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철저히 개인적이다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생성되는 나만의 커스텀 플레이리스트

by 핵보컬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음악을 만들 때는 어떠한 창작자의 의도가 담겨있기 마련이다. 본인이 느낀 경험이나 인상적이었던 일들과 그에 따라 느낀 감상과 감정을 토대로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게 되고, 그것은 선율과 가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된다. 그 경험은 이별이나 여행, 일상에서의 소소한 일들일 수도 있고, 그냥 가만히 누워서 사색에 잠겨있다가 갑작스레 무언가 떠오른 것일 수도 있다. 어떤 뮤지션들의 경우 의도적인 모호함으로 곡의 진의를 감춘 채 '해석은 듣는 여러분의 몫입니다.'라며 감상을 온전히 청자에게 넘기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의 곡들에서는 창작자의 의도가 꽤나 명확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하지만 의외로 여러 음악을 듣고 즐기다 보면 그 곡을 듣고 느낀 나의 감동은 본래의 곡의 창작 의도와 다른 부분에서 생기기도 하고, 결국 본래의 가사나 선율이 담은 의미와는 전혀 무관한 상황에서 나만의 인생 BGM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예전에 일본 큐슈 지역의 가고시마에서 배를 탄 적이 있다. 정확히 어디에 가기 위해서 배를 탔는지, 최종 목적지에서 한 여행이 나의 마음에 들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굉장히 모호하지만, 당시에 나의 이어폰에서 나오던 음악만큼은 뚜렷하게 생각이 난다. Katie Melua의 'Nine Million Bicycles'라는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가고시마의 물가의 소박한 풍경과 곡의 동양적인 악기 선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굉장히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실제로 곡의 가사에 주로 나오는 지명은 중국의 베이징이지만, 나에게 있어서 'Nine Million Bicycles'는 가고시마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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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그런 곡들은 수도 없이 많다. 페퍼톤스의 'Robot'은 내가 여행지에서 내리자마자 공항에 들어설 때 트는 여행 시작의 BGM이고, 다시 돌아오는 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재생하는 여행 종결의 BGM은 Matchbox 20의 'Parade'이다. The 1975의 'It's Not Living (If It's Not with You)'는 실제로는 마약 중독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노래이지만 내게는 우리의 결혼을 상징하는 로맨틱한 곡 중 하나이다. 이렇듯 내 개인의 인생의 플레이리스트는 본 창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커스터마이징되어 있는데, 이건 이것대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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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여행을 다닐 때 사진 찍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적이 있다. 같이 여행 간 친구가 "풍경은 너의 눈에 담는 것이지, 사진으로 찍는 건 진정한 추억으로 남지 않아."라고 한 말이 왠지 모르게 멋있는 것 같아서 디카로든 폰으로든 사진을 찍지 않고 열심히 기억에만 담았다. 그 결과 당시에 여행에 대한 집중도는 높았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억이 점점 흐려져가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후에는 다시 사진을 좀 찍었는데 확실히 예쁘지 않은 사진이라도 찍어놓는 것이 나중에 그 여행을 먼 훗날 떠올릴 때라도 조금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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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음악도 그 비슷한 기능을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특정 시기에서 나에게 어떤 경험들이 어떠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는지, 그 당시의 음악을 오랜만에 재생시켰을 때 이따금 잊고 있던 기억들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있다. 조금 오글거리는 표현을 쓰자면 음악이란 인생이라는 여행에 있어서 청각과 기억에 담는 사진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떠한 도구라도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은 개개인의 몫이다. 그냥 단순히 운전할 때, 일할 때나 집에 있을 때 정적이 싫어서 배경에 깔아 두는 땔감으로 음악을 쓸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깊이를 갖고 거기에 파고든다면 훗날 내 인생을 추억할 때 그 기억과 감정이 더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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