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핵보컬 Mar 02. 2023

미술로부터 영감을 얻다 #1

무라카미 다카시의 '무라카미 좀비'

몇 주 전에 부산에서 전시회 '무라카미 좀비'를 관람했다. 이슈가 되는 핫한 전시를 그냥 가볍게 보러 간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으나 사실 나는 그의 전시에 대한 나름의 충성도가 있는 편이다. 2013년에 열린 슈퍼플랫 원더랜드로 시작하여 그 이후에도 그의 작품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거르지 않고 보러 갔다. 오타쿠 문화와 상업주의, 귀여움과 기괴함이 함유된 블랙유머, 칸예 웨스트 등의 유명 아티스트/뮤지션이나 브랜드와의 콜라보 등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할 요소들은 다 때려 넣은 아티스트인 탓에 본능적으로 이끌리듯이 매번 관람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상징과도 같은 캐릭터 DOB

그러나 사실 첫인상부터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초반에 국내에서 열렸던 그의 전시들은 철저히 네임밸류와 유명도에만 기대는 면이 컸기에 작품의 수로 보나 퀄리티로 보나 미흡했고, 그 당시 관람했을 때의 인상은 그에 대한 세간의 비판처럼 '화려한 외양에 비해 깊이가 너무 얕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아티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에 대한 인식이 바뀐 계기는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 2015년에 관람했던 500 Arhats라는 전시였다. 국내에 들어온 작품에 비해 명백히 큰 스케일과 양질의 퀄리티가 돋보였고, 종교와 대중문화와 개인적 철학을 융합한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로서의 세계관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 대작들이 일관된 테마를 갖고 배치 및 전시되어 있었기에 '이제서야 그가 어떤 아티스트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자랑했던 2015년의 전시 500 Arhats

이후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파산의 위기도 겪고 어려움이 많았다는 근황을 들어 안타깝기도 했는데 이를 잘 극복한 것인지 국내에 유례없이 큰 규모의 전시가 (그것도 무료로) 열렸다고 하니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회의 타이틀은 '무라카미 좀비', '귀여움'과 '기괴함(+19금)', '덧없음(+원상)'이라는 각각의 주제로 명명된 개개의 공간 속에 그의 작품들이 알차게 배치되어 있었고, 그의 아티스트로서의 실패와 성공, 고뇌와 두려움 등이 잘 녹아들어 있는 인상 깊은 전시회였다는 것이 나의 감상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까지 까발려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품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그가 느끼는 고민들이 고스란히 전시에 드러나 있었다는 것이다. 그를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얕은 작품 세계관을 억지로 포장하는 과정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그의 전시가 상업적이든 아니든 간에 그 정도의 위치에 있는 아티스트가 굳이 크리에이터로서의 고민을 낱낱이 찝어서 읊어주는 것이 나름 그래도 반쯤 취미로 열심히 음악을 만들고 있는 나에게 꽤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었기에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산업에 진출했으나 실패했던 그의 흔적

만화가가 되어볼까 했으나 잠깐 시도했다가 접어버린 흔적들, 일본이라는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사회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 미국 예술에 대한 일본의 동경 및 컴플렉스, 외견상 화려하고 귀여워 보이지만 실제로 그 안에 깔려있는 공포와 우울함의 정서 등 그가 겪었던 과정 속에서의 고민이 작품 속에 은연중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액면 그대로의 글로 기술되어 있었으니 그 내용들이 어떤 의미에선 작품 감상보다 더 재미있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어느 국가의, 어떤 분야의 크리에이터든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기괴하게 뒤틀려진 DOB에는 작가의 두려움의 정서가 녹아있다

