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리뷰
여기 한 영화감독이 있다. 주로 B급 영화사에서 괴랄한 작품을 감독했거나 작가로서 활동했으며, 그가 집필한 대표작 중 하나는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많은 이들이 에로영화인줄 알고 낚여서 본(당시엔 유명한 영화 및 작품을 패러디한 작품이라면 에로영화라는 법칙이 있었으니) 괴작 '트로미오와 줄리엣'이다. B급 영화만 도맡았던 그가 처음으로 메이저 블록버스터의 감독을 맡게 되었는데, 주연을 맡기로 한 남자 배우는 모 시트콤에서 유쾌한 뚱보 역할, 영화 '원티드'에서 주인공의 얄미운 친구 역할을 맡은 것 정도가 경력에서 제일 눈여겨볼 정도이고, 다른 주연급 배우 중 한 명은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프로레슬러이다. 티켓 파워가 어느 정도 보장된 유명 배우 두 명이 출연하기는 하는데 그나마도 목소리 출연이고, 매력적인 외모의 여배우들이 몇 등장하지만 어차피 특수분장을 떡칠하고 나올 예정이기 때문에 그마저도 어필하기 쉽지가 않다.
이런 애매한(?) 스펙으로 제작된 영화가 바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AKA 가오갤)'이었다. 명목상으로는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이긴 한데 스파이더맨이나 엑스맨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히어로들도 아닌 괴랄한 외모와 복장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탓에 처음 포스터나 예고편을 접한 이들의 반응은 '이게 뭐야' 정도였다. 심지어 이후 어벤저스를 이해하려면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관객들에게 강요하는 듯한 모양새가 된 탓에 당시 가오갤에 대한 인상은 마치 허니버터칩 끼워팔기 세트에 있는 허니버터칩 아닌 다른 과자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딱히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지만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토르의 모험을 계속 무리 없이 즐기기 위해서는 과제처럼 봐야 하는 그런 영화였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꽤나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영화였고, 이후 속편도 성공적인 흥행을 하고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에서도 큰 역할을 하면서, 아무 기대를 받지 못하던 가오갤은 큰 존재감을 어필하며 마블 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유쾌한 조연 역할만 전전했던 주연배우 크리스 프랫은 호감형 액션히어로로 할리우드에서 '쥬라기 월드' 프랜차이즈 등에서 활약하게 되었고, 레슬러 출신의 데이브 바티스타는 연기력을 인정받고 지금은 영화배우로서 그 존재감을 당당히 발휘하고 있다. 로켓 라쿤과 그루트는 마블의 대표 귀요미 캐릭터로 많은 상품을 팔아치우는 일등공신이 되었고, 가모라와 네뷸라 역시 헐리웃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여성 캐릭터라는 점과 묘한 갭모에(?)를 매력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2편에서 강한 존재감을 어필한 욘두는 마블 프랜차이즈 내에서 '이상적인 아버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 이후로 제임스 건은 A급 감독으로 급부상하면서 제2의 피터 잭슨, 제2의 제임스 카메론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현재 마블의 경쟁자인 DC의 모든 프랜차이즈의 총책임자를 맡게 되며 헐리웃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아무 기대를 받지 못하던 영화 하나가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프랜차이즈의 언더독일 것으로 예상되었던 가오갤이 마블에 역으로 끼친 영향은 아이언맨만큼이나 크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직까지 마블 영화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로 여겨지는 병맛 유머의 틀을 제대로 잡은 것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기도 하고, 주요한 장면에 올드 팝이나 시대를 반영한 음악을 선곡해서 삽입하는 트렌드 역시 이 영화가 제대로 시작했다고 해도 무방하니, 조금 오바해서 얘기하자면 뉴트로와 시티팝 열풍 직전에 이미 시대의 흐름을 예측한 트렌드세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첫 가오갤이 나온 이후로 약 9년이 지난 2023년 5월,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3편이 개봉하였다. 시기상으로 참 미묘한데 일단 '엔드게임' 이후의 마블 작품들이 '완다비전'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평작이거나 망작이었기에 마블에 대한 이미지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감독 제임스 건이 이미 마블의 경쟁자인 DC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는 단계라는 것 때문에 과연 가오갤3가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죽어가는 마블 프랜차이즈에 조금이나마 숨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경영진의 오만과 과욕, 고집으로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마블이 슈퍼히어로 영화 피로도를 호소하는 이 시대에 다시 좋은 작품을 낼 수 있을지 자체에 회의적인 이들이 많은 상황이며, 무엇보다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듯한 감독 제임스 건이 영혼 없는 작품으로 적당히 때우고 가 버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슈퍼히어로 영화 피로감을 해소하고 죽어가는 마블을 다시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들지만 적어도 이 영화가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시리즈의 주조연급 각 인물들의 서사를 어느 정도 완성하고 이전 작품들의 복선도 대부분 회수했으며, 적절한 감동도 있고 재미도 있다. 