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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보컬 Nov 02. 2023

어려운 뉴메탈 만들기...참 쉽죠?

Incubus - S.C.I.E.N.C.E.

'인큐버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떤 이들은 사전적인 의미로 섹시한 버전의 프레디 크루거를 연상시키게 만드는 '몽마'를 생각할 수도 있고,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은 스타크래프트의 맵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아마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리고 현재도 활발히 활동 중인 5인조 록밴드를 떠올릴 것이라 생각한다. 재미있는 점은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인큐버스라는 밴드를 접한 시기에 따라 각기 다른 관점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발라드 넘버인 'Drive'를 통해서 접했기 때문에 마치 니클백이나 더 콜링 같은 류의 포스트 그런지 색채를 띤 모던록 밴드로 생각하기도 하고, 좀 더 늦게 접한 이들은 'Megalomaniac'이나 'Anna Molly' 같은 좀 더 스트레이트하게 내달리는 성향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로 알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전성기를 맞았던 90년대 말보다 훨씬 이른, 1991년에 결성한 이들의 초창기 음악은 뉴메탈을 기반으로 훵크(funk)적 색채를 강하게 도입한 독특한 것이었다.

초창기 및 전성기의 인큐버스의 멤버 라인업을 보면 예전에 즐겨보던 일본만화 'BECK'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만화에서 주인공들의 밴드 Mongolian Chop Squad(A.K.A. BECK)의 멤버 구성은 메탈부터 블루스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천재 기타리스트 류스케를 필두로 흑인보다 훵키한 그루브를 잘 구사한다는 (누가 봐도 Red Hot Chili Peppers의 Flea를 모티브로 한 듯한) 베이시스트 타이라, 시종일관 정석적인 그루브부터 변칙적인 리듬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밴드에 안정감을 심어주는 드러머 유우지, 랩배틀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준우승까지 거둔 기량과 개성을 갖춘 랩퍼 치바,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사의 목소리를 갖추어 듣는 이를 한 번에 바로 사로잡는 기타 겸 멜로디 보컬 유키오 등 5인의 라인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Incubus 역시 비슷하게 5인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공대생 같은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헤비한 메탈 리프부터 어쿠스틱하고 청명한 기타 라인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기타리스트 Mike Einziger, 뉴메탈과 얼터너티브 계열의 음악에서 가장 그루브감이 좋은 플레이스타일을 갖춘 베이시스트 Dirk Lance(현재는 Ben Kenney로 교체), 이 둘의 독특한 라인과 리듬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실력자 드러머 Jose Pasillas, 몽환적인 사운드부터 장난스러운 효과음이나 세련된 FX 모두를 구사하며 밴드의 소리에 양념을 쳐주는 DJ Lyfe(99년 이후부터 Chris Kilmore로 교체), 마지막으로 리드미컬하면서도 개성 있는 랩과 수려한 멜로디 라인까지 양쪽 모두를 능숙하게 소화하는 보컬 Brandon Boyd까지 각자의 역량도 뛰어나고 밴드 전체로서의 호흡도 탄탄한 이들이 밴드에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한다.

음악 매니아들 사이에서 흔히 뉴메탈이라고 하면 '쉽고 심플한 음악'으로 인지하고는 하는데, 사실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이 대부분의 뉴메탈 밴드들의 음악에서는 같은 리프와 그루브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 다른 메탈 서브장르에서 들을 수 있는 화려한 기타 솔로나 고음 보컬, 데쓰 그로울링이나 트윈페달 드러밍 등의 기교가 대부분 부재하기에 소위 말하는 '테크니컬한' 음악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인큐버스의 2집(메이저 데뷔 기준으로는 1집으로 보기도 한다) 앨범 'S.C.I.E.N.C.E.'의 경우에는 섣불리 카피해 보겠다고 건드렸다가는 의외의 난이도에 진땀을 뺄만한 곡들이 트랙리스트를 꽉 채우고 있는, 소위 말하는 '쉬운 뉴메탈'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예외의 경우라고 생각한다. 당장에 스트레이트하게 들리는 리프 때문에 간단한 곡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해 볼 만한 첫 트랙 'Redefine'부터도 막상 밴드 합주를 시작하면 생각보다 괴랄한 박자와 메탈의 범주를 벗어나는 기타 톤, 중간 부분의 화려한 베이스 슬랩, 듣기보다 따라 불러보면 은근히 어려운 랩 때문에 애를 먹을 수 있다. 거기에다가 드럼에 추가 퍼커션까지 쉴 새 없이 두드리면서(라이브 영상을 보면 보컬 브랜든 보이드가 속사포 랩을 하면서 양손으로 퍼커션을 연주하는 진기한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내달리는 곡 'New Skin', 간단한 그루브인듯하지만 시종일관 베이스 슬랩을 유지해야 하는 'Certain Shade of Green' 등의 트랙을 거쳐 재즈 훵크와 뉴메탈을 분열증 환자처럼 오가야 하는 괴랄한 곡 'Deep Inside'에 이르면 '이 밴드, 여간 보통내기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하다.

멤버 교체 후 현재의 라인업

그나마 위에 언급한 곡들은 앨범의 트랙들 중 집중하지 않고 얼핏 들었을 때 쉽다고 느낄 수 있는 것들 위주로 나열한 것이고, 독특한 빌드업과 구성을 자랑하는 'Vitamin', 뉴메탈적인 색채보다는 멜로딕 훵크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듯한 발라드 'Summer Romance (Anti-Gravity Love Song)'(어릴 때 들었을 땐 초반부 지지직거리는 소리 때문에 CD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그냥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 괴랄한 트랙 'Nebula' 같은 곡들은 처음 듣기에도 일반적인 뉴메탈 음악과는 차별화되는 개성을 청자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이후에 발매한 앨범 'Make Yourself'의 발라드 트랙 'Drive'로 꽤나 큰 대중적 성공을 맛보게 되는데, 아쉬운 점은 이 이후로 점차 이들의 훵키한 맛이 사라지고, 'Morning View' 앨범을 끝으로 밴드의 독특한 그루브의 큰 축을 담당했던 베이시스트 Dirk Lance가 탈퇴하면서 아예 음악의 색깔이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후의 앨범에서도 'Megalomaniac', 'Anna Molly'나 'Dig'과 같은 준수한 곡들을 내놓긴 했지만 뭔가 내가 좋아했던 Incubus의 핵심적인 색깔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Dirk Lance가 인큐버스의 음악의 그루브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체감하고 싶은 이에게는 그와 드러머 Jose Pasillas가 간만에 함께 한 곡 '4 Player Co-Op - Picture Perfect Fantasy'를 들어보길 권한다. 밴드 탈퇴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한 그만의 그루브감이 녹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트랙이다.


뉴메탈의 흥망성쇠를 다 따지면 대략 25~3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고 볼 수 있는데, 그 긴 범주 안에서도 Incubus의 'S.C.I.E.N.C.E.'만큼 개성 있고 독특한 앨범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독보적인 기량의 뮤지션들이 가장 호흡이 좋았을 때 최대한의 시너지를 낸 훌륭한 음반이니 혹시라도 아직까지 'Drive'만 듣고 이들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리스너라면 지금 당장 꼭 이 앨범을 청취해 보길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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