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게 서울을 음악으로 들려달라 한다면

아소토 유니온 - Sound Renovates a Structure

by 핵보컬

21세기가 오기 전까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미지에 대해 고민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빈곤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독재정권이 물러나니 교묘하게 IMF가 뒤통수를 때렸고, 기업은 오로지 성장을, 학생은 오로지 대학진학을 부르짖으며 그렇게 치열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환경오염은 경제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부작용이었을 뿐이었고, 문화 컨텐츠라는 건 그냥 적당히 미국이나 일본의 잘 나가는 것을 베끼면 되는 것이었다.


2000년대 초 이후에 어느 정도 다시 경제적인 안정을 찾고 일반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다니게 되면서 자연히 눈이 높아지게 되었고, 주변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던 것 같다. 한국에는 왜 유럽 같이 캐주얼하게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노천카페가 없는지, 일본 같은 예쁜 소품샵이 존재하지 않는지, 한강에는 왜 세느강같은 낭만이 없는지, 우리의 드라마와 예능은 왜 미드나 일본 예능처럼 재미가 없는지 등에 대한 불만 섞인 자아 성찰이 시작되었고, GQ나 에스콰이어 같은 잡지들이 서울의 '신사'들을 계몽시키겠다는 사명을 띠고 '멋진 남자라면 들어야 할 음악' 류의 기사들을 남발하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맨 아이덴티티란 무엇일까...?

이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컨텐츠들도 있고, 서울에도 맛있는 것 먹고 재미있는 것들 쇼핑할 곳들이 많이 생겼으니 예전 생각을 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물론 당연히 지금도 문제들이 수두룩하고 아쉬운 점들이 많지만, 사실 그것은 당시 우리가 동경하던 다른 대도시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세느강은 더럽고, 일본의 소품샵들도 실상은 폐업과 창업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제는 미드가 한국 드라마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그냥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금은 들고 있다.


한 도시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형상화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개인적으로는 파리에 가면 마치 콜 포터의 음악을 들어야 할 것 같고, 뉴욕에서는 모비나 케미컬 브라더스를, 도쿄에서는 타에코 오누키의 곡들을 틀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물론 이건 시기 별로 다소 변화가 있다), 서울을 생각했을 때는 상황과 시기와 상관없이 꾸준히 단 하나의 앨범만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바로 밴드 아소토 유니온의 'Sound Renovates a Structure'이다.

보컬과 드럼을 겸하는 김반장과 키보디스트 임지훈, 기타리스트 윤갑열과 베이시스트 김문희로 구성된 4인조 밴드 아소토 유니온은 첫 데뷔와 함께 인디씬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나름 큰 화제를 모았으나, 2001년부터 2005년까지 활동한 후에 아쉽게도 해체했다. 물론 이후에 각 멤버별로 꾸준히 좋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소토 유니온과는 너무나도 다른 음악을 하고 있기에 이들이 함께 만든 이 음반은 너무나도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평가 면에서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꾸준히 올라가는 등 인정을 받은 앨범이고, 굉장히 세련되고 그루브감이 돋보이면서도 묘하게 한국적인 느낌도 있어서 내 머릿속에 각인된 2000년대 서울의 이미지, 내가 젊고 어릴 때 겪은 나의 도시의 느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해 주는 음반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는 인기곡 'Think About' Chu' 외에도 강렬한 그루브감으로 앨범의 초반부를 견인하는 'We Don't Stop (feat. 이주한)', 윤미래의 보컬이 밴드의 연주와 시너지를 이루는 'Blow Ma Mind', 다이나믹 듀오의 랩이 훵키한 그루브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Mad Funk Camp All Starz', 유연하면서도 루즈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Liquid' 등 세련되면서도 적당히 인디밴드 특유의 거친 느낌이 은은하게 드러나는 매력적인 트랙들이 앨범에 가득하다. 이들의 최고 히트곡 외에 나머지 곡들은 생경하다거나, 예전에 한 번 들어보고 오랫동안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이들이라면 오랜만에 지금 이 앨범을 청취해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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