액션은 어느 때보다도 호쾌하고 특유의 유머는 여전히 웃기지만 중심이 되는 드라마를 묵직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에서만 적절히 활용되는데 이 역시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크레딧 롤이 올라갈 때쯤에는 지금까지 함께 했던 시리즈의 주인공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시원섭섭한 마음과 지난 영화들을 추억하는 회상이 교차하며 찡한 느낌도 주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가 용두사미가 되지 않고 잘 끝났을 때, 오랜 시간을 투자한 퀄리티 좋은 게임의 플레이를 마무리했을 때와 비슷한 쾌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가오갤3를 리뷰하는 이들 중에는 싸구려 감동과 철 지난 유머로 점철된 평작일 뿐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는데, 마블의 다른 망작들로 인한 피로감으로 이들의 판단력이 살짝 흐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들지만 사실 이 작품이 완벽하지는 않다는 데엔 나도 공감한다.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이 받는 학대와 고통에 주목하며 관객의 눈물을 짜내는 부분은 "울어! 이래도 안 울어?!"라는 느낌의 폭력적 신파(?)로 느껴질 수 있고, 중간에 이들이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우정을 나누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사실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홀로코스트 영화의 복제에 불과하다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캐릭터 중 하나가 각성하는 부분에서의 연출 및 장치는 너무나도 뻔한 클리셰이고(정말로 '아, 그 대사만은 치지 말아줘.'라고 생각했다), 전반적으로는 극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유머 씬들도 특정 부분에서는 마치 제임스 건 감독이 관객들에게 '지금 웃으시면 됩니다'라는 팻말을 눈앞에서 휘젓는 것 같은 작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이 작품에 참여하는 이들이 보이는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동안 이 작품에서 연기를 해온 배우들은 어느 한 명도 대충 하는 법이 없고, 각본에서는 각 캐릭터들의 정신적 성장과 개인적 여정의 마무리에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았는지가 느껴진다. 각자의 매력을 풍부하게 지닌 인물들이 캐릭터 붕괴 없이 본인들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기 때문에 관객 역시 이에 충분히 몰입하고 온전히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로 많은 작품들이 '시크해 보이기 위해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요즘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기 위해' 등의 이유로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아온 캐릭터들을 바보로 변질시키거나 무능한 이로 만들어버리거나 심하게는 죽여버리기도 하는데, 이 작품에는 다행히 그런 것이 없고, 주연급은 물론 단순히 개그캐로 소모될 뻔했던 캐릭터들까지도 모두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어낸다는 이유만으로도 3편까지 온 이 시리즈를 칭찬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메이저 영화라도 다소 예술적인 기질을 띄는 영화들 중에는 의도적으로 주인공 캐릭터를 학대하고 괴롭히는 영화들이 종종 있다. '올드보이'가 그러했고 해외에도 '유전'이나 '미드소마' 등의 소위 A24 계열 영화라 불리는 작품들은 그렇게 해도 되고 응당 그리해야 하는 영화들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10년 가까이 사랑을 받아온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라면 그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캐릭터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따금 자기 색깔을 발휘해 보겠다는 힙스터 마인드로, 혹은 자신의 정치색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반영하겠답시고 캐릭터를 왜곡시키거나 죽여버리는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나 '라스트 제다이' 같이 팬들에게도 외면받고 장수 프랜차이즈들을 죽이고 추억을 훼손하는 작품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만드는 많은 이들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모범사례로 삼아 이제 자신들이 만든 캐릭터들에 애정과 책임감을 가져야 앞으로도 좋은 영화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