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da Trio - Slow Bullets
교토의 지하철역 진구마루타마치의 2번 출구는 신기하게도 한 클럽의 입구와 연결되어 있다. 일상에 지친 시민들 외에 관광객들은 거의 드나들지 않는 지하철역, 그 출구에서 문 하나만 열고 들어가면 신나는 음악과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는 곳이라니 마치 호그와트의 9 ¾ 플랫폼도 생각나고 왠지 멋지지 않은가. 어떤 책자에서 이 클럽 Metro라는 곳에 대한 정보를 접한 이후 나는 교토에 가면 무조건 들러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2016년 겨울의 어느 날, 실제로 그 입구에 들어설 수 있었는데, 분위기부터 사람들, 구조까지 모든 것이 독특한 장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벽 한 구석의 기둥에 붙어있는 금연 표지판 바로 아래에서는 동방의 밥 말리와 열도의 스눕독이 담배를 태우고, 머리와 수염이 희끗희끗한 초로의 DJ는 가사를 캐치할 수 없어도 분노만은 확실히 전달되는 랩메탈 넘버를 틀며 어깨를 들썩인다. 들어가서 보이는 3면의 벽에는 모두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중 한 곳에서는 아티스트들이 떼 지어 함께 벽에 있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예술을 선보이고 다른 두 무대에서는 만담과 라이브 공연이 교대로 펼쳐진다.
퍼포먼스의 퀄리티는 들쑥날쑥이었는데, 오키나와 전통악기를 들고 고수의 풍모를 보이던 한 노인은 올라가자마자 식은땀을 흘리며 "아...저 오늘 이거 세 번째 쳐보는 건데...긴장되네요...허허(아니 대체 그러면 무대에 왜 올라간 거야?!)"라는 멘트를 하더니 정말 세 번만 연습해 본 듯한 실력으로 관객의 불안감을 자아냈고, 통기타를 들고 보사노바의 정수를 보여줄 것 같았던 외모의 남미 청년은 난데없이 어눌한 발음으로 엔카를 부르다가 조용히 무대를 마무리지었다. 물론 그 와중에 괜찮은 수준의 무대를 보여주는 밴드들도 중간중간 있긴 했으나 기억에 강하게 남은 이들은 지독하게 형편없는(하지만 흥미로운) 공연을 한 이들이다.
캔버스에 붓질을 하던 이들 중에 (랩퍼 이하늘을 닮은) 청년 하나가 나에게 오더니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는 재일한국인이라며 기념으로 맥주를 사겠다 하고 쿨하게 내 손에 한 잔을 건네주고 다시 무대로 오른다. 새벽 한시쯤 클럽 문을 나서며 공연이 언제쯤 끝나느냐고 카운터에 물었더니 이런 식으로 밤새 진행된다고 하길래 아무래도 다음 날도 신나게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 거리를 잠시 서성이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향했다.
별다를 것 없는 경험일지도 모르고 사실 이보다 더 좋은 공연과 공연장은 세상에 널려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날의 기억,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던 시간의 공기와 그 안에 있던 이들의 기묘한 아우라 등 많은 것들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이 날의 기분을 다시 떠올리고 싶을 때 내가 듣는 음악은 Tonda Trio의 Slow Bullets이다.
Bulljun, Nakai Daisuke, Tonda Kiyoshi 3인의 음악 프로젝트인 Tonda Trio는 Slow Bullets가 유일한 릴리즈이고, 솔직히 얘기하면 Bulljun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어느 그룹에 속한 이들인지, 프로듀서인지 DJ인지조차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Bulljun 특유의 미묘한 느낌을 좋아해서 다른 앨범도 몇 개 갖고 있지만 취향을 좀 타는 음악이기에 함부로 남에게 추천하긴 힘들었는데, 오히려 요즘은 Lo-Fi라는 이름으로 이런 인스트루멘탈 힙합 음악이 불특정 다수에게 유행인지라 예전보다는 다른 이들에게 권하기가 쉬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감상에 빠지기 좋은 음악일 수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는 그냥 재미없고 지루한 음악일 수도 있는데, Chet Baker의 It's Always You를 샘플링한 곡 'time afta'는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자주 듣는 애청곡이다. 이 외에는 딱히 한 두 트랙을 집어서 추천한다고 이야기하기가 힘든 것이 앨범 전체가 하나의 흐름을 갖고 있는 소품과 같은 느낌이기에 어떤 곡을 특정 짓기가 쉽지 않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이 앨범에 대한 내 감상은 조용한 섬의 부둣가, 밤바다에서 커피를 내려마시는 느낌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Club Metro는 한 차례 위기를 겪은 듯한데, 아직 성업 중인 걸로 봐서는 그 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한 걸로 보이고 SNS로 확인해 본 결과 나에게 맥주를 건네준 이하늘을 닮은 청년 역시 같은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잘 살고 있는 듯하다. 이후에 몇 차례 교토를 더 방문했지만 왠지 그때는 발걸음이 향하지 않았기에 한 번의 기억으로 짙게 남아있는 그곳, 그날의 밤이 떠오를 때면 계속 이 앨범을 듣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