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tones 2,3,4집
90년대 팝의 3대 디바를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옹으로 선정하고 쓰래쉬 메탈계의 빅4를 흔히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쓰랙스, 슬레이어로 꼽듯이, 뉴메탈 장르에도 빅4를 선정하려는 시도는 늘 있어왔다. 보통 뉴메탈 빅3로 콘, 림프비즈킷, 린킨파크는 꼭 들어가지만 네 번째 밴드를 누구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팬들마다 조금씩 의견이 갈렸던 것 같다. 슬립낫,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뉴메탈이 아닌데...?), 시스템 오브 어 다운 등의 걸출한 팀들과 함께 네 번째 밴드로 자주 언급되는 팀이 바로 데프톤즈이다. 그런데 뉴메탈 계의 인지도 면에서도 앞의 세 팀에 비해서는 살짝 못 미치고 락페스티벌에서도 준헤드라이너 정도인 이 밴드가 요즘 들어 심심치 않은 인기를 자랑하며 뉴메틀 빅3를 제치고 새로운 세대의 팬들을 긁어모으고 있다고 한다.
사실 Deftones는 메탈씬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그 어떤 뉴메탈 팀에 비교해도 압도적인 안정성을 지닌 팀이었다. 모든 밴드들이 적어도 그들의 경력에 한 두 개의 오점, 완성도가 떨어지는 앨범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은 씬에서 '별로인 앨범을 내지 않는 팀'으로 유명했고, 뉴메탈을 무시하는 메탈 팬들도 데프톤즈는 좋아할 정도로 불호가 거의 없는 팀으로 그 명성을 확고히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요즘의 인기가 다소 신기한 이유는 이들을 새로이 핫하게 떠오르게 만든 플랫폼이 놀랍게도 TikTok이기 때문이다.
당장 'Tiktok deftones'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이미지가 뜨는데, 대부분 10~20대의 젊은 여성들이 고쓰 메이크업을 하고 야릇한 표정을 지으면서 상대를 유혹하는 듯한 모습의 영상이거나 남자들이 차 운전석에서 데프톤즈 음악을 틀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데이트를 준비하는 것 같은 짧은 콩트 류가 많이 보인다. 즉, 지금의 10~20대에게 데프톤즈의 음악은 다른 뉴메탈 밴드들의 작품에 비해 좀 더 섹시한 느낌을 어필한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Deftones의 음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타 밴드의 싱어에 비해 숨소리가 강하게 들어간 보컬 치노 모레노의 공기 9 소리 1 정도 되는 듯한 섹시한 음색이고, 나머지 파트의 밴드 사운드도 개성적인 공간감을 형성하기에 헤비하면서도 묘한 음울함과 연약함을 어필한다. 그렇기 때문에 뉴메탈 전성기였던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많은 호러 영화나 액션 영화에서 이들의 음악은 주로 베드신이나 야간 드라이브 씬에 사용되곤 했다. 어쨌든 이런 관심과 섹시한 이미지 덕분인지 근래 Marc Jacobs가 런칭한 Heaven이라는 패션 브랜드에서는 아예 데프톤즈를 섭외해서 특별 공연과 전시회까지 열고 콜라보레이션 제품까지 선보이는 등, 이들의 새로운 인기는 단순하게 보고 넘길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이들의 음악적 색깔을 잘 보여주는 음반을 3개 뽑으라면 아마 2집 Around the Fur, 3집 White Pony, 4집 Deftones를 개인적으로 고르겠다. 1집 Adrenaline 역시 괜찮은 앨범이었으나 다른 뉴메탈 밴드들에 비해 이들만의 개성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는데, 2집인 Around the Fur에서부터 이들의 트레이드마크인 '섹시한 사운드'가 전면으로 치고 나오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당장 표지부터 야릇한 느낌이 가득하고 단순한 읊조림에 가까웠던 1집의 보컬 창법에서 본격적으로 헐떡이는 숨소리와 속삭임을 강조한 본인만의 스타일을 이 시기에 정립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대표곡인 'My Own Summer'는 뉴메탈 특유의 그루브를 내세우면서도 이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고, 'Be Quiet and Drive'는 새로운 데프톤즈 스타일을 확고하게 잡아준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3집인 White Pony는 이들 스스로 '탈 뉴메탈'을 기조로 내세운 음반으로, 뉴메탈 특유의 그루브나 리프, 래핑이나 단순한 그로울링을 최대한 배제하고 정말로 분위기와 가오만으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듯한 느낌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Elite' 같은 곡은 헤비하긴 하지만 당시의 다른 뉴메탈 밴드들과는 아예 다른 결을 보여주는 곡이고, 'Change (In the House of Flies)'와 'Digital Bath', 'Knife Party'와 같은 트랙에서는 헤비함보다는 음울한 분위기와 독특한 구성에 무게를 실으면서 굉장한 신선함을 안겨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White Pony'는 데프톤즈의 디스코그래피에서만이 아니라 헤비메탈 씬 전체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는 명반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앞의 두 앨범에 비해 4집인 셀프 타이틀 앨범은 그 위치가 상대적으로 미묘한데 꽤나 괜찮은 앨범이라는 데에는 대부분 이견이 없으나, 이전 앨범들에 비해서는 판매량이나 평가 면에서 약간 떨어진다고 기존에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다시 앨범을 듣는다면 다른 시각에서 이 앨범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데프톤즈를 뉴메탈 밴드로 많이 인식했기에 이 앨범의 독특한 사운드와 색깔이 다소 기대에서 벗어났을 수 있지만, Finch나 Glassjaw와 같은 포스트 하드코어의 선상에 놓고 본다면 이 앨범 역시 굉장히 좋은 작품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첫 싱글인 'Minerva'의 압도적인 분위기, 이질적으로 강력한 헤비함을 자랑하는 두 트랙 'Hexagram'과 'Bloody Cape', 그리고 데프톤즈만의 음울한 감성을 대놓고 드러내는 발라드 트랙 'Anniversary of an Uninteresting Event'까지 이 앨범에도 특유의 명곡들이 포진해 있다.
4집 이후에 이들은 서로 간의 분쟁으로 인한 해체의 위기도 겪고 베이시스트인 치 쳉의 사고사로 인한 슬픔도 있었으나, 2020년에도 9집 'Ohms'를 발매하고 각종 락페스티벌에도 활발히 서는 등 왕성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무엇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들은 안 좋은 앨범을 내지 않는 밴드로 씬에서 아티스트와 팬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팀인 만큼, 한 번쯤 트렌드에 편승해서 이 기회에 그들의 음악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