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님들의 팬데믹 시대 맞대결
본래 이번 주에는 (뉴메탈과 관련 없는) 다른 소재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지난주에 밴드 Korn의 신보 Requiem이 발매되었다. 다소 미지근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밴드 중 하나이고, 마침 머지않은 과거인 지난해 10월 31일 할로윈에 또 다른 뉴메탈의 양대 산맥 밴드라 할 수 있는 Limp Bizkit의 신보 Still Sucks도 발매되었기에,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두 앨범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급하게 소재를 변경하게 되었다.
일단 러닝타임은 두 앨범 모두 30분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Korn의 Requiem은 9 트랙, Limp Bizkit의 Still Sucks는 총 12 트랙을 수록하고 있다. Korn은 2019년에 발매된 The Nothing 이후로 약 2년 5개월 만에 성실하게 기존에 홍보했던 날짜에 맞춰서 신보 Requiem을 발매하였다. 반면, Limp Bizkit은 2011년 발매된 지난 앨범 이후로 신보 Stampede of the Disco Elephants를 지속적으로 연기하면서 싱글 3~4개만 발표하며 지지부진하다가 무려 10년 만에 뜬금없이 아무 사전 홍보 없이 급작스럽게 Still Sucks를 발매했다. 게다가 앨범 타이틀도 기존에 선언했던 것과는 다르고 사전에 발매했던 싱글 중 어느 한 곡도 앨범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점이다.
Korn의 Requiem은 지난 2019년에 발매됐던 The Nothing의 분위기와 정서를 그대로 잇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초창기 Korn의 앨범이 피칠갑 슬래셔 호러와 같은 분위기로 시종일관 불안정하고 날생선처럼 팔딱팔딱 뛰는 분위기였다면, The Nothing부터 느껴지는 분위기는 보다 정적인 고딕 호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7현 기타와 5현 베이스의 묵직한 사운드는 여전히 육중하게 듣는 이의 고막을 터뜨릴 듯이 작렬하나, 곡의 구조는 이전에 비해 훨씬 정석적인 편이고 가장 크게 차이가 있는 부분은 보컬 조나단 데이비스의 톤이 예전만큼 자주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점은 보컬의 나이가 이제 50을 넘겼기에 그의 기량이나 체력이 예전 같지 않기에 그럴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의 라이브는 초창기의 곡들을 부를 때 다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아직도 준수한 편이고 앨범에서 그가 또 소리를 지를 때는 양껏 질러주는 부분들이 있기에 온전히 체력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 트랙인 Worst is on Its Way에서는 특기인 스캣 창법까지 구사하면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한다. 체력적인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제 그들의 정서가 변했고, 거기에 맞게 노래를 할 때는 온전히 멜로디에 집중하고 필요한 부분에만 그로울링/스크리밍으로 질러 주는 쪽으로 보다 성숙하게 다듬어진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수록된 9개의 트랙은 전 곡이 모두 싱글이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매우 꽉 채워진 느낌이다. 일단, 보통 앨범들에 수록되어 있는 짧은 길이의 intro나 interlude 같은 트랙은 이 앨범에 없다. 특정적으로 발라드처럼 느껴지는 넘버도 없고 딱히 이 곡이 가장 헤비하다고 느껴지는 곡도 없이 모든 트랙이 비슷한 밀도를 유지하고 있다. 단, 이렇게 전 트랙이 모두 싱글 컷처럼 느껴진다는 것은 이 앨범의 가장 큰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1번부터 9번 트랙까지 꼭 순서대로 들었을 때 이 앨범을 온전히 체험했다기보다는 딱히 어느 순서대로 들어도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된다는 것이다. 그 어떤 낙폭도 없이 꾸준히 안정적으로 흘러가기에 한 곡 한 곡을 들었을 때는 다 괜찮게 느껴지지만, 반대로 그러한 낙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 전체적으로 평이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어쨌든 이렇게 성숙해진 뉴메탈을 보여주는 Korn의 신보에 대한 평단의 평론은 전반적으로 좋은 편이고, 전성기에 비해 부진하다고는 하나 앨범 판매량도 첫 주에 빌보드 20위 안에는 들 것으로 예측되는 등 반응은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데뷔 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중간에 잠시 부진했던 시기를 털고 일어나 현재는 메이저 락페스티벌에서는 거의 무조건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라가며, 뉴메탈 밴드들 중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성실하고 착실한 중견 팀의 모범 사례를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실하고 착실하게 신보를 낸 Korn과는 다르게 Limp Bizkit의 신보 Still Sucks는 발매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보컬 프레드 더스트가 곧 신보를 낼 것이라고 했을 때 모두가 반신반의했던 것이, 뉴메탈계의 Chinese Democracy(무기한 연기되다가 뒤늦게 발매된 건즈 앤 로지즈의 앨범)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당초 발매 예정이었던 Stampede of the Disco Elephants가 도무지 세상에 나올 기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나마 림프 비즈킷의 근래의 행보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부분은 그들의 새 음악이나 끝내주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보컬 프레드 더스트의 새로운 룩이었다.
