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돌아오지 않는다

Cranberries - Everybody Else is...

by 핵보컬

어린 시절의 추억 중에 가장 즐거웠던 날 중 하나로 기억되는 것이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중의 하루이다. 방학을 맞아 이모 가족이 살고 있던 미국으로 놀러 갔는데, 한국에서 알게 된 대학생 교포 형이 마침 그 지역근방이 본가라 와 있었기에 약속을 잡고 만나게 되었다. 그 형과 이모의 아들이었던 사촌동생과 셋이 함께 당시 현지에서 개봉했던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를 극장에서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타코벨에 들러 칠리가 잔뜩 들어간 부리또를 먹었다.


희한하게도 가장 소중한 사람과 보냈던 시간도 아니었고, 뭔가 대단한 것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 날이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각인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날 관람한 '인디펜던스 데이'는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쥬라기 공원'의 뒤를 이을 만한 초특급 핵꿀잼 블록버스터였고, 저녁때 먹은 칠리 부리또는 이후에 그 어떤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먹은 메뉴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게 뭐라고...

그러나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마 그날 먹은 타코 벨 메뉴는 지극히 평범했을 것이고, 그렇게 재밌게 본 '인디펜던스 데이'는 지금 다시 보면 추억 보정을 아무리 씌우더라도 완벽과는 거리가 꽤 있는 영화이다. 당연히 그날만 타코벨에 스페셜한 셰프가 다녀갔을 리도 없다. 한국에 돌아와 신문(그렇다. 옛날엔 종이신문이란 게 있었다)의 문화 칼럼에서 '인디펜던스 데이'를 '미국 중심주의로 가득 찬 평이한 블록버스터'라고 혹평한 것을 보고 "여기 다 영화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구만!! 이게 얼마나 재밌는데!!"라고 분개했지만 시간을 지나 돌이켜보면 '인디펜던스 데이'만큼 아메리칸 국뽕으로 가득 차 있는 영화를 찾기가 힘들 정도인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마 이 날의 기억이 대단히 미화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지 1년 만에 다시 들른 미국 여행으로 인한 설레는 기분, 까탈스러운 초등학생 둘을 데리고 반나절 이상 놀아준 그 형에 대한 고마움, 극장 상영관 안에서 방청객 뺨치는 리액션으로 웃고 환호성을 지르던 미국 현지 관람객들로 인해 업그레이드된 현장감, 당시 한국엔 멕시칸 레스토랑이 거의 없었기에 부리또 속 칠리 한 방울마저 귀중하게 여겨졌던 인식 등이 그날을 내 인생 최고의 하루 중 하나로 왜곡(?)시켜 준 것이다.

이게 뭐라고...2

만약 지금 더 고급스러운 멕시칸 레스토랑 메뉴를 테이크아웃해서 거실 홈 씨어터를 최고 볼륨으로 키우고 다시 4K 영상으로 '인디펜던스 데이'를 관람한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그 기분을 재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 이런 기분이었지.'라는 감상에 잠시 젖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대부분 그런 소회는 10분 정도 지나면 자연스럽게 희미해지고 만다. 우리 인생의 많은 것들이 이러하다.


동전이 없어 오락실에서 눈길만 주던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을 집에 있는 콘솔 게임기로 처음 플레이하게 됐던 날의 기억, '쥬라기 공원'에 나온 거대한 티라노사우르스 장난감을 박스에서 꺼냈을 때의 설레는 마음, 신촌 공연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친해진 다른 밴드 멤버들과 밤새 술을 퍼마시고 새벽에 매운 라면을 함께 흡입하며 해장하던 날 등 설레고 재미있었던 기억으로 각인된 순간들은 그것을 다시 재연하려고 할 때 대부분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더 좋은 화질로 고전 게임을 손쉽게 플레이할 수 있고, 추억의 장난감도 이베이에서 돈만 주면 대부분 구해서 이전에 갖추지 못했던 풀 세트를 갖출 수도 있고, 시간만 맞으면 그날의 밤샘 술자리 멤버들을 모을 수도 있지만 당시의 즐거움은 절대로 똑같이 살아나지 않는다.