나에게 이를 (반은 억지로) 대입하자면 나 역시 전업으로 음악을 할 수 있는 인생이 열릴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20대 중후반을 보내다가 현실의 벽을 느끼고 포기하고 타협했고, 그럼에도 본업으로 돈도 벌면서 여전히 나름대로 열심히 음악도 하고 글도 끄적이면서 방황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의 뉴메탈을 좋아하고 동경했기에 지금의 밴드를 하고 있지만 최대한 거기에 갇히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해 왔고, 국내에 비해서는 그래도 많이 활발한 일본의 메탈 및 코어 씬도 동경하면서도 질투심을 느끼기도 한다. (메탈치고는) 아기자기하고 밝은 사운드를 헤비한 음악에 섞고 있지만 가사들은 대부분 우울하고, 그럼에도 좋아서 하는 음악이기에 나름 듣기에 에너제틱하고 힘찬 구석도 있다.


정확한 워딩이 하나하나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라카미 다카시가 한 이야기 중에 '자신의 제일 추한 부분을 마주하지 못하면 진정한 예술은 나오지 않는다'라는 류의 말이 있었다. 이 문장이 나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이것이 옛날에 내가 지금보다도 더 열심히 열정을 쏟아부을 때 실패했던 원인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대였던 시절에 나는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지, 무대에서 어떻게 나를 포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치중했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보는 사람에게 더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있지도 않은 가짜 광기를 끄집어내기도 했고, 괜히 세 보이는 척을 했던 시절도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얕은 식견으로 가사를 휘갈기기도 했고, 누구누구가 요즘 무대에서 좀 멋있던데 나도 좀 흉내 내볼까 생각하며 비슷한 옷을 입어보고 머리도 바꿔보고 자세도 흉내 내어 보았던 부끄러운 시기였다.

강해보이고 싶었던 20대 시절

심지어 'Linkin Park나 Lostprophets 같이 잘 나가는 메이저 뉴메탈 팀들은 이니셜이 LP인데 우리 밴드도 뭔가 그 이니셜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L과 P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몇십 분 동안 조합해 보는 쓸데없는 일을 벌인 적도 있었다. 되돌아보면 그 과정 중에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능력과 한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실속 있는 고민은 전혀 없었다. 즉, 진정한 나와 마주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강해보여야 한다!!

심지어 지금 하는 밴드의 초창기 시절에도 이 악물고 우리를 소개하는 프로필에 '뉴메탈'이라는 단어를 피해 가던 적이 있었다. 철 지난 음악이고 멋있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굳이 크게 다를 것 없는 일본식 뉴메탈을 가리키는 용어인 '믹스쳐 락'으로 우리를 포장해서 내놓았고, 누군가가 우릴 가리켜 뉴메탈로 규정지으려고 하면 어깨를 붙잡고 강제로 정정시키기도 했다. 지금 아예 '한국식 뉴메탈'을 표방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이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 짓거리였던가'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온다.


2010년 즈음에 만들었던 곡 중 하나의 가사 중에 '나의 안에 길을 막는 저 작은 어린아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구절이 당시의 내 상태를 가장 여실히 드러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부족한 부분이나 추한 부분은 어떻게든 부정하고 가리려고만 하고, 얄팍한 고민과 조바심에만 휩싸여서 맹목적으로 열심히만 하다가 소소한 좌절에 부딪히기만 해도 바로 꺾이던 시기였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원상 시리즈 중 ‘각성’

다행히 지금은 나도, 우리 팀의 구성원들도 이런 얄팍한 시기는 잘 극복하고 벗어났기에 어느덧 나름 씬 안에서 롱런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나 자신을 마주하고 그 속에 있는 좋은 것과 추한 것, 잘하는 것과 취약한 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녹여내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각성하고 전진해야 좋은 내일을 맞이하지 않을까 하는 진부한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짓는다. 어쨌든 좋은 전시를 보고, 좋은 영감을 받았고 이로 인해 미흡하게나마 감상을 적어보니, 이 글을 읽는 그 누군가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 '무라카미 좀비'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3/12까지만 진행하니 혹시라도 보러 가실 분들은 발걸음을 서두르시길.

작가의 이전글 좋아하는 밴드가 나이 들어간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