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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보컬 Apr 20. 2023

쇼츠 시대의 음악, 이대로 괜찮은가?

Valley - Last Birthday (The After Party)

생각해 보면 나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거의 단 한 번도 '내가 늙은 건가?'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특별히 유행하는 것들이나 인기가 있는 것들을 보아도 '에휴 저런 걸 좋아하다니'라는 생각을 한 적도 없고 웬만하면 한 번 보거나 들었을 때 내 취향이 아니었던 것들도 되도록이면 어느 정도 이해해 보려고 시도했고, 보통 그러면 백 퍼센트 나의 스타일은 아니더라도 남들이 이걸 왜 좋아하는지 이해 및 납득은 항상 갔다고 생각한다.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싫었던 트랩 비트나 이게 음악이라 할 수 있나 싶었던 덥스텝도 듣다 보니 나름 좋은 부분이 있었고, 사실 애초에 어릴 때도 유행에 따라가기보다는 내 취향을 좇는 '자발적 아싸'였기에 싫으면 피하고 내가 좋으면 따라가면 그만이었기에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아 이제 나도 어쩔 수가 없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 틱톡이란 것을 처음 접했을 때였다. 거부감과 선입견 때문에 인스타그램도 초창기 몇 년 동안 손도 안 댄 나였지만 그건 막상 시작해 보니 생각보다 재밌었는데, 틱톡이란 것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짧은 영상을 굳이 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게 웃기고 재미있나?' '이런 게 대체 왜 유행인거지?'라는 의문이 멈추지 않았고 그 의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인스타그램마저도 이젠 사진보단 동영상 쇼츠/릴스 위주로 바꾸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듯하니 이젠 거부감마저 든다(물론 골수 유저들의 반발로 현재까지는 그 시도가 다행스럽게도 매번 실패하고 있다).

틱톡의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류의 영상들

물론 귀여운 동물들이 나오는 영상들은 길든 짧든 언제든 환영이다. 그런 영상들은 가끔 알고리즘에 뜰 때면 클릭해서 볼 때도 있고 대부분은 나에게 즐거움을 안겨준다. 하지만 짧은 영상들의 대부분의 지분을 차지하는 다 큰 어른들이 춤추면서 깨방정 떠는 영상들은 아직도 왜 그것이 인기인지, 왜 재미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이 있고 그것을 존중할 마음은 있지만 유독 이러한 트렌드에 내가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현재 음악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틱톡 영상/쇼츠/릴스 등은 대부분 몇십 초 이내의 짧은 길이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거기에서 BGM으로 깔기에 좋은 음악들은 유행할 경우 아티스트에게 많은 돈을 안겨주게 되니 상업적 뮤지션이라면 이 부분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그 몇십 초 이내에 유저들/청자들의 귀와 주의를 사로잡아야 하니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볼 수 있는 곡을 만들어내야 2020년대에 트렌드의 선두주자로 우뚝 설 수 있는 것이다.