집에 티라노 하나쯤은 있어야지...?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저주에 걸린 주인공 필의 이야기로 펼쳐지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원제: Groundhog Day)'에서 그는 여주인공인 리타를 꼬시기 위해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기억이 매일 리셋되는 점을 이용하여 그녀와 같은 날 데이트를 반복하며 실수를 줄여가고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과 취향을 알아가며 어떻게든 자신이 완벽한 남자로 보이게끔 속이는 것이다. 거짓으로 가득한 데이트에도 당연히 진실된 순간도 있었는데, 저녁 시간 둘이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있던 동안 동네 꼬마들과 우연히 눈싸움을 하게 되고, 이후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다음 날(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같은 날이지만) 필은 또다시 리타와 가까워지기 위해 같은 장소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똑같은 동네 꼬마들과 억지로 눈싸움의 순간을 만들어내지만, 당혹스럽게도 그 직후 직면하게 되는 것은 그녀의 따뜻한 시선과 키스가 아니라 적당히 하라는 의미의 차가운 표정과 분노의 싸대기뿐이었다.

이때만 해도 좋았지...

영화의 한 장면일 뿐이지만 인간의 생각과 행동의 메커니즘을 이렇게 또 잘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이처럼 한 번 어떠한 일을 겪으면 우리는 어떤 차원에서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기 때문에 슬프게도 어린 시절의 즐거움과 청춘의 짜릿함은 결코 그대로 다시 느낄 수가 없다. 물론 이것이 꼭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을 바라보고 더 나은 행복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간이 설계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실제로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우리의 인생을 앞으로 끌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앞만 보고 피곤하게 살아가는 것이 걱정된다면 과거의 행복한 추억을 이따금 돌아보고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라고 생각하고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은가.

몇 분 후...

Cranberries의 'Everybody Else Is Doing It, So Why Can't We?'는 개인적으로 사실 'Dreams'와 'Linger'라는 걸출한 곡 두 개 외에는 크게 기억에 남진 않는 앨범이지만 왠지 추억이라는 키워드에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음반이기도 하다. 'Dreams' 같은 세련되고 신나는 곡에도, 'Sunday'나 'Pretty' 같은 몽환적인 트랙에도 공통적으로 쓸쓸함이 느껴지게 만드는 싱어 Dolores O'Riordan의 독특한 음색 덕에 뭔가 달콤쌉쌀한 오늘의 주제와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에 성인이 되어 맨하탄 어느 공연장에서 그녀의 단독 공연을 보았을 때는 진중할 것만 같았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무대에서 술 취한 원숭이마냥 독특한 무브먼트를 보이는 퍼포먼스에 당혹스럽기도 했다. 어린 시절 영화나 라디오에서 'Dreams'가 워낙 많이 나온 탓에 '저게 대체 누구 곡이지?'라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찾아 헤매는 고생을 겪게 만든 앨범이기도 하다(당시엔 인터넷이 발달해 있지 않았기에 라디오 DJ가 '이 곡은 누구누구의 뭐시기입니다'라고 말해주지 않는 이상 노래를 듣고 어떤 가수의 것인지 찾아내기가 참 힘들었다).


어쨌든 영화의 주인공 필이 결말 부분에서 여주인공의 마음을 얻게 된 것은 그가 끊임없이 과거를 반복하며 최선의 결과물을 이끌어낸 덕분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배우고 남들을 도우면서 유일한 가변 요소(?)였던 스스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켰기에 가능했다. 추억을 토대로 경험을 쌓아가고, 그 경험 위에 또 다른 결과물을 올리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면 또 어느새 어린 시절의 행복감을 능가할 만한 또 다른 무언가가 우리를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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