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boy Slim - You've Come a Long Way...
얼마 전 와이프와 함께 집 앞 공원을 산책하던 중 인상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산책로에서 살짝 벗어난,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덤불 쪽에 한 일행이 있었는데 사진을 찍는 중인 듯했다. 피사체가 된 여성은 쪼그려 앉아 포즈를 잡고 있었고 제법 힘들어 보이는데 표정만은 매우 평온해 보였다. 그런데 찍는 구도와 햇빛의 각도, 모델의 표정을 대충 계산해 보니 꽤나 괜찮은 사진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우리가 SNS에서 보는 '한가로운 피크닉을 즐기는', '인생사진 찍을 수 있는 여행스폿' 등의 태그라인이 붙는 사진은 대부분 저런 식으로 찍는 것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즉, 한가롭게 피크닉을 즐기는 듯 보이는 포스팅을 업로드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해당 순간에 생각만큼 편안하지 않은 것이다.
거창하게 멀리 갈 것 없이 이런 것이야말로 흔히 얘기하는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의 표본이 되는 경우가 아닐까 한다. 그 사진을 보고 많은 이들이 '아, 이 사람은 참 멋지고 여유롭게 사는구나. 부럽다.'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정작 그 사진을 찍거나 찍히는 사람은 예상 밖으로 여유가 없다. 우리는 항상 남의 인생을 보며 '와, 저 정도만 되면 진짜 세상에 걱정이 없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부러워하지만 당사자의 인생은 문제 투성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의 인생을 가장 멋지고 좋은 것으로만 포장한다고 생각해 보자. 네임드 종합병원에서 수련을 받은 치과의사인 동시에 올해 대중음악상에 노미네이트 된 인디밴드의 보컬도 맡고 있고, 남는 시간에는 글을 쓰기도 하며, 대부분의 여유 시간은 아내와 함께 보낸다. 이렇게만 써놓으면 거의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같은 느낌도 들고 묘하게 비현실적이기도 하며, 내 인생이지만 ’다 가진 사람‘ 같이 보이기도 해서 뿌듯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실제로는 걱정과 불안이 가득하다.
오늘 내가 치료한 환자가 이가 치료 후에 더 아파졌다고 돌아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불안에 늘 시달리고, 지금 일하는 병원에서 잘리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하며, 이번 주 공연에 객석이 텅 비어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에 악몽을 꾸는 일이 다반사이다. 노미네이트 되었다고 해도 아무 상도 실질적으로는 받지 못했다는 것이 현실이고, 당연하게도 밴드는 만년 적자이다. 물론 이것은 또 극단적으로 불행 회로를 돌려 서술했을 경우의 이야기이고 실제 나의 인생은 이 모든 것이 혼합된 어딘가에 있다. 많은 것들이 주어지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감사한 삶이지만 그것에 따라오는 부담도 많고, 내가 드디어 10점 만점에 10 정도를 해냈다고 생각하고 뿌듯해하면 실제로 만점은 100이었다고 뒤통수를 치는 게 우리 인생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한 편으로는 끊임없는 동기부여로 우리를 끌어주는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비극이든 희극이든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나와 내 소중한 사람의 인생이 제일 행복한 것이고 거기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때로는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으로 내가 성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비교와 질투 혹은 멸시는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법이 없다.
영국의 일렉트로닉 뮤지션 Fatboy Slim은 이러한 우리 인생을 대변하는 듯 한 편으로는 시니컬하고 우스꽝스러우면서 신나지만 그 안에 묘하게 애잔한 느낌이 섞여있는 음악을 한다. 영국식 유머가 녹아있는 정통의 댄스뮤직이라고 해야 하려나. 애초에 Fatboy Slim이라는 이름 자체가 ‘고도비만 홀쭉이’ 같은 어감이니 그 안에 이미 이중성이 있는 묘한 코드의 유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비장하게 시작하는 오프닝 트랙 ’Right Here, Right Now’, 여러 매체에 삽입되어 이미 많은 이들에게 친숙할 ’Rockafellar Skank’, 시간이 흐른 지금도 묘하게 힙한 느낌이 드는 ‘Gangster Tripping’과 따뜻한 정서의 힐링 댄스곡 ’Praise You’까지 전곡이 감상용 댄스음악으로 손색이 없는 안정된 퀄리티를 자랑한다.
남들에 비해 내 인생이 유독 초라하게 느껴진다거나 미래가 불투명해서 숨이 턱 막히는 순간들이 있다. 혹시 그렇다면 잠시 긴장을 풀고 이 앨범에 스스로를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앨범 타이틀 자체도 조용히 위로를 건네는 듯하지 않은가? You’ve Come a Long Way, Ba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