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브라질리에 특별전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 중인 '앙드레 브라질리에 특별전'을 얼마 전에 관람하고 왔다. 사실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나에게는 생소한 아티스트였다. 와이프가 본인이 좋아하는 작가이니 전시를 보러 가자고 했을 때 '앙드레 브라질리에? 남미 사람인가?'라고 단순하게 의문을 가질 정도였으니 내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남미가 아닌 프랑스 사람이었고 무려 93세인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대단한 아티스트였다.
앙드레 브라질리에를 홍보할 때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캐치프레이즈와 태그는 '색채'라는 단어였던 것 같다. 그는 색을 선택하고 배치하는 데에 있어서 탁월한 센스를 지니고 있는 미술가이며, 그가 가진 다른 강점과 재능에 비해서도 그 부분이 확실히 두드러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단순히 색을 잘 쓴다는 점 외에도 그의 그림에는 재미있는 포인트들이 많았다.
일단은 대충 그의 그림들을 훑는다면 다른 미술가의 그림에 비해 그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완성되어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틈없이 덧칠이 되어 있는 다른 유명 예술가의 그림에 비해 유독 많은 흰 공간들(물론 자세히 보면 이 부분 역시 성의 있게 흰색으로 치밀하게 메꿔져 있지만), 그 아래로 뚜렷하게 보이는 스케치 선, 애매하게 만화적이거나 동화적이면서도 은은한 인물들의 표정 등 권위 있는 아티스트의 그림이라기엔 묘하게 치기 어린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것이 역으로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그가 그리는 작품의 소재는 의외로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음악, 서커스, 말, 바다의 풍경, 그의 아내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모티프로 반복적으로 그림을 그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황금색 공간 안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파란색이나 붉은색의 강렬한 빛깔 속에서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말들, 다소 도도하면서도 따뜻해 보이는 아내의 옆모습 등 그의 작품엔 그가 좋아하는 것들과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그림 자체로만 봐서는 이것이 어느 시기에 그린 그림인지 특정 짓기가 매우 어렵다. 오랜 시간 동안 붓을 놓지 않으면서도 화풍에 거의 변화가 없었고 주제에도 정서에도 초기 그림과 후기 그림의 차이가 없는 편이기에 1975년의 그림과 2020년의 그림을 바로 옆에 두어도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1960년대에도 말을 그렸고 2000년대에도 말을 그렸으며, 머리색이 이따금 금발과 흑발을 오가는 것을 제외하면 그의 아내의 얼굴은 그림 속 세계에서는 늙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일관된 취향, 끊임없는 애정과 사랑이 작품에 시기와 상관없는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 미술을 좋아했다. 미술을 좋아했다기보단 단순히 그림 그리고 낙서하는 것을 즐겼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엔 교내 미술 대회에서 입상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던 3~4학년 시기에도 나는 늘 책상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었고 거기에서 좀 친해진 친구들에게는 내가 만든 신 캐릭터, 새로운 슈퍼히어로를 보여주고 자랑하면서 놀았다.
문제는 한국에 돌아온 5학년 즈음의 시기부터 발생했다. 유명 미대와 인접했던 우리 초등학교는 고학년에게는 입시 미술 위주로 가르치는 기조가 있었고, 그때부터는 학원이든 학교든 상관없이 나의 그림에 대해 칭찬보다는 비판과 조정이 이루어졌다. '이런 표정은 만화에 쓰는 것이지 회화에 쓰는 것이 아니니 다음부터는 다르게 그려야 한다.', '풍경화에 그려진 새가 눈이 만화적이니 평범하게 바꿔라.', '포스터 칼라로 제도를 하라고 했는데 웬 고양이를 그려놨냐' 등의 질책에 지치게 되었고 이후에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게 되었다.
이후 평범한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다시 상대적으로 미술을 잘하는 학생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이미 한국 미술 입시교육을 미리보기한 나는 '안 될 거야 아마'라는 마음가짐이 뼛속 깊이 자리하여 그림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태우기는 힘든 상황이 되었다. 시간을 돌려 그때로 돌아가 선생님에게 "아닌데요?! 만화 스타일이 아니라 앙드레 브라질리에 오마주입니다만?! 선생님 앙드레 브라질리에 모르시나요?"라고 외친다면 그 이후에 미술 쪽으로 더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냥 두들겨 맞고 끝났을까?
앞서 말한 일관된 취향과 화풍으로 인해 그림의 시기를 특정 짓기 힘들다는 점은 사실 1900년대 이후에 오랫동안 활동한 미술가들에게서는 의외로 찾기 힘든 점이다. 아니, 미술에 한정 짓지 않아도 음악 쪽에서도 정말 쉽지 않다. 사람이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본인의 나이에 따라 취향이 바뀌고 정서가 변한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예술가라면 주변의 트렌드나 흐름, 업계의 강요에 의해서라도 억지로 본인의 스타일을 바꾸거나 모험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때, 변화를 빠르게 캐치하지 못한다면 유행에 뒤처지게 되고 더 이상 팔 수 없는 작품을 만들게 되니 본인이 원치 않아도 불가피하게 작풍을 바꿔야 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렇게 이 악물고 억지 노력까지 했는데 주위의 평가가 떨어진다면 재기가 힘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지명도와 권위가 있는 아티스트의 입장에서도 굉장한 압박으로 다가오는 일일 수 있다.
이것은 게다가 예술가 및 창작자에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일반인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야, 아직도 락을 듣는 사람이 세상에 있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네?" "에미넴, 스눕독은 이제 틀딱 힙합 아님?" "몇 살인데 아직도 일본 만화 보냐? No Japan 몰라? 매국노임?" "같은 영화를 20번이나 봤다고? 시간 많아서 좋겠다, 야." 등 남의 취향을 폄하하고 자연히 어른이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사회의 암묵적인 룰이 있기에 어릴 때의 흥미와 테이스트를 유지하는 이들을 싸잡아서 피터팬 컴플렉스에 사로잡힌 애어른으로 규정짓는다. 그렇기에 한국의 성인들은 무슨 금지된 마약이라도 하는 것처럼 남몰래 숨어서 자신의 취미를 영유해야 하는 웃픈 경우도 생긴다.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작품에는 이러한 트렌드의 변화에 묵직하면서도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뚝심 있게 나답게 살아간다고 해서 꼭 나쁜 것도,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일관된 애정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고 꽉 찬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라는, 어찌 보면 시대의 흐름에 반하는 깨달음을 그의 작품은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93세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리며 아내와 금슬 좋은 부부생활을 유지하며 장수 아티스트로 천수를 누리고 있는 그를 보며 40세의 호러매니아이자 철 지난 뉴메탈 음악을 하고 있는 보잘것없는 나도 괜찮게 살고 있지 않은가라는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