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975 - A Brief Inquiry into...
예전부터 자연스럽게 멋이 뿜어져 나오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해서 더 멋져 보였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여행을 다녀와도 나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한 것처럼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해서 대단한 여정을 지나온 듯한 글을 쓰고, 같은 장소를 카메라에 담아도 훨씬 더 멋스럽게 사진을 찍는 이들, 딱히 패션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은데도 기본적인 면바지에 셔츠만 입어도 멋이 뿜어져 나오는 이들에 대해 동경 같은 감정을 품어왔던 것 같다. 대학교 때는 의대생 신분으로 오토바이로 남미대륙을 친구와 횡단한 후 쿠바 혁명의 주도적인 인물이 된 혁명가 체 게바라가 너무 멋져 보여서 평전도 구매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20대 후반에는 비슷하게 자신의 방랑기를 포함한 자전적인 경험을 녹여내서 탐미적인 소설 '길 위에서'를 집필하여 비트 세대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작가 잭 케루악이 멋져 보여 그의 책을 사기도 했다.
책들을 사서 읽어본 결과 든 생각은 '아, 멋지기는 하지만 나와는 역시 다른 사람들이구나.'라는 감상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너무 멋지다는 열등감 섞인 찬사만이 내가 느낀 전부는 아니었고, 생각보다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공감하기가 좀 힘들었고, 책의 문체나 전개도 나와 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무조건 인물의 좋은 면만을 집중해서 묘사하는 듯한 체 게바라 평전도 좀 부담스러웠고, '길 위에서'는 뭔가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무엇보다 두 책 모두 너무 지루해서 끝까지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남다르고 대단한 사람들, 좋은 책이라는 걸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스타일은 아니다'라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잭 케루악이 부흥시킨(?) 비트 세대는 1940, 50년대 미국과 서유럽에서 풍요 속의 혼란에 휩싸이고 상대적인 빈곤감과 사회적 규율에 냉소와 좌절을 느낀 젊은이들이 일탈과 반항에 매력을 느끼고, 이들을 토대로 '힙스터'라는 용어도 탄생했다고 하는데 어찌 보면 지금 세계의 젊은 세대도 비슷한 면이 많고 이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꽤나 있을 듯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현세대 가장 핫한 밴드 중 하나인 The 1975의 밴드명이 잭 케루악의 시집의 뒷면에 있는 문구 "1 June, The 1975"에 영향을 받은 작명이라는 점도 꽤나 인상적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The 1975의 음악 역시 잭 케루악의 저서 비슷하게 탐미적이고, 틀을 깨는 측면이 있으며 꽤나 냉소적인 매력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데뷔 앨범부터 뭔가 레트로와 모던한 것을 적절하게 섞은 듯한 힙한 느낌의 사운드,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외모의 보컬과 뛰어난 비주얼의 뮤직비디오, 젊은 층에서 공감할 만한 가사와 퍼포먼스 덕에 The 1975는 화제와 인기를 얻었고, 특히 어린 여성팬들에게 열광을 받았다. 하지만 소녀팬을 몰고 다니는 밴드들이 흔히 그렇듯, 이들도 음악 매니아들과 평론가들에게는 호불호가 꽤나 갈리는 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집은 1집에 비해 좀 더 나은 평가를 받긴 했으나, 적지 않은 리뷰어들이 이들의 음악을 달콤하지만 공허하고, 껍데기만 화려한 속 빈 강정 같다고 표현하며 폄하하기도 했고, 비록 소포모어 징크스를 떨쳐내고 2집은 성공한 앨범이 되었지만, 3집 발매 시점에 이르러서는 이들을 좋아하는 팬들의 기대치는 엄청나게 높아져 있었고, 반면 이들을 아니꼽게 보는 이들은 팔짱 끼고 '다음에 얼마나 잘하는지 한 번 보자'라는 스탠스였기 때문에 이 즈음에 밴드 멤버들의 부담은 꽤나 상당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치열한 고민을 기울인 덕분인지 결과적으로 이들의 3집인 'A Brief Inquiry into Online Relationships'는 많은 평론가들에게 공통적으로 2018년 최고의 앨범 중 하나이자 이들의 대표작이라고 불릴 만한 걸작이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The Cure부터 Radiohead까지 아우르는 얼터너티브 록 음악부터 일렉트로닉 팝, 재즈 힙합까지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사운드와 앨범을 하나로 묶는 일관된 컨셉과 느낌, 냉소적이면서도 이전작들에 비해 좀 더 깊이 있는 가사와 다채로운 전개로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훌륭한 음반이다. 기타의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2번 트랙 'Give Yourself a Try', 달달한 일렉트로닉 팝 'TooTimeTooTimeTooTime', 레트로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잘 살아있는 록 넘버 'It's Not Living (If It's Not With You)' 등 좋은 트랙들이 포진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Common이 당장 랩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루브와 재즈스러운 풍부한 사운드가 돋보이는 'Sincerity is Scary'가 가장 인상적인 곡이라고 생각한다.
앨범의 러닝타임 내내 느껴지는 것은 이 음반을 만들기 위한 밴드 멤버들의 고민이다. 이전 앨범들에서 치기 어린 냉소와 비아냥만으로 가득했던 정서는 조금 더 따뜻해지거나 진지해진 부분이 있고, 사회적 이슈나 밴드 멤버들 스스로 겪은 약물 중독이나 다른 개인사적 문제를 통해 얻은 깨달음에 대한 것들도 가사와 음악적 메시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단순히 The Cure 같은 고전 밴드를 흉내 내고 그 느낌만을 내는 것을 넘어서서 보다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녹여내는 동시에 밴드 자체의 개성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 느껴지는 음반이다.
이전부터도 그런 측면이 있긴 했지만, 현세대는 특히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 성과, 시크하게 가만히 있어도 찾아오는 선물과도 같은 결과물에 더 집착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인스타 팔로워가 5천 명이어도 본인이 팔로우하는 이들이 100명 미만이면 인플루언서이고, 팔로워가 만 오천이어도 본인이 2만 명을 팔로우해서 얻은 결과라면 아무도 그것을 멋있게 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부계정으로 남을 팔로우하고 실제 맞팔은 본 계정으로 부탁드린다는 메시지를 남발하는 촌극을 펼치는 이들도 있고, 비단 SNS뿐만 아니라 실제 사회에서도 치열하게 노력하는 모습은 궁상맞다고 생각하고 나는 주지 않고 받기만 하는 걸 멋있게 보는 이상한 풍조가 보인다.
체 게바라가 여행 중 목격한 빈부 격차에 허덕이는 이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혁명가가 되었고 쿠바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만, 실제 그의 실패한 경제 정책과 그가 자행한 언론 탄압 및 비참한 죽음 등은 그를 치켜세우는 이들이 쳐다보지 않고 외면하는 이면이다. 잭 케루악이 3주 만에 '길 위에서'를 일필휘지로 완성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모두 그를 천재로 추켜세우지만, 그가 3주 내내 각성제를 복용한 상태였고 평생 약물 중독에 시달리다가 40대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주목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고민과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 성과는 극히 드물며, 별생각 없이 그냥 가만히 있는데 멋이 흘러넘치는 사람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The 1975의 3집 'A Brief Inquiry into Online Relationships'는 그런 고민과 노력이 드러나기에 더 멋지고 훌륭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멋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끊임없이 고민하고 걱정하는, 흠결 많은 인간이기에 더 좋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