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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보컬 Apr 06. 2023

Merry Christmas, Mr. Sakamoto

사카모토 류이치 - Three / async

2023년 3월 28일, 뮤지션 사카모토 류이치가 향년 71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오랜 기간 이어진 투병생활 와중에도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이어가던 그였기에 이번에도 또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으나, 수 차례 병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그도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022년 12월의 공연 'Ryuichi Sakamoto:Playing the Piano 2022'와 정규앨범 '12'를 끝으로 이제는 더 이상 그의 새로운 모습과 음악을 접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이미 탄탄하게 디스코그래피를 채운 그이기에 꽤 오랫동안 그의 팬이라면 충분히 앞으로도 그의 음악을 계속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많은 국내 매체에서는 그를 영화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 정도로 소개하고 있으나, 사실 이는 마치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를 얘기하면서 그의 밴드 경력을 싹 빼놓고 Social Network나 Soul의 사운드트랙만이 그의 경력의 전부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비록 세계적으로 제일 유명한 그의 작품이 'Merry Christmas, Mr. Lawrence' 같은 곡임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는 밴드 뮤지션이기도 했고, 일렉트로닉 아티스트이자 재즈, 보사노바, 심지어 힙합까지 시도한 다양한 면모의 음악가였다.

기억나나요 그 시절...

내가 그를 처음 접하게 된 건 2000년대쯤에 소위 '뉴에이지'라는 용어로 싸잡아 묶이던 인스트루멘틀 음악 중 일본의 곡들을 모아놓은 컴필레이션 앨범인 'Miracle J'였다. 해당 앨범에는 S.E.N.S., 히메카미나 카시오페아, 심지어 후카다 쿄코의 곡 등이 수록되어 있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으로는 'Rain'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곡 자체보다도 그에 대한 소개가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일본의 뉴에이지 아티스트이자 모델까지 겸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는데 당시에 이런 쪽 음악의 아티스트라면 조지 윈스턴이나 야니가 대표적이었기에 그냥 너드남에서 좋게 봐도 보헤미안 정도가 이쪽 장르 뮤지션들의 외모의 평균치라 생각되었기에 '배우나 모델까지 겸하는 미남/훈남이라니 꽤 멋있는걸?'라고 생각했었다.

멋짐이 폭발한다...?

이후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Merry Christmas, Mr. Lawrence'나 '마지막 황제'의 사운드트랙 등으로 그와 친숙해졌고, 좀 이례적으로는 그가 Morelenbaum 부부와 함께 했던 라틴 재즈 앨범인 'Casa'를 통해 그의 음악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솔직하게는 그의 초창기 시절의 밴드인 Yellow Magic Orchestra의 음악이나 일렉트로닉 앨범인 'Thousand Knives'는 나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탓에 몇 번 들어보긴 했으나 기억에 깊이 남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가 후기에 시도한 힙합 음악 중 하나인 U-Zhaan과의 합작 'Energy Flo'는 꽤 좋았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뮤지션은 딱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 같다. 듣기에 편안하면서도 사색에 잠기기 좋은 인스트루멘틀 음악을 하는 유명 뮤지션 류이치 사카모토와 늘 새로운 걸 시도하며 실험적인 음악인의 모범적인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일본 음악의 선두주자 사카모토 류이치의 두 가지로 말이다. 하지만 진지한 청취를 요하는 깊은 음악을 만드는 그에게 좀 미안한 말이지만 어떤 면모의 사카모토여도 상관없이 사실 내가 그의 음악을 가장 즐겨 들을 때는 일본 추리 소설을 읽을 때이다. 때로는 편안하고 때로는 너무 기괴해서 오싹한 그의 음악이야말로 미스테리 소설을 읽을 때 제격이기 때문이다. 듣기에 상대적으로 편안한 앨범인 'B.T.T.B'이든 당시에도 지금도 듣기에 아주 편안하진 않은 'Thousand Knives'든 소설을 읽을 때 틀어놓으면 실패가 없다.

이것이 힙합...

그의 죽음은 당연히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늘 올바른 뮤지션의 정석을 보여주는 인생을 살았고 마지막까지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떠났기에 지금 이대로 그가 여기까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밴드음악이나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스타트를 끊은 뮤지션이 사실 중년이나 노년까지 멋있는 모습, 닮고 싶은 모습으로 끝까지 남기 쉬운 일이 아닌데 그는 그것을 해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다소 낯간지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 초창기 시절의 몇몇 모습이 밈화되어도 담담히 웃으면서 이따금 이전 밴드 멤버들과 뜬금없이 모여 라이브를 하는 쿨했던 모습, 마지막까지도 환경문제에 신경 쓰고 일본의 평화 헌법 개정에 반대하던 사회운동가로서의 모습, 나이에 상관없이 다양한  각국의 뮤지션들과 진심 어린 교류를 하던 친근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한 모습, 기나긴 병마와의 싸움에도 불구하고 늘 멋을 잃지 않았던 모습 등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면모는 비현실적으로 좋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대에게 무네뀽...

그의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음반은 두 개인데 먼저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그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음반 'Three'를 추천하고 싶다. 이전에 발매된 그의 곡들 중 대표곡이라 할 만한 것들을 3중주로 재편성한 앨범인데 베스트 앨범 같으면서도 적당히 미니멀한 구성으로 그의 곡들의 탄탄함을 느낄 수 있는 어레인지가 돋보이기에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두 번째로는 그의 후기 앨범 중 하나인 'async'를 추천하고 싶은데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은 이 앨범은 결코 듣기에 편안한 앨범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때로는 비극적이고 어떨 때는 기괴하고 중간중간에는 신비롭고 장대한 느낌마저 펼쳐지는데 함부로 다른 이들과 있는 장소에서 틀었다가는 '그 장송곡 같은 음악 당장 끄라'는 욕을 듣기 십상이니 꼭 조용한 곳에서 혼자 듣기 바란다.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왕성한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은 뮤지션이자 영화배우 겸 모델 및 사회활동가로 끊임없이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며 본받을 만한 어른으로서 살아온 그의 인생을 기념하며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그가 우리에게 선물한 음악들을 들으며 이번 주말을 보내는 것도 괜찮은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Merry Christmas, Mr. Sakamoto.


Ryuichi Sakamoto - Three (2012)

01. Happy End

02. The Last Emperor

03. Bibo No Aozora (inst.)

04. High Heels

05. Seven Samurai (Ending Theme)

06. A Flower Is Not A Flower

07. Still Life In A

08. Nostalgia

09. Tango (inst.)

10. Merry Christmas Mr. Lawrence

11. Harakiri(Death of a Samurai) Endroll

12. Tamago 2004

13. Parolibre

Ryuichi Sakamoto - async (2017)

01. andata

02. disintegration

03. solari

04. ZURE

05. walker

06. stakra

07. ubi

08. fullmoon

09. async

10. tri

11. Life, Life

12. honj

13. ff

14.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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