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p Bizkit - Significant Other
"생일선물로 받았는데 내 취향이 좀 아니라서... 너 이런 거 좋아하지 않나? 네가 가질래?"
고등학교 1학년, 옆자리 짝이 된 친구가 CD를 하나 건넸다.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들어보고 싶었던 음반이었기에 흔쾌히 건네받았고,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앨범 중 하나가 되었다. 사실 첫인상은 나쁘지는 않았으나 조금은 실망하기도 했다. 일단 락/메탈 음반을 기대했는데 힙합의 요소가 너무나도 많았다. 심지어 어떤 곡은 아예 밴드 사운드가 아닌 것들도 있었고, 신나게 달릴 것처럼 강렬하게 시작했다가 갑자기 제동을 걸고 랩을 하는 트랙도 있었다. 기대했던 그대로의 음반은 아니었으나, 들으면 들을수록 잘 빠진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뉴메탈이라는 장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청 음반 중 하나인 Limp Bizkit의 'Significant Other'이다.
그냥 콘의 데뷔앨범, 세풀투라의 Roots 등으로 뉴메탈이 대세가 된 시기에 적당하게 흐름만 잘 탄 앨범이라고 이 음반을 평가절하하는 여론도 있다. 실제로 림프 비즈킷의 첫 데뷔 앨범 '3 Dollar Bill, Y'all'은 준수한 곡들로 어느 정도 채워져 있지만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음반이었다. 밴드 특유의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전에 히트한 초창기 뉴메탈 사운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시종일관 과장되게 음습하고 쓸데없이 화가 나있다는 점에서도 선배들과 결을 같이 하고 있었다.
반면, 'Significant Other'는 사운드의 느낌,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정서에서부터 이전의 뉴메탈 음반들과 아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같은 년도에 발매된 음반 중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이 앨범의 사운드나 정서와 비슷한 음반은 Slipknot의 셀프 타이틀이나 Coal Chamber의 Chamber Music이 아니라 오히려 Eminem의 Slim Shady LP라고 생각한다. 밝지는 않지만 장난스럽고, 절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음악이지만 사운드만큼은 굉장히 정제되어 있다. 메탈 장르의 간판급 밴드인 Pantera와 힙합 아티스트 Sir Mix-A-Lot을 모두 담당했던 Terry Date의 다재다능한 프로듀싱 능력과 밴드 스스로의 다채로운 성격이 잘 믹스되어 당시로서 낼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이 나왔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내가 밴드 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이 앨범이 끼친 영향은 꽤 크다고 할 수 있으며, 프런트맨 프레드 더스트의 전성기 시절의 비호감 행적 때문에 대놓고 이 음반을 찬양하는 이들이 많지는 않으나, 분명히 수많은 락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꽤나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이 앨범을 재평가하는 여론이 생기고 있고, 본인이 락을 시작한 이유로 당당하게 이 음반을 꼽는 뮤지션들도 요즘은 적지 않다. 특유의 잘 빠진 사운드와 다채로운 트랙들 때문에 이 앨범은 요즘 들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질리지 않고 감상할 수 있다는 강점도 지니고 있다. 좋아하는 음반들이기는 하지만 Linkin Park의 'Hybrid Theory'는 모든 트랙의 구성이 흡사하다는 점 때문에 듣다 보면 조금 물리는 감이 있고, Korn의 1, 2집은 전체적으로 투머치의 감이 있어 한 번 들으려면 뭔가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느낌이지만 Limp Bizkit의 'Significant Other'는 언제든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당연히 신나게 조져주는(?) Just Like This, Nookie, Break Stuff 등을 좋아했고 반복해서 들었으나, 요즘은 오히려 특유의 정제된 그루브감이 돋보이는 Re-Arranged나 Nobody Like You, 대놓고 힙합을 표방하는 N 2 Gether Now 같은 트랙이 더 끌리기도 한다. 미국 코믹스의 커버 같은 앨범 표지의 아트워크, 특유의 세기말 정서와 밴드의 재기 발랄한 성격이 시너지를 내면서 'Significant Other'는 세기말 뉴메탈의 심벌과도 같은 음반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이 음반은 항상 내가 밴드 생활을 하면서 음악을 만들 때 레퍼런스로 삼고, 취해야 할 방향성 등을 정할 때 판단을 하게 만드는 기준점이 되는 앨범 중 하나이기도 하다.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공짜로 건네받은 앨범 하나가 내 인생을 바꾼 핵심 음반들 중 하나로 등극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