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서 메탈밴드하기 #2

고만고만한 밴드맨의 길은 생각보다 산 넘어 산

by 핵보컬

홍대에서 인디밴드를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대부분의 밴드들이 매니저와 기획사의 케어를 받지 못하고 모든 것을 온전히 그 멤버들 본인들이 감당하고 짊어지고 이끌어나가야 하기에 거기에서 기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기획사, 매니저가 있어서 오히려 더 어려움이 생기는 부분, 그 부작용도 분명히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사실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멤버 4~6인 정도가 모여서 밴드를 꾸려가는 경우에 이 부분에서 경력자의 관리 및 조언을 받지 못한다면 이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문제가 닥쳐올지,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해나가야 하는지조차도 예상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아니 그보다 먼저 밴드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인식에서도 각자 생각, 그 시작점이 다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의 첫 밴드, 가장 화목했던 시기의 합주 모습

지난 글에서는 내가 당시에 처음 시작했던 밴드가 힘겹게 공연할 클럽을 '뚫고' 나름 섭외를 '받는' 팀의 위치에 올라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기초적인 어려움에 대해서 회고하였다. 그 당시에 나는 '이제 기반을 마련하였으니 활동 무대를 넓히고 더욱 성장하는 길만 남았다.'라고 너무나도 순진하게 상황을 긍정했다. 실제로 일정 기간 동안에는 그렇게 되기는 했다. 공연을 할 때마다 팬이 평균적으로 5~10명씩은 꾸준히 늘었으며 크지는 않지만 당시에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팀들끼리 꾸린 일종의 크루에 합류하기도 했고, 공연하던 클럽의 1주년 기념행사에도 섭외가 되어 일반인들도 이름을 알 법한 유명한 밴드들과 같은 무대에 서기도 했다.

밴드는 가족이다...?

문제는 안에서 곪아가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 멤버들에게는 밴드가 제2의 직업, 혹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비중을 인생에서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외의 멤버들은 밴드를 남는 시간에 하는 취미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에 다니던 학교에서 있던 스케줄도 눈치 봐서 빼가면서 밴드에 투자를 하고 있었던 반면 다른 멤버는 시험 3주 전부터 자기는 이 기간 동안은 밴드 일정에서 빼 달라고 요구를 했고, 그러한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공연을 거절하거나 미룰 때마다 우리 팀에 불이익과 타격은 직접적으로 왔다. 한동안 거의 친동생만큼 가까웠던 멤버는 나에게 이기적인 애물단지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결국 매번 내가 분노와 짜증을 폭발시킬 때마다 우리 사이는 멀어져 갔다. 결국 한 명은 사이가 멀어져서 떠나고, 다른 한 명은 직업/공부가 중요해서 자의적으로 탈퇴하고, 새로 합류한 대체 멤버는 눈에 차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의욕을 잃게 되어 나의 첫 밴드는 약 3년 만에 마지막 모임이나 송별 파티도 한 번 없이 조용히 공중분해되었다.

지금 떠올려도 욕이 나오는 나의 두번째 밴드

그다음부터는 꾸준히 내리막길이었다. 음악 성향이 잘 맞아서 알던 형과 작업실도 마련하고 장비도 안에 채우면서 야심 차게 꾸린 두 번째 밴드는 그 형의 '여자친구가 나 밴드 하는 거 싫어해.'라는 마지막 말 한마디와 함께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끝났다. 밴드를 새로 꾸리고 그 팀이 깨지는 과정에 신물이 난 탓에 '그래. 이 팀은 오래된 팀이니까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오디션 보고 들어간 세 번째 중견 밴드는 나름 그래도 내가 합류하고 3~4년을 더 갔지만 결국 멤버들이 각자 지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생긴 갈등으로 역시 파토가 났다. 이후 '다 지겨우니 나도 밴드 일에 적극 개입하지 않고 활동하고 있는 팀에 가서 노래나 부르자.'라는 생각으로 오디션 공고가 난 팀들 몇 군데에 연락을 해보았으나 돌아온 대답은 "우리는 20대를 찾고 있으니 나이가 많으셔서 안 될 거 같다."라는 말이었다. 웃긴 건 20대를 찾고 있다던 그 인간들은 본인들이 30, 40대였다는 점이지만...

-다음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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