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 어디까지 가봤니
락스피릿이라는 말은 사실 생각해보면 굉장히 모호한 말이다. 뭔가 돈이 안 되는 배고픈 음악을 한다는 말인 것인지, 머리 기르고 고성방가하고 술 많이 먹는 게 락스피릿인건지 그 누구도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힘든 것 같다. 사회적 메시지, 시대정신을 담은 음악이 락스피릿이 담긴 음악이라 한다면 이미 건즈앤로지스, 머틀리크루 때도 딱히 그런 부분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던 것 같고, 메이헴 같은 기행이 락스피릿의 구현이라 한다면 세상에 락만큼 민폐를 끼치는 음악도 없는 게 아닌가.
어쨌든 뉴메탈이 가장 많이 까이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락스피릿의 부족이다. 일단 락스피릿이 담아야 하는 게 시대정신이든 헝그리정신이든 어느 방면으로도 뉴메탈에서 이런 요소들이 부족하다는 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인정할 수 있다. 일찍이 랩메탈 밴드인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가사에 잔뜩 녹여냈고, 이들은 시대정신을 담은 락밴드의 심벌로 등극했다. 그러나 이후 태동된 뉴메탈은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이러한 메시지성까지 계승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딱히 직설적으로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담지 않았어도, 초창기의 뉴메탈 음악에는 그 시대의 젊은 층이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어떤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정서적인 이미지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락/메탈 음악이 피카소의 게르니카라면, 초창기 뉴메탈 음악은 뭉크의 절규와도 같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정서를 가장 적나라하게 담아낸 밴드가 뉴메탈의 창시자와도 같은 팀, 콘(Korn)이다.
콘의 보컬 조나단 데이비스는 캘리포니아의 Bakersfield라는 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조금은 불안정했던 청년이다. 어린 시절 이웃에게 학대를 당했고, 학창 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으며, 유별난 예술적 취향과 독특한 매너리즘 탓에 성인이 될 때까지 주변인의 많은 놀림과 멸시를 받았다고 한다. 콘의 1집인 셀프타이틀 앨범과 2집 Life is Peachy에는 그의 불안정한 정서적 고통이 가사와 창법, 그것을 반영한 멤버들의 연주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첫 트랙 Blind에서 Are You Ready라고 그가 내지르는 외침은 흔한 파티나 공연장에서 MC가 외치는 신나게 격앙된 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작 멘트가 아니라, 상처 입은 야생동물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에 가깝다.
이러한 정서는 비단 콘의 1, 2집에만 한정돼있는 것은 아니다. 림프 비즈킷의 보컬 Fred Durst도 본인이 어린 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음을 밝힌 바 있고, 린킨 파크의 체스터 베닝턴 역시 어린 시절 학대의 경험이 있음을 인터뷰에서 고백하였다. 즉, 초창기의 뉴메탈은 상당수가 이러한 학대받고 소외당한 청년들이 자신들의 분노와 불안정한 정서를 곡으로 승화시킨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멋있어 보이려고, 강해 보이기 위해서 허세를 담아서 뽐내는 음악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 인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솔직한 음악이었던 것이다.
시대적으로 경제적 풍요와 성장이 절정에 이르렀던 90년대 중반이었지만, 그 풍요의 시대에 남성은 무조건 더 강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여성들은 더 예뻐지고 아름다워져야만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회가 전체적인 부강함과 성장을 내세우고 있을 때에, 그 풍요와 성장에서 배제되거나 낙오된 이들은 더욱 외면당하게 되었고, 이상적인 인간의 틀에서 벗어난 이들은 놀림과 멸시에 시달려야 했다. 사회적으로 응당 필수적이었던 분노(인종차별, 전쟁 등)에 대해 노래하는 아티스트들은 꾸준히 있었으나, 일상적 범위 내에서의 음악과 예술은 대부분 연애나 이별의 슬픔 정도만을 다룰 뿐이었다.