기존의 빨간 스냅백 모자를 버리고 할아버지처럼 분장하고 무대에 나온 그의 아재룩은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다. 다소 충격적이긴 했지만, 어쨌든 비주얼만 바꿨을 뿐인데 CNN에도 보도가 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림프 비즈킷이 여전히 핫한 밴드이고 어쩌면 흘러간 옛날 밴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팬들에게 (그리고 아마도 밴드 본인들에게도)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화제성에 기민하게 반응했기에 이렇게 급하게 뜬금없이, 아무 사전 홍보도 없이 앨범을 발매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어쨌든 발매 1~2주일 전에 'ㅇㅇ 우리 앨범 다음 주에 할로윈에 짠하고 나옴 ㅎㅎ' 이런 식으로 농담처럼 던져놓고 실제로 그렇게 발매를 해버렸으니 약속은 지킨 셈이다.
트랙 1~4까지 앨범은 매우 안정적으로 흘러간다. 역대 림프 비즈킷 곡들 중 가장 폭발적인 기타 리프가 작렬하는 첫 곡 Out of Style부터 시작해서 전성기의 본인들의 음악을 오마주한 듯한 느낌의 Dirty Rotten Bizkit, 사전에 공개되어 많은 관심을 일으킨 Dad Vibes, 그리고 올드 스쿨 힙합의 느낌을 충실하게 재현한 Turn it Up, Bitch까지 버릴 트랙이 없다. 청자들의 호불호가 극도로 갈릴 만한 문제는 5번 트랙부터 시작되는 앨범의 나머지 파트에 기인한다. 갑자기 통기타 발라드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이후에는 나쁘진 않은데 덜 다듬어진 것 같은 트랙들과 정말 대충 만든 것 같은 곡들, 왜 넣었는지 모르겠는 곡들의 향연이다. 게다가 5번부터 12번까지 대부분의 트랙의 실질적인 러닝타임이 각각 3분을 넘지 않는다는 점도 '아 정말 급하게 대충 만들어서 발매한 앨범인가' 싶은 의심을 부추긴다.
그런데 처음에는 '아 왜 이래' 싶다가도 들을수록 묘한 매력이 있는 앨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한 Korn의 앨범이 딱히 어떤 순서대로 들어도 상관없는 느낌이라면, 오히려 하나의 앨범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재생했을 때 진정한 맛이 나오는 건 이 앨범이다. 비록 5번 트랙 이후로는 곡 각각의 완성도는 상대적으로 훨씬 떨어지는 느낌이지만, 앨범 자체의 흐름은 단 한 번도 끊기는 느낌 없이 물 흐르듯 진행되고, 상기했던 문제점들이 의도된 결여인가 싶을 정도로 반복적으로 듣게 만드는 맛이 있다.
평론가들의 반응은 '이런 장난스러운 점이 림프비즈킷 답다'라는 반응으로 대체적으로는 호평이지만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앨범을 만들다 만 것 같다'라는 평가도 적지 않게 나왔다. 판매량은 빌보드 155위로 부진하다고도 볼 수 있으나, 애당초 아무 홍보나 뮤비도 없었고, CD나 vinyl 등의 오프라인 매체 판매나 방송 같은 것을 일절 하지 않았고 온전히 스트리밍과 디지털 다운로드로만 판매한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게다가 오랜 팬들은 '그래도 앨범을 내준 게 어디냐'라며 감지덕지하다는 반응이다.
뉴메탈계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밴드의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매우 다른 신보 두 개를 함께 리뷰해보았다. Korn의 새 앨범은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겪었지만 그걸 이겨내고 여전히 거친 면이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성숙하고 듬직해진 아버지 같은 느낌이고, Limp Bizkit의 신보는 아직도 어디로 튈지 모를 것 같은 장난기를 잃지 않은 주정뱅이 삼촌 같은 느낌이다. 두 앨범 모두 개인적으로 좋게 생각하는 부분도 많지만 아쉬움도 있다. 적당히 미디엄 레어로 구운 고기를 먹으러 들어갔는데, 한쪽에서는 패티의 반쪽만 익힌 햄버거를 내오고(Limp Bizkit - Still Sucks), 다른 쪽에서는 푹 익힌 수육이 나온 것 같은(Korn - Requiem) 느낌이다. 어쨌든 정확히 원하는 대로 나온 건 아니지만 반복해서 들을수록 양쪽 모두 나이 든 밴드가 함께 나이 들어가는 팬들에게 '여전히 우리가 너희에게 들려줄 게 남아있어'라며 손을 내밀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부디 이게 그들의 마지막 앨범이 아니기를 빌며 그들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