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 리뷰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 최고의 슈퍼히어로들이 속해있는 DCEU의 작품들은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만) 그 성적이 좋다고 하기 힘들다. 영상미와 액션 면에서는 대부분 괜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각 히어로들에 어울리는 좋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도 호평이 많지만 부실한 스토리와 부족한 유머, 각 캐릭터들의 매력을 보여주는 요소가 충분치 않았기에 결국 총괄 디렉터인 잭 스나이더를 해고하는 과감한 조치를 취했으나, 오히려 그를 경질시킴으로 그나마 있던 매력인 액션이나 비주얼까지도 퇴보했다는 혹평 속에 이후 작품들이 모두 흥행 면에서도 비평 면에서도 좋지 못한 결과를 보여주며 묻혀버렸다.
최근에 개봉한 ‘플래시‘는 거의 최악의 타이밍에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미 DCEU는 주요 인력을 다 갈아엎고 리부트 하는 것이 결정되었고, 메인 히어로들인 슈퍼맨과 배트맨의 배우도 교체가 확정된 데다가 ‘원더우먼 3’의 제작도 취소되었으니 나머지 배우들의 운명도 불확실한 셈이다. 게다가 플래시 역할을 맡은 주연배우 에즈라 밀러는 이러저러한 사건사고를 마구 일으켜놓은 탓에 현재는 플래시 시리즈뿐만 아니라 이후의 배우 생활 자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으니 이전 DCEU의 팬이라 할지라도 이 영화를 보기에 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DC뿐만 아니라 현재는 마블의 영화들도 이전만큼의 흥행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전반적으로 관객들의 히어로 영화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기에 여러모로 좋지 않은 모양새이다.
그나마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있다면 벤 애플렉의 배트맨으로서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우리의 어린 시절 배트맨 마이클 키튼의 귀환을 보기 위함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플래시의 영화인데 보는 사람은 배트맨을 위해서 관람하는 미묘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도 개봉 전 예고편들이 잘 뽑아져 나왔고 시사회와 사전 평론가들의 평가가 호평이었기에 나도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지난 주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일단 모든 배우들의 연기는 굉장히 좋았다. 특히 주연을 맡은 에즈라 밀러는 멱살 잡고 도대체 이런 재능을 가지고 왜 그렇게 사고를 치고 다녔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뛰어난 1인 2역 연기를 보여주기에 이후 그가 맡은 플래시를 볼 확률이 극히 낮다는 사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벤 애플렉, 마이클 키튼이 보여주는 배트맨은 각각의 다른 매력을 확실하게 관객들에게 각인시켜 주고, 슈퍼걸 역할을 맡은 사샤 카예 역시 짧은 시간 동안 강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 외 조연 캐릭터들의 연기도 모두 준수하며, 카메오들도 반갑고 그중에는 정말 의외의 깜짝 출연도 있기에 DC 히어로들의 팬이라면 즐거움을 느낄 요소가 많다.
영화의 감정선도 굉장히 DCEU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능숙하게 처리가 되어있기에 극 중 주인공이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풍부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되며, 그렇기에 결말부에서도 나름의 감동을 준다. 유머 역시 기존의 DC 영화들과 다르게 잘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두 명의 배리 앨런이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보여주는 귀여운(?) 갈등과, 주인공이 어리고 미숙한 또 다른 자신을 보면서 ‘아, 남이 봤을 때 내가 이렇게 구리고 짜증 나는구나.‘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 등이 소소한 웃음을 준다.
플래시가 보여주는 작중의 액션 장면들은 전반적으로 훌륭하고, 특히 두 명의 플래시가 합을 맞추어 보여주는 스피디한 액션, 플래시와 각기 다른 배트맨이 보여주는 액션의 호흡이 굉장히 뛰어나기에 히어로 영화 특유의 재미는 충분하다. 단, 결말부로 가면서 영화가 조금씩 삐그덕거리는데, 교훈적인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결말부의 카타르시스를 희생한 것까지는 이해를 하지만 막판에 또 애매한 결론을 지으면서 교훈적 메시지가 다시 퇴색되는 미묘한 상황이 발생한다(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되기에 이 정도로만 쓸 수밖에 없다). 영화의 감정선이 좋기에 적당한 감동으로 이 부분이 상쇄되긴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훌륭하게 결말을 짓고 마무리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라는 선례가 있기에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결말부의 아쉬움을 넘어서는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의외로 CG의 퀄리티이다. 초반부 액션에서 슬로모션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의 얼굴이나 후반부 장면에서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이나 액션의 처리가 마치 예전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겨우 웃도는 퀄리티로 되어있어 극히 부자연스럽기에, 이런 부분에 민감하지 않은 편인 나로서도 중간중간 몰입이 좀 깨지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예민한 사람들이라면 관람하기 전에 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감정선은 뛰어나고 결말은 미묘하기에 영화가 전달하는 주요 메시지인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실에 충실하자’, ‘과거의 상처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기에 이를 부정하지 말자’ 같은 교훈보다 오히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확실하게 전달되는 건 ‘부모님께 있을 때 잘하자’라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히어로 무비보다도 강하게 ‘효도의 미덕’을 전달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현재 이 영화의 흥행 성적이 여러모로 좋지가 않은데, 주연 배우에 대한 비호감 이미지나 히어로 영화에 대한 피로도 때문에 그냥 놓치기에는 아쉬운, 꽤나 잘 만들어진 재미있는 영화이기에 조금이라도 이런 분야에 대한 관심이 있는 이들, DC에 대한 약간의 애정이라도 남아있는 이들이라면 적극 관람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