이런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뉴메탈은 일상 속에서 약자가 겪을 수 있는 분노의 정서를 담아내면서 그 갭을 완벽히 채우며 초기에 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이다.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잘생긴 근육질의 남성이나 날씬한 미녀가 아닌, 평범하거나 조금 독특한 외모의 아웃사이더가 통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괴성을 질러대는 것이 미디어에 노출되며, 당시에 스스로 결핍되었다고 느꼈던 청년 리스너들에게 어필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누군가가 그 부정적 감정에 파묻혀서 낙오자로 몰락하지 않고, 그것을 음악으로 승화시켜서 락스타가 되는 것을 보며 많은 이들이 에너지를 얻게 된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지만, 나는 뉴메탈의 인기가 다른 음악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식어버린 것에 이런 부분도 크게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분노하는 루저였던 이들이 이를 극복하고 락스타가 되는 과정은 아름다웠으나, 정작 그들이 승자가 된 이후에 그 밴드가 전하는 메시지는 급속도로 힘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이미 락스타가 되고, 음반사의 간부가 되고 헐리웃 셀럽들과 어울리는 이들이 또다시 자신들의 분노에 대해 소리 지르고 결핍에 관해 부르짖어도 결국 진정성이 없는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대형 음반사와 미디어가 뉴메탈을 돈이 되는 장르로 보고 급속도로 푸시해버린 탓에, 애당초 그렇게까지 메이저한 음악이 될 수 없었던 사운드가 시종일관 대중매체에서 고막을 때려버리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기도 했고, 사회적인 외톨이에서 하루아침에 셀럽으로 등극한 뉴메탈 락스타들 중 몇몇이 스스로 처신을 잘 못했던 것도 있기에 짧은 시기에 뉴메탈은 수많은 락팬들을 적으로 돌려버렸다. 락커보다는 힙합 아티스트나 레게 가수처럼 보이는 외양, 껄렁껄렁한 이미지가 주는 선입견, 히트곡 양산을 위해 가사의 진정성보다는 파티하고 놀기 좋은 분위기에 편승하려 했던 후기 뉴메탈 주자들의 씬 오염으로 뉴메탈은 하루아침에 애당초 락스피릿 따위는 없었던 허울 좋은 껍데기로 낙인이 찍혀버렸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자신들을 위로해줄 음악에 목말라 있던 락팬들은 변질된 후기 뉴메탈에 환멸을 느꼈고, 이후 락씬의 왕좌는 새로운 아웃사이더들이었던 이모코어 밴드들이 가져가게 되었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 더 유즈드 같은 이모코어/이모펑크의 선두주자들은 초창기 뉴메탈 밴드들이 그랬듯이, 학교폭력이나 사회적 핍박에 시달리던 문제아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순식간에 확립했고(I'm Not Okay나 The Taste of Ink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더욱 적나라하다), 이후 메탈코어나 젠트가 락씬을 휩쓸기 전까지 굳건히 그 영광을 누렸다.
예전 싸이월드 시절에는 많은 이들이 과잉될 정도로 본인들의 정서적 불안정성을 자랑하듯이 내보여서 문제였다면, 요즘에는 SNS에서 본인의 치부는 최대한 감추고 좋은 것과 예쁜 것만 드러내는 것이 새로운 논란들을 야기하는 것 같다. 모두 자기 인생과 일상에서 제일 예뻐 보이는 각도만을 타인에게 보이려 하고 있고, 실제로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차 있어도, 그 힘듦을 감추는 것이 스스로를 돋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만 보여주고 잘 사는 것처럼 과시해도 그 내면은 썩어 들어가고 있고, 실제로 SNS 스타들이 유명해지고 대중적 인기를 얻는 동시에 거짓말처럼 바로 논란이 터지고 묻혀버리는 것을 보면 무조건 포장하고 허세로 무장하는 것이 대체 누구에게 득이 되는 것인가 싶다. 게다가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이들이 태평하게 사치스러움을 누리는 것을 봄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모두를 병들게 하고 있지 않은가. 구석부터 안쪽까지 우리의 사회와 내면을 병들게 하고 있는 더러운 것들을 다 알면서도 못 본 척하는 게 미덕인양 감춰야 하는 이상한 세상에서 아직도 나는 가끔씩, 아니 근래 들어서는 꽤 자주 이어폰을 귀에 꼽고 예전 좋아했던 음반들을 재방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