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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보컬 Sep 15. 2023

멋진 남자 되기 프로젝트

Dragon Ash - Viva La Revolution

기무라 타쿠야, 후루야 켄지, 오다기리 죠, 쿠보즈카 요스케, 배정남 등 내가 10대 후반에서 20대를 보낼 무렵에는 뭔가 이들처럼 살짝 이국적인 느낌에 선이 굵은 미남들이 동년배 남자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장을 입어도, 스포티한 느낌으로 대충 걸쳐도 멋이 나고 적당히 수염을 길러도 지저분해 보이지 않고 뭔가 야성적인 느낌까지 나는 이들에게 여자들은 강렬한 호감을 표시했고, 남자들은 질투를 느꼈다. 2000년대에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의 매력'이라고 하는 요소들을 외모적으로 구현한다면 대략 이들의 얼굴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00년대에 먹어주던 스타일

밴드 드래곤 애쉬의 보컬인 후루야 켄지 역시 음악 자체보다는 어떠한 이미지로 국내에 소위 음악 좀 듣고 센스가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동경했던 보컬이었다. 멋진 외모와 패션 센스가 돋보였고, 당시에 유행하던 뉴메탈/믹스쳐록을 하면서도 뭔가 자신만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느낌이었기에 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그를 벤치마킹해보려 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미팅이나 소개팅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도 당연히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다소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미용실에 이런 사람들의 사진 같은 걸 가져가서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했다가 실제 결과물을 보고 "뭐야, 다르잖아!"라고 실망하고 분노했다가 몇 차례 실패를 반복한 후 '아, 다른 것은 머리가 아니라 그들과 나의 얼굴이었구나.'라고 깨닫고 좌절하기도 했고, 삼선 츄리닝과 비니 같은 것으로 비슷하게 스포티한 느낌의 스타일링을 시도했으나 결국 '이 차림으로 들러야 할 곳은 클럽이 아니라 동네 편의점이었구나.'라는 것을 인지하고 풀 죽기도 했다.

섣불리 흉내냈다가 동네 거지가 되는 수가 있다

대학교 2학년 즈음에 후배가 진짜 예쁜 무용과 친구를 소개해주겠다며 호들갑을 떨어서 자리에 나갔는데 뭔가 상대 여성의 태도가 미적지근해서 '뭐지, 그 정도로 마음에 안 들었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후배가 '일본 배우와 닮은 형을 소개해주겠다.'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에 개봉한 영화 중에 '연애사진'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때 즈음 거기에 나왔던 주연 배우 마츠다 류헤이와 내 외모가 미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어서 몇 번 주변에서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후배가 나를 위한답시고 그걸 갖고 설레발을 친 것이었다. 당연히 상대 여자분은 오다기리 죠 같은 느낌을 기대하고 나왔을 텐데 기대와 많이 달라서 당황했으리라.


어쨌든 이제 와서 회상하면 웃픈 기억이 한가득이지만 지금은 나도 스스로에게 적당히 잘 만족하며 살고 있다. 20대 때와는 달리 어떤 머리와 옷이 그래도 나와 잘 어울리고, 어떤 스타일은 섣불리 시도하면 안 되는지도 대충은 파악하고 있고, 식상한 말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할 수도 있겠다. 10, 20대에는 노안이었지만 40대에 접어든 지금은 그래도 또래에 비해 나름 젊어 보인다는 얘기도 듣고, 무대에서 공연도 잘하고 있고, 자신한테는 내가 이상형이라고 얘기해 주는 사람과 만나서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뭐가 있을까.

드래곤 애쉬의 초기 앨범인 'Viva La Revolution'은 전개와 구성 면에서 다소 독특한데, 믹스쳐 록의 넓은 범주의 축에서 관대하게 보면 거기에 속할 수는 있는 음반이기는 하지만, 이게 힙합과 록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섞은 곡은 두세 곡 정도밖에 되지 않고, 그 정도를 제외하면 앨범의 앞 1/2는 거의 순수 힙합에 가깝고, 뒤의 1/2는 내달리는 펑크 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장르의 융합으로 이뤄낸 믹스쳐 록이 아니라 각기 다른 장르가 물과 기름처럼 앞부분과 뒷부분에서 따로 놀고 있는 희한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 이들은 다음 앨범인 'Lily of Da Valley'에서 세련된 일본식 뉴메탈 스타일을 정립한 음악을 선보이고, 'Harvest'에서 드래곤 애쉬 스타일의 힙합과 록의 개성적인 믹스를 완성하면서 일본 믹스쳐 록의 선구자 밴드로 자리 잡게 되는데, 그에 비해 다소 미완성이고 어설픈 느낌을 보여주는 것이 'Viva La Revolution'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어설프고 거칠어도 그 안에 묘하게 빛나는 구석이 이따금 보이는 것이 마치 우리의 10, 20대와도 비슷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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