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여름의 무더위 탈출을 대비하는 다채로운 일탈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지 본인의 인내심이 떨어진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근 몇 년간의 여름 무더위는 도를 넘어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여름 폭염에 겹치는 업무와 공연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나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 시기는 여행객이 가장 많은 성수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무더운 날씨 때문에 쉽사리 행선지를 선택하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다. 본래 휴양지는 애초에 취향이 아니고 동남아시아는 습한 날씨 때문에 제외, 휴가 기간이 짧으므로 북유럽이나 호주, 뉴질랜드도 선택지에서 제외하였다. 그 해 여름휴가의 취지는 더위를 피하는 것이 최우선이었으므로, 5박 6일 여름휴가의 행선지는 북해도로 결정하였다.
DAY 1 – 하코다테
하코다테는 북해도라고는 하지만 해당 구역에서 최남단에 위치하여 있고 실제로 삿포로에서 거리도 꽤 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홋카이도 여행에서 제외된다. 나 역시 이 곳을 여행 코스에 넣을까 말까 고민한 이유도 긴 이동시간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이름의 어감이 예뻐서, 두 번째는 즐겨보던 일본 만화들에서 주인공 일행의 희망 여행지 1순위로 자주 언급되었던 기억 때문이다.
삿포로의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홋카이도 레일패스 1일권을 끊고 4시간 정도 기차여행을 하면 하코다테역에 도착한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으니 짐을 호텔에 맡겨놓고 하코다테 여행의 필수 코스인 야경을 보기 위해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간다. 석양부터 밤에 건물들에 불이 켜지는 과정까지 지켜보는 것이 정석이라고 하여 타이밍을 힘겹게 맞춰 올라갔는데 웬걸 정상에 오르자마자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홧김에 다시 내려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겨 전망대에서 맥주를 한 병 사서 마냥 앉아있어 보았다. 1시간 정도 버티고 앉아있으니 다행히 구름이 부분적으로 서서히 걷히며 야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구름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상태로 눈에 보이는 경치를 가렸다 말았다 하니 눈 앞에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의 조명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모양새와 비슷한 독특한 광경이 펼쳐진다. 마침내 감격스럽게도 구름이 완벽히 걷히고 하코다테 전체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지역의 야경이 특별한 이유는 독특한 지형 때문에 모래시계 또는 호리병 같은 모양으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형태가 특이하기 때문이고, 아무래도 소도시이다 보니 대도시의 화려하기만 한 야경과는 다른 소박하고 온화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코다테 야경이 세계의 3대 야경 중 하나라는 문구가 전망대 여기저기에 적혀있는데 이는 나가사키에도 적혀 있었으므로 그다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인내의 끝에 시야에 겨우 들어온 소중한 풍경이므로 열심히 눈에 담기로 한다.
야경을 눈에 담았으니 늦은 저녁식사를 위해 야간까지 영업하는 하코다테의 유명 버거 체인 럭키피에로의 차이니즈 치킨 버거를 먹으러 간다. 맵지 않은 깐풍기 같은 느낌의 큼직한 닭튀김과 달콤한 중화풍 소스, 양상추가 어우러진 큼직한 햄버거는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푸짐한 크기 덕분에 가격 대 성능비만은 만족스럽다.
배를 채우고 근처의 모토마치 언덕 거리를 조용히 산책하면 동네의 한적한 분위기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하코다테는 일찍이 서양 문물을 도입한 항구도시인 덕분에 모토마치 언덕에는 오래된 유럽풍 성당과 서양식 저택 건물들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언덕 꼭대기의 성당에서 해안가에 이르는 내리막길을 걸어 아카렌카 창고군을 지나 호텔로 돌아간다. 호텔 투숙객은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온천탕에서 야간 온천욕을 즐기고 첫 날을 마무리한다.
DAY 2 – 하코다테 -> 삿포로
보통 하코다테에 들르는 여행객들에게는 아침 시장에서 해산물 덮밥인 카이센동을 먹는 게 정석으로 알려져 있으나, 나는 호텔 조식 패키지를 예약했기 때문에 아침 뷔페에 나오는 해산물들을 직접 밥에 얹어 먹는 것으로 만족한다. 어젯밤에 지나쳤던 붉은 창고 건물들로 구성된 아카렌카 창고군 내의 쇼핑몰을 둘러보고 바깥의 해안가 풍경을 즐긴 후에 치즈케이크가 유명한 스내플즈로 가서 커피와 케이크를 가볍게 섭취하고 오후에 삿포로를 향해 출발한다.
