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맞는 밴드를 찾는다는 일이란...?
직장인밴드와 인디밴드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혹자는 일정 이상의 수입의 여부로 그 둘을 가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따로 직장을 가진 사람이 밴드를 하면 직장인밴드이지 않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기준으로 둘을 나눈다면 현재 한국 인디밴드의 과반수 이상은 모두 직장인밴드에 속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작곡을 갖고 있다면, 앨범을 발매했다면 인디밴드이지 않겠냐 라고 한다면 요즘은 직장인밴드들도 수준급의 자작곡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꽤 있고 돈과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지 앨범을 발매할 수 있는 시대이니 이도 좀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누가 내게 위의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이를 가르는 기준은 '성장'과 '고민'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라고 생각한다고 답하겠다.
직장인밴드라고 해서 성장을 하지 않고 아무 고민 없이 음악을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단, 직장인밴드는 일차적으로 취미로 음악을 하고 있고 본인들의 즐거움이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에 모든 성장과 고민 역시 이 즐거움을 최대화하는 데에 대부분 초점을 맞추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인디밴드는 어쨌든 본인들의 음악을 하나의 브랜드로 생각하고 이를 키우기 위하여 꽤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편일 것이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어느 날은 헤비메탈 음악을 작곡하고, 다음 날에는 퓨전 재즈곡을 작곡하고 하는 식이 아니라 어떤 음악으로 본인들의 색깔을 정립하고 대중에게 이를 들려주고 어떤 형태로 본인들을 보여줄지에 대해서 초창기부터 그 이후까지 계속 생각해보고 발전하고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둘의 경계가 약간은 유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활동하던 밴드가 생활의 무게의 압박에 '이제는 활동을 줄이고 취미로 음악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직장인밴드로 노선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고, 부담 없이 직장인밴드로 만난 사람들이 '우리 좀 진지하게 뭐 좀 해볼까?' 하면서 인디밴드의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지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8년 동안 3개의 밴드를 말아먹은 나는 깊은 회의감에 빠졌고 매우 지쳐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이룬 성과라고는 싱글 두 곡 정도 발매한 것이 전부였고, 주변 사람들 역시 만날 때마다 '밴드 그거 아직도 하냐? 대단하다 진짜.'라는 비꼼에 가까운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새로 들어갈 팀을 물색하면서 만난 독특하신 분들은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앞서 말한 20대만 찾는다던 30대 분들로 시작해서(20대를 찾다가 본인들이 늙으셔서 지친 건지 현재 활동을 하진 않으시는 거 같다), 본인들은 위험요소가 없는 호나우두급 플레이어를 찾는다며 오디션을 6개월 정도 봐야겠다고 하시던 분들(호나우두급을 찾다가 포기했는지 요즘은 세션 보컬들 위주로 앨범 활동만 하시는 것 같다) 및 각양각색의 종합예술인 조우 체험에 질릴 무렵, '아무나 받지 않습니다. 실력 있는 분들만 오세요'라는 패기 절정의 오디션 문구가 나의 눈을 잡아끌었다.
승부욕을 자극하는 문구는 분노 쌓인 의지만 불타던 나의 심리를 묘하게 자극하는 구석이 있었고, 결국 조금 고민한 후에 바로 적혀있던 연락처로 연락을 해보았다. 문구에 걸맞게 전화를 받은 상대의 말투는 마치 대기업 면접관처럼 굉장히 깐깐했다. 전에 밴드는 어떤 거 해보셨냐, 발매된 곡은 있느냐부터 시작해서 자작곡 멜로디를 만들 능력은 갖고 계시냐 등등의 질문이 이어졌고, 싱글 두 곡 발매한 게 있다는 내 대답에 상대방은 '저희가 들어보고 한 시간 있다가 전화드리겠습니다.'라는 오디션 프로 심사위원 같은 말로 응수하고 끊어버렸다.
말투를 보아하니 여기도 안 되겠다 생각할 무렵, 3~4분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 전화가 울렸고, 상대방은 아까와는 달리 굉장히 격앙된 톤으로 '한 번 만나시죠! 시간 언제 되시나요?!'라며 만남을 독촉했고, 당시에 3주 정도의 장기 여행을 계획 중이었던 터에 1달 후 정도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래도 여긴 날 마음에 들어해 주는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을 갖고 자작곡 데모(완성되지 않은 습작)를 받아 1달 후 만났을 때 함께 완성시키기로 말을 맞춘 후에 연락을 마무리지었다. 문제는 훈훈한 마음으로 받은 이들의 데모가 조악하기 그지없었다는 것이었다. 합주실에서 휴대폰으로 녹음해서 음질이 나쁜 것은 그렇다 치고 기타 튠/음정도 맞지 않는 데다가 어떤 곡은 쓸데없이 길었고, 어떤 곡은 구조를 알아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덜 만들어진 상태였다. 그냥 다시 전화해서 만나지 말자고 할까 고민했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지켜야 했고, 시간이 있으니 여유를 두고 지켜보자는 마음에 받은 데모를 아이팟(난 지금도 휴대폰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에 저장시키고 여행 갈 짐을 챙겼다.
3주 간의 여행은 무진장 좋았다. 4년간 쌓인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당시 그 직장에서의 일이 다 마무리되고 새로운 곳으로 옮길 예정이었던 시기였다)가 풀리고, 이전에 만난 진상 밴드맨들로부터 느낀 짜증이 다소 해소될 무렵,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는 받았던 데모를 다시 이어폰을 귀에 꼽고 들어 보기 시작했고, 의외로 멜로디가 꽤 술술 써지는 걸 느꼈다(물론 튜닝/음정이 안 맞는 건 여전했다). 여행 기간 동안 의외로 이전에 받은 4곡 멜로디를 모두 완성시킬 수 있었고, 만나서 괜찮아 보이면 좀 더 같이 해보고 별로면 바로 찢어져야겠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당일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합주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SNS 사진으로는 꽤나 카리스마 있는 상남자처럼 보였던 기타리스트가 우리 교회 아주머니 집사님을 연상시키는 푸근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어차피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찢어질 각오를 하고 간 자리였기에, 한 두 번 정도 합을 맞춘 후에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바로 다 내뱉었다. 이 부분은 기타를 이렇게 쳤으면 좋겠고, 리듬은 지금 너무 단조로우니 어떻게 바꿨으면 좋겠고 등등의 얘기를 했는데 사실 나도 처음 간 자리였기에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 않고 좋게 받아들여주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라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좋게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멤버들이 의외로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내가 생각했던 대로 곡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의 속도도 꽤나 빨랐으며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꽤나 즐거운 마음으로 첫 합주를 마친 후에 기타리스트가 이번엔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같이...하실거죠?"
-마지막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