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핵보컬 Sep 11. 2023

내 손에 넣은 첫 음반에 대한 회고

영화 Aladdin, Lion King & Free Willy OST

현재 나의 집에 꽤나 많은 CD와 LP를 갖고 있지만 사실 이 중 전부가 내 소유라고 하기는 힘들다. 이 중엔 부모님이 구매하신 음반도 있고, 가족과 친척의 다른 구성원이 이전에 산 앨범이 어쩌다가 돌고 돌아 나의 진열장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경우도 있다. 게다가 꼭 나의 돈으로 직접 구매한 앨범만으로 친다면 그 안에서 '나의 소유 음반'의 범위는 또 더욱 줄어들지만 한 편으로는 나의 의사에 의해 부모님이 사주시거나 학창 시절 친구나 지인에게 선물 받은 앨범들도 내 소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니 꼭 '내돈내산'으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 아주 어릴 때 자주 들었을 수도 있는 동요 음반이나 캐롤 앨범 같은 경우에는 기억에 크게 자리하고 있지 않고 현재는 소유하고 있지 않으니 아마 제외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적지 않은 내 소유의 음반들 중에 내가 손에 넣은 진정한 첫 앨범은 어떤 것일까?


그 후보는 대략 3개 정도로 좁혀지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과 '라이온킹', 그리고 범고래가 나오는 영화 '프리윌리'의 사운드트랙 정도인듯하다. 모두 1990년대 초중반에 개봉한 영화로, 재미있게 본 추억의 작품들이기는 하지만 내가 막 강렬하게 졸라서 손에 넣은 음반들은 아니었을 것이고, 대략 "어? 너 이거 하나 사줄까?" "응" 정도의 흐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개봉시기상으로 보았을 때는 아마 '알라딘'과 '프리윌리'가 '라이온킹'보다는 먼저이지 않을까 추측은 하지만 되짚어보았을 때 대략 앨범을 입수한 것은 세 개 모두 비슷한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992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과 94년 개봉한 '라이온킹'은 영화 자체도 명작 반열에 속하지만 수록곡들 역시 명곡인 것으로 유명한 작품들이다. 양쪽 모두 좋은 앨범들이지만 구체적으로 파고들자면 그 궤를 살짝 달리 하는 부분이 있는데, '알라딘'의 경우에는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부터 이어진 Alan Menken의 90년대 디즈니의 상징과도 같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세련된 음악 스타일이 안정적으로 돋보이고 있는 반면, '라이온킹'의 경우에는 이후 액션과 SF 영화 사운드트랙의 대가로 자리 잡게 되는 Hans Zimmer가 음악을 맡고 있기에 이전 디즈니 영화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느낌의 웅장하고 비장한 스코어들이 존재감을 뽐낸다. 단, 어렸을 때는 이런 스코어보다는 배우 및 성우들이 직접 노래했던 작중의 뮤지컬 넘버들이나 피보 브라이슨과 엘튼 존이 부른 메인 주제곡들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Friend Like Me', 'A Whole New World', 'Hakuna Matata'나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같은 곡들은 지금 들어도 작중 흐름에도 잘 맞고 곡 자체로도 굉장히 캐치하게 잘 짜인 명곡들이라고 생각한다.

'프리 윌리'의 OST와 같은 경우에는 사실 왜 이 앨범을 내가 갖고 있을까 살짝 의아한 구석이 없지는 않은 음반이다. 나름 추억의 영화이긴 하지만 당시 비슷한 시기의 영화 중에는 '쥬라기 공원'을 훨씬 더 좋아했던 것 같고, 앨범의 상당수를 채운 90년대의 R&B 넘버들도 본래 내가 아주 선호하는 음악 스타일은 아니기에 '굳이 이걸 왜 사서 갖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메인 스코어를 듣기만 해도 뭔가 차오르는 듯한 감정이 느껴지고, 상당수의 곡들이 오랜만에 들었는데도 귀에 익은 걸 보면 잠재적 기억 속에서는 이 영화를, 아니 최소한 사운드트랙만이라도 꽤나 좋아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로보캅', '스타쉽 트루퍼스' 등의 SF 영화 사운드트랙을 주로 담당한 바 있는 작곡가 Basil Poledouris가 만든 메인 스코어는 웅장하면서도 따뜻하고, Michael Jackson의 곡 'Will You Be There'는 인트로만 들어도 "아, 이 노래?!"라고 누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명곡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이클 잭슨의 'Human Nature'를 샘플링으로 활용하고 재해석한 알앤비 댄스 넘버인 SWV의 'Right Here (Human Nature Radio Mix)'를 가장 좋아하고 지금도 자주 듣는다.


이 앨범들이 음악적으로 훌륭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서 이 음반들의 가치는 그 음악 자체보다는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진한 추억과 향수라고 생각한다. VHS 테잎으로 무한히 돌려봤던 그 만화,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한 번 보고 나중에 철 지난 영화를 저렴한 가격에 틀어주는 1 dollar theater에서 다시 보았던 그 영화, 집에서 무료할 때 CD 플레이어에 OST를 틀어놓고 함께 흥얼거렸던 그 음반의 기억들이 음악과 함께 되살아나면서 실제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의 일부분이 마음속에서 재현되면서 어떠한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이들도 각자 자신들의 첫 추억의 음반이 어떤 것이었는지 되새겨보아도 재미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세기말 컬처의 재림, 그리고 그 한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