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alling - Camino Palmero
처음 나왔을 때는 너무나 좋은 곡이었지만 이후 미디어에서 너무 많이 소모되어 이제는 식상하다 못해 코믹하게까지 느껴지는 노래들이 있다. 싸구려 느낌의 야한 장면에 남발되어 이제는 듣자마자 머릿속에 핑크색 네온사인이 켜지는 듯한 조지 마이클의 'Careless Whisper', 왠지 듣기 평가 시간이 떠오르는 스티브 바라캇의 'Whistler's Song', 그 외에도 묘하게 낭만적인 로맨스보다는 싸구려 막장드라마나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만드는 '냉정과 열정사이 OST' 등 처음과 지금의 이미지가 달라진 곡들이 꽤나 많이 존재한다.
위에 말한 예시 곡들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기타리스트 Aaron Kamin이 여자친구의 동생인 보컬 Alex Band와 함께 결성한 밴드 The Calling의 'Wherever You Will Go' 역시 서양권에서는 이런 곡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풋풋하고 싱그러우면서도 무게감이 있는 보컬의 세련된 모던록 발라드로 발매 직후부터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영화 '러브 액추얼리'에서 영국 남자 콜린에게 미국 여성 대다수가 맹목적으로 들이대는 싸구려티가 나는 장면에 BGM으로 쓰인 이후, 여러 미국 드라마나 코미디 영화에서 맥락에 안 맞게 금사빠처럼 주조연 캐릭터들이 급히 사랑에 빠질 때 이 곡이 자주 쓰이면서 이미지가 굉장히 코믹해진 것 같다. 이러한 곡들의 죄라면 그냥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고 히트했을 뿐인데 미디어에서 이들을 남용하고 아무 데나 쓰면서 이미지가 훼손되었으니 곡의 입장에서는 많이 억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히트곡의 과도한 노출로 인한 대중의 피로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앨범의 나머지 곡들과 후속 싱글들이 그만큼 좋지 않아서인지 이후 The Calling은 그만한 히트곡을 내지 못하고 조용히 잊혀가면서 음악사에 One-hit wonder, 소위 한 곡만 히트하고 묻혀버린 비운의 뮤지션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로 불명예스러운 존재감을 남기고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2016년에 재결성해서 올해에 신곡이 하나 나오긴 했지만 지금의 The Calling은 보컬 Alex Band의 프로젝트에 가까운 듯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기타리스트 Aaron Kamin이 없는 상태로는 온전히 The Calling이라고 부르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1집 앨범을 꽤 좋아하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굉장히 아쉽게 생각한다.
보컬인 Alex Band의 음색은 락 보컬 중에 두드러질 정도로 중저음이 강하고 개성이 뚜렷한 편인데, 그와는 또 어울리지 않게 외모는 고운 선의 미남에 가까워서 한창 때는 여성 팬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외모와 별개로 그의 가창 스타일을 좋아하고, 고음과 샤우팅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락 장르에서 나름 희소성의 가치가 있는 보컬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와 기타리스트 Aaron Kamin이 함께 작곡한 곡들 역시 적절하게 대중적이고 캐치한 멜로디와 함께 안정적인 연주, 그러면서도 너무 가볍지는 않은 무게감을 갖고 있기에 나는 진지하게 1집 Camino Palmero가 꽤나 괜찮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 때 밴드 동아리를 하면서 초창기에 학교 축제 등에서 이들의 1집 수록곡인 'Wherever You Will Go', 'Thank You' 등을 몇 차례 카피한 바 있기에 개인적인 추억도 있는 팀이다. 비록 첫 싱글의 히트 이후 그만큼의 인기는 유지하지 못했으나 이후에 영화 Daredevil의 사운드트랙의 싱글 컷 노래인 'For You'도 그럭저럭 히트했고 2집 앨범 역시 첫 싱글이 빌보드 Hot 100 안에도 드는 등 나름 선전한 편이었는데 사실 왜 그렇게 대중의 눈에는 '한 곡 빼고 망한 밴드'라는 이미지가 정립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의외로 꽤나 하드하고 무게감 있게 시작하는 'Unstoppable'과 'Nothing's Changed'로 포문을 여는 이들의 1집에는 히트곡인 'Wherever You Will Go' 외에도 'Adrienne'이나 'Thank You', 'Stigmatized'와 같은 좋은 멜로디의 곡들이 풍성하게 자리를 차지하며 나름의 존재감을 내뿜는다. 비록 몇몇 곡들의 가사는 이 곡을 쓰던 이들이 굉장히 어린 청년들이었다는 점이 드러나고, 그렇기에 다소 유치하고 어설픈 구석이 있긴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그 자체도 1집을 발매한 모던락 밴드에게는 매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원 히트 원더라는 편견 때문에 이들의 앨범을 들어보지 않은 이라면 선입견 없이 한 번 1번 트랙부터 끝까지 찬찬히 들어볼 것을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