벨라 하디드 본인이 틱톡에 업로드하고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영상

살짝만 세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상업적 음악의 대부분의 구성은 도입부-1절-후렴-2절-후렴-브릿지-후렴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중간에 간주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몇몇 부분이 생략되는 곡들도 있지만 상당수의 곡들은 위에 이야기한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보통 제일 중요한 것은 후렴이다. 90년대부터 얼마 전까지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훅이 강한 곡들'은 귀에 잘 들어오고 기억에 남는 후렴을 가진 곡들이(었)다. 문제는 이제 대부분의 곡들에서 후렴까지 가는 데에는 1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데에 있다. 즉, 지금의 트렌드에서는 그 1분 넘는 시간 동안 소비자들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의 많은 곡들은 도입부에서 청자를 사로잡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물론 이것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많은 명곡들은 좋은 후렴을 갖고 있는 만큼 그 도입부도 좋은 경우가 많다. 곡의 어떤 파트이든 그 부분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요즘 들어서는 도입부에만 노력을 기울이고 이후는 대충 어떻게 흘러가든 상관없이 후려갈기듯 만들어대는 트렌드라고 생각한다. 마치 영화나 만화에서 초반부는 끝내주게 만들어놓고 중반부와 결말부는 성의 없게 마무리 짓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 가지를 예로 들자면 근래에 히트한 뉴진스의 곡 같은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부분은 '내가 만든 쿠키~' 파트이지 이후 후렴 부분이 아닌 경우가 많다. 물론 그 곡의 후렴도 꽤 잘 만든 축에 속하지만 도입부에 꽤나 많은 힘을 준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실제로 틱톡이 음악을 망치는 것인가의 여부에 대한 영상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짧은 영상들 같은 경우에는 뭔가 대단한 만듦새에 기대기보다는 빠른 호흡으로 보는 이를 웃기거나 자극시키는 데에 치중하다 보니 곡을 선정할 때에도 코믹함이나 자극성에 기대는 면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곡의 도입부가 아닌 후렴 부분이 활용되더라도 '좋은 곡'보다는 가사가 웃긴 곡이나 자극적인 음악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역량이 훌륭한 Cardi B 같은 래퍼도 'WAP(이게 뭘 뜻하는지는 알아서 검색해 보시라)' 같은 노래를 만들면서 스스로를 밈화시키고 다른 뮤지션들도 장난스러움에 치중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세태를 보면 마치 모든 뮤지션들이 '마카레나'나 '강남스타일' 같은 류의 단발성 히트곡들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 것 같이 보일 지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기존에 즐겨 듣던 아티스트들의 곡들이 발매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이전만큼 큰 기대가 없다. 심하게는 '이 아티스트는 또 얼마나 망가져서 나오려나'하는 우려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귀에 들어온 것이 Valley라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밴드의 'Last Birthday (The After Party)' 앨범이다. 발매 이전에 처음 싱글 컷트된 곡 제목 자체가 'Like 1999(마치 1999년인 것처럼)'인 만큼 밴드 자체가 대놓고 이전 세대로 회귀하려는 경향 및 정서가 강하고, 사운드 면에서는 요즘의 팝의 구성을 띄고 있지만 그 핵심을 차지하는 멜로디와 정서는 묘하게 예스럽다. 마치 이전 Hanson이나 The Moffatts의 음악을 듣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Remember us...?

이 앨범이 나름 신선했던 이유는 음악의 핵심을 차지하는 멜로디가 탄탄하고 캐치했기 때문이다. 'Like 1999'은 요즘의 인디 팝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도입부로 시작하지만 후렴 부분의 멜로디가 도입부에 비해 확 귀에 들어올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음이 느껴지고, 브릿지 부분에서는 의외의 여성 보컬이 치고 나오면서 변화구를 준다. '네가 놀러 온다면 우린 함께 프렌즈를 보고 취해볼까. 나의 휴대폰은 컵받침으로 쓰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볼까.'라는 대놓고 뉴트로 정서를 뿜뿜하는 가사에선 좀 투머치인가 싶은 느낌이 들지만 이 친구들 꽤나 진심인 것 같다.


해당 트랙 외에도 Chainsmokers와 2000년대 팝의 퓨전처럼 느껴지는 'Oh shit...are we in love?', 90년대 얼터너티브/그런지 음악에 대한 향수를 부르짖는 'Cure' 등 마치 세기말의 팝 뮤지션이 우연히 25년 후의 미래에 떨어져서 요즘의 악기로 그 시대의 음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의 곡들이 앨범을 가득 채우고 있다.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 이야기하자면 지금 나는 이 앨범이 현세대의 음악을 치유할 대단한 음반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말하자면 아직 뜨지는 않은 눈여겨볼 만한 신성 밴드가 꽤나 만듦새가 괜찮은 앨범을 낸 정도라고 생각한다. 단지 요즘의 음악 트렌드에 대한 염증이 심한 상태에서 이들을 우연히 접했고 그것이 내게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명감독도, 명배우들도 이 영화들을 구원하지 못했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이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본인의 애가 ADHD가 아닌지 걱정을 하는데 그 이전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긴 시간 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을 힘들어하기 시작했고, 나아가서 짧고 가벼운 유튜브에 빠져들다가 이제는 1분이 채 안 되는 더 짧은 영상에 탐닉하며 시시덕거리고 있다. 이런 환경에선 비틀즈와 마이클 잭슨이 재림해도 과연 제대로 음악을 만들 수가 있을까 걱정스럽다. 실제로 거장 감독들의 최근 영화들이 '프랜차이즈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관객들에게 외면받았고 이젠 스튜디오에서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니면 더 이상 투자를 하지 않겠냐는 걱정이 나오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다. 좋은 창작물과 컨텐츠를 누리려면 소비자들도 최소한의 격을 갖추어야 하지 않나 하는 건방진 소리를 하며 글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이제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가 되었나 보다.

Valley - Last Birthday (The After Party) (2022)

01. Last Birthday

02. Oh shit...are we in love?

03. Can We Make It? (Jim Carrey)

04. Cure

05. ain't my girl

06. Like 1999

07. SOCIETY

08. Tempo

09. 7 Stories

10. Paper Cup (sorry for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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