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서 메탈밴드하기 #3-2

그놈의 밴드...언제까지 할 거니?

by 핵보컬


(서론 없이 앞의 글 #3-1과 바로 이어집니다)

어쨌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첫 오디션 만남 후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해보니 만만치 않게 그쪽 멤버들 역시 고생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름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팀을 하다가 그 팀 해체 이후 새 팀을 꾸렸고, 고생하며 활동하던 차에 의견차로 기존의 팀은 또 반토막이 나고, 보컬 오디션을 보기 위해 공고를 내니 다채로운 인간군상(진상)들이 방문하여 지친 상태였다고 했다. 결국 나는 처음 먹었던 (악의 가득한) 마음과는 다르게 그 팀의 새로운 보컬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후의 과정은 나름 순탄하게 이어졌다. 부족한 사운드 보강을 위해 나와 함께 첫 밴드를 했던 FX/키보디스트를 영입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밴드를 꾸려가게 되었다. 밴드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가게/음식점/점포를 개업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밴드의 이름을 짓고, 어떤 색깔의 음악을 할지 어느 정도의 방향을 잡고, 거기에 맞는 로고도 디자인하고, 무엇보다 원동력이 될만한 곡을 만들고 거기에 걸맞은 퍼포먼스를 구상하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마치 가게의 이름을 짓고, 어떤 종류의 메뉴를 선보일지 결정하고 인테리어 작업과 홍보 전략을 짜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 과정을 겪은 후에 충분히 곡수가 채워지고 공연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 이후에 6개월 정도 공연 및 활동을 했다. 그 이후에는 첫 EP 녹음을 마무리지을 무렵에 원래 베이시스트를 맡았던 멤버가 문제가 생겨서 탈퇴를 하게 되어 잠시 갈등과 침체의 시기가 있었으나, 다행히 시간과 의사가 맞아 나와 이전에 첫 밴드를 같이 했던 베이시스트를 추가로 영입하게 되었다. 어찌하다 보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낸다고 멤버 5명 중 세명이 처음 밴드를 같이 했던 멤버이니 이 역시 신기한 노릇이 아닐까.

이후 행보는 나름 성장하고 전진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멤버 교체로 약간의 위기 및 슬럼프가 찾아올 위험이 있었지만, 해당 시기에 어느 전국적인 규모의 밴드 경연대회에 참가하고 수상까지 하게 되면서 다시 어느 정도 안정을 얻었고,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함께 오랫동안 밴드 생활을 했던 멤버들이 각각 두 명씩, 세 명씩 모여 다섯 명이 되니 서로 커뮤니케이션도 잘 되는 편이었고, 함께 한 시기가 길지 않은 것에 비해 곡도 많이 만들어졌다. 6 트랙으로 구성된 EP를 완성하고 나니 그 이후 1년가량의 시간이 지나 14 트랙으로 된 정규를 완성하게 되고, 곡 창작도 공연도 쉬지 않고 나름 활발하게 계속 진행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되었다고 느낀다.

물론 그 이후도 크고 작은 문제는 끊이지 않고 우리를 괴롭힌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때마다 어느 정도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치 방학숙제로 만든 시간표 마냥 그것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 돈을 투자해서 정규 앨범을 발매해도 좀처럼 음원 차트에 오르내리고, 페스티벌에서 모셔가는 밴드가 되는 길이란 쉽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안 잡히는 느낌이다. 다른 밴드와 관계자들 역시 동료/선의의 경쟁자/조력자 수준에서 머물기만 한다면 좋겠지만 이따금 상대를 깎아내리려는 사람들, 헛소문과 오해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들, 본인은 노력하지 않고 타인의 업적에 숟가락만 얹으려는 자들이 끊임없는 피로를 자아내기도 한다. 관객이 많지 않은 밴드의 세계에서 아무래도 늘 웃으며 사람들을 대하려 하다 보니 이를 만만히 보고 예의 없는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들도 꽤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짓(?)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 역시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늘어가는 관객과 팬, 진심으로 다른 밴드를 챙겨주고 같이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다른 팀의 뮤지션들, 새로이 만나는 관계자들과 그들 덕분에 접하게 되는 새로운 장소와 찾아오는 기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작은 진심들이 소모로 인한 피로를 조금이나마 감소시킨다. 그런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잘 마친 날에 집에 돌아왔을 때, 체력적인 피로감에 반비례해서 올라가 있는 만족감과 성취감 때문에 라이브를 반복하고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 하루도 어제보다 조금 성장했고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뿌듯함으로 결국 어느 정도의 정신승리를 보태서 작은 성취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대다수의 인디밴드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서론에서 직장인 밴드와 인디밴드의 차이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했다. 직장인 밴드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속한 밴드가 주변 사람들에게 직장인 밴드로 치부되는 건 원치 않는다. 그것은 내가 밴드 활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성장과 발전이기 때문이다. 늘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재미와 자기만족에 큰 가치를 두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새로운 걸 만들고 과거보다는 현재가 나은 팀으로 매일 전진하고 싶다. 그 과정이 조금은 덜 즐겁고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재미와 안정을 중시하면서 고민과 노력은 경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기 때문에 더 고민하고 투자하고 싶다.


주변에서 10년 동안 들어온 말이 있다. "너, 그 밴드라는거...언제까지 할 거야?" 그럴 때 내 대답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더 이상 성장을 멈추게 되고 무대 위에서 나 혼자 즐겁고 들뜬 것 같이 느껴지게 된다면, 과감히 관두겠다고. 그전까지는 그 속도에 신경 쓰지 않고, 조바심 내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날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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