탈 아닙니다. 신화입니다.


청소년기에 나는 디스토션 기타 사운드는 늘 좋아했지만 1분을 넘는 긴 기타 솔로나 프로그레시브 락 같은 구성을 선호하지 않았고, 하이 옥타브로 내지르는 보컬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메탈 음악과 그닥 친하지 않았다. 랩을 좋아하긴 했지만 일관된 비트에 큰 변화 없이 계속 일정한 톤으로 읊조리는 당시의 힙합 음악도 오래 즐기기에는 인내심이 짧은 청소년이었던 내게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동경은 하지만 진정하게 즐기기는 힘들었던 두 장르 메탈과 힙합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따와서 맞춤형으로 만든 듯한 뉴메탈에 더 깊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거기에 당시에 다른 매체들인 영화나 만화, 패션 등과의 콜라보로 딥다크한 이미지를 구축했으니 나의 중2병을 제대로 어루만져준 셈이다.


성인이 된 지금에는 메탈도 힙합도 그 자체로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에, 당시 딥한 음악 매니아들이 왜 뉴메탈을 그토록 욕하고 미워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두 장르의 요소를 적당히 차용은 하지만, 각 장르에서 깊이가 있을 만한 부분은 적당히 쳐내고 대중에게 어필할 만한 자극적인 부분만 조합해놓은 뉴메탈은 한없이 얕은 것으로 보였을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지금의 쇼미더머니에 나오는 스웩 타령은 귀여워 보일 정도로 대놓고 어그로를 끌고 다니는 프론트맨들의 기행까지 더해져 당시의 락 매니아들에게 뉴메탈 밴드들은 극도의 비호감 이미지를 끌어올렸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비주얼들...


장르로서의 뉴메탈의 흥행은 2000년대 후반부터 많이 사그라들었으나, 여전히 뉴메탈이 대중에게 팔던 특유의 이미지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각 분야에 조금씩 남아있다. Lil Peep 등의 아티스트가 선보였던 Emo rap이나 Scarlxrd, Ho99o9 같은 힙합 아티스트들의 음악, 트랩 메탈이라 불리는 힙합의 서브장르에서는 요즘의 트렌드에 맞게 변형된 뉴메탈의 이미지의 잔재를 조금 느낄 수 있다. 국내 랩퍼들도 몇 년 전부터 샘플링에 디스토션 기타 사운드를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많이 도입함으로 인해 힙합에 락 사운드를 많이 섞고 있다. 심지어 NCT 127의 영웅 같은 아이돌 음악에서도 아주 조금 뉴메탈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뉴메탈 아닙니다. 팝밴드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전체적 기조가 분노하는 루저보다는 과시하는 인싸들에게 스팟라이트가 맞춰져 있기에 이전 그대로의 이미지의 뉴메탈이 다시 흥행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락/메탈과 힙합의 하이브리드에 대한 수요, 날카로우면서도 강하고 힙하기까지 한 그 어떤 것에 대한 꾸준한 갈망은 어느 시대든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세기말에 그 갈망을 뉴메탈이 채워주었던 것처럼, 지금의 코로나 시대에는 어떤 음악과 문화 콘텐츠가 (뉴)메탈간지를 부활시켜 줄 것인지 묘한 기대감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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