역에서 산 도시락을 기차에서 먹고 다시 4시간의 여정을 거쳐 삿포로에 도착하니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다. 북해도는 고베나 센다이 못지않게 소고기 요리도 괜찮은 편이지만 삿포로에서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것은 양고기 구이인 징기스칸이다. 보통은 가장 유명한 가게인 다루마에 가서 먹지만 나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아 조용히 징기스칸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다른 추천 집으로 갔다. 이 가게는 두 가지 면에서 유명하다고 하는데 첫 번째로 자리가 넓고 깔끔하여 가족 단위의 손님들도 번잡스럽지 않은 분위기에서 징기스칸을 즐길 수 있다는 점과 두 번째로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덜하다는 점 때문이라 한다. 확실히 자리가 이전에 방문했던 다루마에 비해 넓고 쾌적하긴 하나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덜한 정도가 아니라 맛이 과하게 무난해서 심심할 정도라는 게 문제였다. 두 번째 날의 저녁식사는 왠지 좀 덜 만족스럽다.
Day 3 – 삿포로 -> 오타루 -> 삿포로
간단하게 조식을 해결한 후에 오전에는 삿포로 시내의 스스키노 거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삿포로는 북해도 최대의 대도시이므로 웬만한 것은 다 있다. 대도시이지만 일본의 중심지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도쿄, 오사카에 비해 인구가 적어 여름에 여행하기에는 기온이 적당히 쾌적하고 사람도 많지 않아 돌아다니고 먹고 여유를 즐기기에 최적이다.
쇼핑을 위해 PARCO 백화점에 들러서 옷을 몇 벌 사고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간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도시인만큼 삿포로에도 웬만한 브랜드의 물품은 다 있으며 쇼핑하기에 나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브랜드 자체 스토어나 편집샵 등은 적은 편이므로 원하는 브랜드 물품이 있다면 백화점을 둘러보는 것이 좀 더 편리하고 실패가 적다. 젊은 사람들을 위한 스트릿 패션 브랜드는 PARCO, 좀 더 나이가 있는 여성들의 명품 브랜드는 미츠코시, 종합적으로 다 보기 위해서는 DAIMARU를 추천한다.
금일의 점심 식사는 삿포로의 거주민들의 해장 요리로도, 대학생들의 데이트 식사로도 인기가 좋다는 인기 카레 요리점 스아게의 수프 카레로 결정했다. 태국 카레의 국물요리 같은 식감과 인도 카레의 향, 일본 카레의 깔끔함을 결합한 것 같은 요리로 무난하면서도 풍미가 얕지는 않은 꽤 괜찮은 한 끼 식사이다. 돼지고기 수프 카레에 베이컨을 추가하고 점원의 추천대로 밥에 치즈를 얹어 먹었는데 어제저녁식사의 불만을 해소하기에 충분하다.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 오타루로 출발한다. 오타루는 삿포로에서 기차로 4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한 소도시 및 관광지이다. 본래 물류 유통이 활발한 항구였던 덕에 운하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물류창고 건물들이 개성적이면서도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운하 말고도 다양한 종류와 가격의 뮤직박스들을 전시, 판매하고 있는 오르골당이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이다. 건물 두 개에 걸쳐서 수많은 오르골들이 디스플레이되어 있는데 곰인형들이 음악에 맞춰 군무를 추는 형태의 귀엽지만 다소 조잡한 오르골부터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시키는 외관의 거대한 골동품 주크박스, 스타트렉 엔터프라이즈호를 떠올리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형태의 최신 기술 집약체 오르골까지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의 과거와 현재를 감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오르골당과 그 옆에 있는 전통과자점을 구경한 후에 다시 운하 쪽으로 걸어오니 어느덧 석양이 지고 있다. 북해도는 성수기에도 전반적으로 사람이 숨 막힐 정도로는 많지 않은 편인데 이 운하의 다리 위만큼은 예외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고 그중 누구도 해가 다 질 때까지 도무지 자리를 비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같이 버티고 서 있다 보면 운 좋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길 때도 있는데 여행 중에 사람 많은 곳은 피하고 싶으므로 잠깐 경치를 감상하고 재빨리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다.
삿포로로 돌아오니 저녁 식사시간을 놓쳤다는 것을 깨닫는다. 늦은 밤에도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호텔 근처 교자 집인 차오차오가 유명하다고 하여 들르기로 했다. 교자로만 식사를 하면 느끼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한쪽은 바삭하게 굽고 한쪽은 촉촉하게 놔두는 특유의 조리법으로 맛을 살려서 교자 및 만두요리를 전반적으로 즐기지 않는 나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돼지고기 교자 한 접시를 다 비우고 게살 교자, 새우 교자, 부추 교자를 추가로 주문하여 생맥주와 먹었다.
