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판 호러 막장드라마

어셔 가의 몰락 (Netflix 드라마)

by 핵보컬

얼마 전 넷플릭스의 '어셔 가의 몰락'을 쭉 관람했다. 국내에서 이 제목을 듣는다면 혹자는 "뭐지? 왕년의 팝스타 어셔가 마약하고 사업이라도 말아먹었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팝스타 어셔의 몰락을 다룬 리얼 다큐멘터리는 아니고 영미권 문학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1839년 단편을 원작으로 한 호러 드라마이다. 아무리 무리를 해도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그대로 각색해서 8부작짜리 장편을 길게 뽑아내는 것이 가능할리는 없고, '고자질하는 심장',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검은 고양이' 등 그의 대표작들을 모두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이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스토리와 캐릭터들을 만들어내어, 오히려 역으로 보면 아예 새로운 스토리에 에드거 앨런 포의 고전들에 대한 오마주를 섞었다고 볼 수도 있다.


드라마에서 어셔 가는 부패한 제약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재벌 가문이다. 아무래도 마약성 진통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새클러 일가를 모티브로 한 것 같은데,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옥시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여태껏 그 어떤 재판이나 사회적 논란도 힘으로 눌러 무사히 넘어가던 그들이었지만, 최근 재판에서는 가문 내에 내부 밀고자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와 동요하고 있으며, 결국 가문의 수장인 로드릭 어셔는 자식들을 한 데 불러 모아 내부자를 색출해 내는 사람에게는 현금으로 5백만 달러를 주겠다며 현상금을 내걸어 가족끼리 서로 의심하고 이간질할 상황을 만들어낸다. 마치 김순옥 작가나 임성한 작가의 작품들이 떠오르는 한국식 막장드라마를 연상하게 만드는 인물 간의 갈등 구도라서 우리나라의 시청자들에게도 흥미를 유발하고 익숙함을 느낄 수 있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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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이 드라마가 한국의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선을 넘는 폭력성과 잔인함, 그리고 초자연적인 호러의 요소이다. 자식들끼리 서로 의심하고 뒷공작을 펼치며 상대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막장드라마를 굴러가게 만들 수 있을만한 갈등 구도인데, 이에 더하여 그 인물들이 하나씩 알 수 없는 그 무언가의 존재에 의하여 아주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기 시작한다. 흥미롭지만 '아, 아직까지는 빌드업 과정인가 보군.'이라는 느낌이 들게 아주 살짝 루즈할 수도 있는 1화를 지나고 나면 2화의 막판 클라이맥스는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인 장면을 보는 이에게 선사함으로써 바로 고개를 돌리고 TV를 끄게 만들거나, 바로 다음 화를 클릭하게 유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에도 꽤나 그럴듯하게 에드거 앨런 포의 원작 단편 소설들과의 연결고리 및 오마주도 챙기고, 다음 화의 전개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도 꾸준히 유발하면서 이런 류의 호러/미스테리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중간에 시청을 끊기 힘들 정도의 흥미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웰메이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houseofusher-review-fb.jpg 왠지 한국식 막장드라마가 떠오르는 구도

이 드라마의 제작을 총괄하고 있는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은 '힐 하우스의 유령', '블라이 저택의 유령' 등의 드라마를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적어도 이미 넷플릭스와는 안정적인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가 연출한 극장용 영화 '닥터 슬립' 같은 작품은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했으니 극장 흥행과는 불운하게도 연이 좀 없는 듯하기도 하다. '어셔 가의 몰락'은 그의 장점과 단점이 극과 극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한데, 싸구려 같지 않은 점프 스케어의 적절한 활용이나 중간중간 수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막 나가는 당돌한 전개, 출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촘촘하게 잘 짜인 인물 간의 갈등 구도와 전체적으로 고급진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뭔가 보여줄 것 같다가 뻔한 예상대로 흘러가거나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뒷심이 부족하고 마무리가 아쉽다는 점은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보이는 고질병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셔 가의 몰락' 역시 원작에 대한 오마주를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들지만 후반부의 뻔한 결말이나 몇몇 무리수들이 눈에 띄어 아쉬움을 준다. 게다가 비단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근 몇 년 대다수의 영미권 작품에서 느껴지는 단점인데 작품의 전개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사회적 비판 메시지와 훈계질, LGBTQ 층을 의식한 억지스러운 몇몇 장치들이 중간중간 몰입을 방해하여 이런 부분에 대해서 염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싫어할 만한 부분이다.


상기한 대로 단점이 없는 완벽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호러에 어느 정도 면역이 있는 시청자라면 '어셔 가의 몰락'은 충분히 몰입하여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웰메이드 작품임에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시종일관 너무 우울한 '힐 하우스의 유령'이나 보는 이에 따라 극강의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는 '블라이 저택의 유령', 영화 '샤이닝'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면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들 수도 있는 '닥터 슬립'에 비해 마이크 플래너건 작품을 처음 접하기에는 제일 좋은 선택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10월 말에는 할로윈이 껴 있는 기간이기에 이 시기에 호러 작품 관람을 즐기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렇다면 '어셔 가의 몰락'은 꽤나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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