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TM - The Battle of Los Angeles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음악계의 음유시인 Gil Scott-Heron의 곡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은 이후 수 없이 많은 뮤지션 및 아티스트들에게 인용되며,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단순히 액면 그대로 '혁명은 TV 방송으로 중계되지 않습니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무언가를 바꾸는 큰 움직임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앉아서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을 벗어나 스스로 일어나서 적극적인 행동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 문장의 핵심일 것이다. 특히 힙합과 알앤비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Gil Scott-Heron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정신을 가장 잘 이어받아 실행한 뮤지션은 랩메탈의 선구자인 4인조 록밴드 Rage Against The Machine(줄여서 RATM)이 아닐까 생각한다.
메탈과 힙합의 가장 날카롭고 사나운 부분의 접점을 훌륭하게 살려낸 그 음악성 면에서도 데뷔부터 항상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이들이지만 RATM의 음악에서 중요한 또 다른 포인트는 바로 이들이 그 어떤 하드코어 펑크 팀이나 래퍼들보다도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목소리,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힘썼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절제되어 있지만 바운스가 살아있는 그루브 위에 개성적이면서도 헤비한 기타 리프를 얹고, 거기에 분노 게이지가 항상 최대치에 올라와 있는 듯한 랩과 샤우팅을 내지르는 밴드의 음악은 록과 메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적극적인 헤드뱅잉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깊이가 있으면서도 직설적인 가사를 통해 청자에게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도 마련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Saturday Night Live 촬영장에서 국기를 거꾸로 거는 퍼포먼스를 행하려다가 쫓겨날 뻔하고, 월 스트리트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도 하는 등 이들의 과격한 행동력도 음악 못지않게 RATM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일 것이다.
총 3장의 오리지널 정규앨범, 그리고 커버 위주로 이루어진 마지막 음반 'Renegades'에 이르기까지 10년에 가까운 정식 1차 활동 기간 중에 낸 음반 중에 버릴 음반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이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그 기량이 절정에 오른 앨범이 세 번째 정규앨범인 'The Battle of Los Angeles'라고 생각한다. 시작의 포문을 파워풀하게 열어주는 첫 번째 트랙 'Testify'부터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고, 취향에 무관하게 록에 관심이 없는 이라도 몸을 들썩거리게 만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신나는 랩메탈 넘버 'Guerilla Radio', 다소 느슨하게 시작하지만 한 번 들으면 잊기가 힘들 정도로 중독성이 있는 훅을 자랑하는 'Calm Like a Bomb', 흥겨움의 게이지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리는 트랙 'Sleep Now in the Fire'까지 알차게 꽉 차 있다.
이들은 2000년에 보컬 잭 드라 로챠의 탈퇴를 기점으로 활동을 접은 후, 2007년에 잠시 재결성 후 활동을 하기도 했고 2019년에 또다시 재결성을 하고 2022년에 공연도 하는 등 이따금 그 존재감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으나, 2000년의 'Renegades' 앨범 이후 이들의 새로운 음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앨범을 남기느니 좋은 모습만으로 기억되고 싶기에 내린 선택일 수도 있고, 재결성이라는 것 자체가 그냥 이따금 공연이나 좀 돌면서 왕년의 올드 팬들에게 추억 묻은 돈이나 뜯어내려는 상업적 계획일 뿐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새 음악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지금의 사회가 예전만큼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어려운 세상으로 변모하기도 했고, 이들 역시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가 알던 세상은 흑백보다는 회색지대가 더 넓어지게 된다. 너무나도 다양하고 많은 가치들이 충돌하고, 누군가를 불평등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회 정의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부수적인 피해자가 새로이 등장하기도 하고 피해자가 피의자가 되기도 하는 등 지금의 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하다. 게다가 20대의 내가 지금과 다른 것처럼 이들 역시 예전과 같은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정치적으로 큰 시야는 비슷할 수도 있으나 세세한 부분에서는 살아온 세월만큼 각자 의견차가 점점 더 벌어졌을지 모른다. 심지어 이들 중에 더 이상 정치나 사회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할 생각이 없는 멤버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더 심하게는 아예 반대 측으로 정치적 철학이 옮겨갔지만 대놓고 드러내지만 못하는 이도 생겼을 수 있다.
살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정의가 나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고 내가 지지하던 이들이 그 누구보다도 큰 실망감과 좌절을 안겨주는 일이 생긴다. 이런 일을 겪고 마음의 혼란이 생김으로 인해 사회에 대한 관심을 끊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예전처럼 내가 믿는 신념에 관해 주변에 소리 지르며 외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예전처럼 젊은 시절의 신념을 억지로 외친다면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 되고, 각자의 의견차를 피해서 두리뭉실한 메시지를 조심스레 내세운다면 맹숭맹숭한 빛바랜 칼날로 멈추고 만다. 게다가 음악계의 전설에 대한 기대치는 한없이 높아지기만 한 현 상황에서 RATM의 신보가 음악 팬들의 기대를 채울 수 있을 확률은 훌륭한 스타워즈 속편이 나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음악이 나오지 않더라도, 잭 드라로챠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결성해서 내세우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잭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플랫폼이 힙합듀오 Run the Jewels의 곡들 중 단 두 곡의 몇 소절뿐이라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다. 이들이 전설적인 기량을 뽐내고 한창 건방지고 멋졌을 때, 가장 빛나는 시기에 발매한 훌륭한 앨범들이 이미 과거에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 주었고 그것이 그리울 때 언제든 우리는 그 음반들을 재생하며 가끔씩 마음만이라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이 4인조는 언제나 우리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준 전설들로 존재할 수 있고, 아직 모든 멤버들이 살아 있기에 "아직 우리 죽지 않았다!"를 외치며 무대 위의 반가운 모습으로 가끔씩 만나볼 수도 있다. 굳이 새 앨범이 나오지 않아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더라도 Rage Against The Machine은 그 정도 밸런스로도 딱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