식사를 끝내니 왠지 이대로 하루를 마무리하기 아쉽다는 생각에 인근 재즈 바에 들러보았다. 아쉽게도 공연은 끝난 상태로 퍼포먼스를 마친 밴드 멤버들이 술을 한잔 기울이고 있고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을 닮은 주인이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다. 공연이 끝나 아쉽지만 고전적인 인테리어가 매력적인 곳이라 한잔 하고 나가기로 결심했는데 메뉴를 읽기가 쉽지 않다. 그냥 무난한 걸로 가자 싶어서 잭앤콕을 시키고 가방 구석에 넣어져 있던 책을 펴서 읽고 있으니 주인이 마른안주와 절인 토마토, 온더록으로 되어 있는 위스키를 한잔 갖다 준다. 난 분명 잭앤콕을 시켰고 주인이 ‘오케이’라고까지 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다시 가져다 달라고 하고 싶지 않아 쓰디쓴 술을 토마토와 함께 삼킨다. 고전 LP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아트 페퍼 연주를 감상하며 남은 술을 다 들이켠 후 졸고 있는 주인을 깨운 후에 계산하고 나와 하루를 마무리한다.
DAY 4 삿포로-> 후라노-> 비에이-> 삿포로
북해도의 자연경관을 즐기기 위해 아침 일찍 후라노를 향해 출발한다. 후라노로 가는 방법은 기차 또는 렌터카가 일반적이다. 기차를 타고 갈 경우에는 역 근방의 관광지만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다는 한계점이, 렌터카는 일본의 도로와 지리에 익숙지 않은 여행객에게는 다소 무리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하여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몸만 따라나서면 되는 무난한 버스 투어를 선택하였다.
후라노의 팜 도미타는 라벤더 밭으로 유명한데, 7월 말 즈음이 라벤더가 가장 예쁘게 피는 시기라고 한다. 라벤더가 피는 시기가 아니라도 다른 꽃들이 매우 예쁘게 피기 때문에 항시 아름다운 경치를 유지한다고 한다. 운 좋게도 내가 방문할 때에 날씨도 좋고 라벤더가 만개할 시기라 형형색색의 꽃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유지하는 풍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팜 도미타 이후의 행선지는 탁한 푸른 빛깔의 호수와 수면 위의 앙상한 나무들의 조화롭지 않은 듯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아오이이케(청색 호수)이다. 특유의 빛깔은 호수로 유입된 석회질 때문이라 하는데 그 덕분에 유명 관광지가 되었으나 호수 안에 있던 나무들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나무들이 죽어서 썩고 부러지고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오묘한 부조화의 풍경은 기간 한정이라고 한다.
후라노의 마지막 행선지인 흰 수염 폭포를 잠시 구경하고 비에이로 향한다. 비에이의 패치워크 로드는 전반적으로 풍경이 예쁘지만 그중에도 켄과 메리의 나무, 세븐스타 나무, 마일드세븐 언덕이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이는 모두 자동차 광고와 해당 브랜드의 담배 CF 촬영 스폿으로 유명해진 경우인데 환경과 폐를 더럽히는 제품들의 광고로 자연 풍광이 유명해졌다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마일드세븐의 당시 광고는 담배를 피우면 당신의 폐에 숲의 공기가 들어온다 라는 류의 카피였다고. 지금은 물론 시대가 바뀌어 담배에 마일드라는 용어를 이름에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여 해당 브랜드의 이름까지 변경할 것을 요구하여 마일드 세븐이라는 이름이 메비우스로 변경되었다.
켄과 메리의 나무는 여전히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나 세븐스타 나무의 경우에는 세월이 느껴질 정도로 약간 노쇠한 기색이 보인다. 그러나 딱히 해당 랜드마크가 아니어도 사방 어디를 돌아보아도 마치 고흐의 유화에 등장할 것만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나무의 노쇠함을 안타깝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 후라노보다 더욱 주의할 점은 비에이의 주요 스폿은 관광지라기보다는 실제 농가들이 있고 주민들이 생활하고 농사짓는 공간이므로 해당 장소에서 사진을 잘 찍어 보겠다고 도로를 장시간 점거하거나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는 추태는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삿포로로 돌아오니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있다. 삿포로는 게 요리가 유명하다 하여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1인당 7-8천엔 정도의 게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는 카니혼케로 향한다. 게 요리 장인이 눈 앞에서 게를 분해해서 묘기에 가까운 요리를 선보이는 더 유명한 곳이 있다고는 하지만 1인당 4만 엔이므로 게 요리의 어지간한 마니아가 아니고서는 쉽사리 마음을 먹기가 힘들다. 7 ,8천 엔으로도 갖가지 게 요리를 만족스럽게 맛볼 수 있다. 게 사시미와 스시부터 시작하여 튀김, 고로케, 구이까지 세상의 모든 요리법으로 조리한듯한 게 요리가 양껏 상에 펼쳐진다.
DAY 5-6 삿포로 시내-> 귀국
삿포로는 서양 문물을 일찍 받아들이고 도시 자체가 서양식으로 계획되고 설계되어 맨해튼처럼 도시의 모든 구획이 직각, 일렬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도보 여행이 깔끔하고 쉬운 편이다. 주요 시설, 맛집, 쇼핑센터 등이 삿포로 역에서 스스키노에 이르는 구역 안에 밀집되어 있어 주요 지점만 들를 계획이라면 많이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도심의 중심에는 삿포로 시민의 숨통이라 할 수 있는 오도리 공원이 뉴욕의 센트럴 파크처럼 가로로 길게 위치해 있으므로 산책하기에도 좋다. 또한 지하철과 노면 전차가 동시에 운행되므로 편리하고 신속한 이동이 우선이라면 지하철을, 보다 낭만적으로 느긋한 이동을 원한다면 노면 전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삿포로 3대 카페 중 하나라는 랑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본인의 오타쿠 기질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다라케, 정글, 빌리지 뱅가드를 들르기로 한다. 해당 가게들은 도쿄와 오사카 및 다른 일본 주요 도시들에도 있으며 주로 만화 관련 용품, 피규어, 그 외 실용성보다는 재미와 독특함을 내세우는 잡화들을 판매하는 곳이다. 아쉬운 것은 도쿄, 오사카에 비해 아무래도 물량이나 규모 면에서 상태적으로 빈약한 면이 있어 단순한 덕질이 여행의 목적이라면 삿포로보다는 일본의 주요 도시를 방문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한가로이 도심을 거닐다가 고전 슈퍼마리오 게임의 BGM이 귀를 때릴 정도로 크게 흘러나오는 곳이 있어 눈을 돌렸더니 마리오 분장을 한 중년 아저씨 한 명이 실제 게임에 나오는 듯한 카트를 끌고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도쿄에는 실제로 여행객들을 위한 마리오 카트 주행 패키지 상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삿포로에는 그런 패키지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고 아저씨가 혼자 계신 데다가 분장에 공을 들인 흔적이 명확한 점으로 볼 때 그냥 마리오에 엄청난 애착을 갖고 있는 마니아인 듯하다. 이런 특이한 사람들과 이따금 마주칠 수도 있다는 점도 일본 여행의 큰 매력이다.
오후 쇼핑을 마치고 마지막 날 저녁은 제대로 호사를 누려보기 위해 삿포로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스시를 내는 유명 스시집 중 하나인 마루즈시에 방문한다. 1인당 2만 엔이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눈 앞에 놓여있는 신선한 식재료와 그것을 묘기에 가까운 솜씨로 다듬어 손님에게 내놓는 스시장인을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한 끼 정도는 이렇게 먹어봐도 되지 않나 하며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게 된다.
저녁을 먹고 마지막 날 밤의 기운을 제대로 누려보기 위해 인근의 라이브 하우스를 방문하였다. 평일 밤인데도 손님이 제법 많이 있다. 총 6팀의 밴드가 공연을 하는데 장르는 훵크, 모던락, 얼터너티브, 개러지, 락큰롤 등 다양하며 연주도 제법 수준급이다. 북해도 전역의 뮤지션들이 모이는 곳이 삿포로이니 그런가 보다 생각도 하지만 도쿄나 오사카, 교토의 라이브 하우스에서 본 인디밴드들에 비해서도 실력이 좋은 편이라 다시금 놀라게 된다.
공연을 다 보고 나오니 밤 11시, 마지막까지 버티며 일본 3대 라멘 중 하나라는 삿포로 라멘을 먹기 위해 근방의 유명한 라멘집 케야키에 들른다. 밤인데도 사람이 많아 약 30분 정도 줄을 선 후에 들어간다. 삿포로 라멘은 일본 3대 라멘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여행객들에게는 후쿠오카의 하카타 돈코츠 라멘에 비해 인기가 좀 떨어지는 편이며 호불호가 갈리는데, 추운 지역의 특성 때문인지 돼지기름을 한 층 더 국물에 얹고 일본식 된장 미소, 소금 또는 간장으로 간을 추가로 하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일본 라멘보다 훨씬 기름지고 짠 편이다. 가게의 추천메뉴인 미소라멘과 교자를 시켜 먹었는데 다행히 몇 년 전에 삿포로에 왔을 때에 비해 입맛이 변한 덕분인지 입에 맞게 느껴진다.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 나서니 12시가 넘었다. 휴가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제대로 쉬었다는 기분은 들지 않고 몸은 한층 피곤해진 것 같지만 마음만은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 이 글은 올해가 아닌 지난여름에 간 여행을 토대로 쓰인 글이므로 몇몇 점포 및 투어 정보는 지금 현재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