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아이디어로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 코메디 영화들
한 때 범람했던 조폭 코메디 영화들이나 유행어만으로 밀고 나가던 안일한 작품들 때문에 흔히 코메디 영화라고 하면 만들기 쉬운 저질 작품이라는 인식을 갖기 쉬울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이 쪽 장르 영화들은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나 SF, 판타지 등 타 장르 영화에 비해 저예산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런 선입견이 더 강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좋게 남았거나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명작 코메디 영화들의 경우 대부분 기발하고 훌륭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많다. SF나 판타지, 스릴러 영화에도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중요하지만 코메디 역시 그에 못지않게 컨셉 하나만 잘 짜도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간다는 것을 증명한 영화 몇 편을 소개 및 추천해보고자 한다.
해충은 세스코가, 유령은 고스트버스터즈에게!!
만화 버전이나 주제가가 워낙 유명하기에 만화 원작 영화로 알거나 아예 영화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있고, 알더라도 일종의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꽤 많은데 의외로 고스트버스터즈는 (적어도 기획 초장기에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었다. SNL의 크루이자 당시 나름 주목받던 코메디 배우인 댄 애크로이드는 '해충 박멸 업체처럼 유령 퇴치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있다면?'이라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고스트버스터즈의 초안을 작성하였다. 본래 이미 자신과 함께 '블루스 브라더스'에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한 파트너이자 절친인 존 벨루시를 주연으로 염두에 두고 만들었으나, 존 벨루시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SNL과 SCTV의 인기 코메디 배우인 빌 머레이와 해롤드 래미스를 영입하여 각본을 수정하였다. 이는 영화에는 장기적으로 호재로 작용하기도 했는데, 새로이 영입한 해롤드 래미스가 댄 애크로이드의 막 나가는(?) 아이디어들을 현실에 맞추어 많이 수정하여 보다 더 좋은 작품으로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외에도 '에일리언' 시리즈의 리플리로 유명한 시고니 위버, 명품 조연배우인 어니 허드슨, 릭 모래니스 등이 출연하여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매력적인 유령 디자인과 분위기에 찰떡궁합인 훌륭한 음악과 잘 짜인 대사, 호러와 코메디의 절묘한 결합으로 영화 '고스트버스터즈'는 영화사에 남을 걸작 코메디로 남게 되었다.
호불호 갈릴 만한 부분: 40년 가까이 된 영화인만큼, 지금 봤을 때 아주 웃기지는 않다. 당시에는 빌 머레이가 숨만 쉬어도 사람들이 웃던 시기임을 어느 정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명장면: 초반에 먹깨비(슬라이머)를 사냥하는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충분히 신나고 설렌다.
가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세워놨더니 진짜보다 일을 잘해서 문제?!
영화 '데이브'는 미국의 대통령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닮은꼴인 다른 이를 허수아비로 앉혀 국정 마비를 일시적으로 해결한다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하는 코메디 드라마 영화이다.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가? 사실 국내에서 흥행했던 2012년의 화제작 '광해, 왕이 된 남자'와 굉장히 비슷한 설정이다. 무려 20년 가까이 앞섰으니 '데이브'란 영화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주인공 데이브 코빅은 대통령 빌 미첼과 거의 쌍둥이 수준으로 닮았다는 설정인데, 본래는 대통령이 여비서와 바람을 피우는 동안 알리바이를 제공하기 위해 기용됐지만, 불륜 중에 빌 미첼이 실제로 뇌사 상태에 빠져 버림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이를 은폐하고자 데이브는 대통령 행세를 하게 된다. 이를 주도한 비서실장은 그를 허수아비로 앉혀놓고 나라를 자기 멋대로 주무르고자 했지만, 문제는 이 '허수아비 가짜 대통령'이 진짜보다 일을 잘하기 시작했다는 데에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노력 끝에 증세 없는 복지, 과감한 고용 정책 등을 추진하는 데에 성공하고 대통령의 주변인들과 국민들의 마음과 지지를 얻어낸다. 비록 30년 전의 작품이지만 지금도 통하는 보편적인 정서에 어필하는 영화이기에 언제든 남녀노소 상관없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웰메이드 코메디 영화이다. 슬픈 것은 이 영화가 나온 지 3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런 정치인이 나오기를 갈망만(?) 하고 있는 것이 전 세계 사람들의 만국공통의 씁쓸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호불호 갈릴 만한 부분: 꽤나 잔잔한 영화이기에 자극적인 코메디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고,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이미 봤다면 많은 부분에서 이미 본 영화를 또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명장면: 장시간의 회의 끝에 증세 없는 복지를 이뤄내는 데에 성공하고 데이브가 진정한 대통령으로 거듭나는 순간은 이 영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귀양살이에 가깝게 깡시골로 파견되었는데 점점 거기에 물들어간다...?
따뜻한 남부로의 파견을 꿈꾸던 우체국장 필립은 자신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눈바람과 맹추위가 몰아치는 최북단 구역 '베르그(슈티)'로 귀양에 가까운 강제 파견에 직면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거의 장례식에 가까운 침울한 파견식 끝에 마주한 시골마을,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의외로 거기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꽤나 즐거움으로 다가오고, 오히려 그는 점점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지기까지 한다는 것이 2008년작 프랑스 코메디 영화 '알로, 슈티'의 설정이다. 별 것 없는 소소한 설정이지만 마치 시골파견을 사형선고에 가깝게 절망적으로 받아들이는 주인공과 주변인들의 극단적인 모습이라든지 초반부에 공포의 무대에 가깝게 그려지는 선입견 가득한 시골마을과 그 사람들의 묘사 등이 코믹하게 펼쳐지며 보는 이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후반부에는 따뜻함과 감동도 있다. 미국이나 한국의 코메디와는 다소 결이 다른 프랑스식의 코메디물이 궁금하다면 가볍게 볼 만한 웰메이드 작품이다.
호불호 갈릴 만한 부분: 프랑스식 코메디 특유의 과장된 묘사에 거부감이 있다면 보기 힘들 수 있다.
명장면: 중후반부에 주인공의 거짓말에 맞춰주기 위해 필립의 아내 앞에서 억지로 야만인 연기를 하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매우 재미있다.
잠복 수사를 위해 가짜로 세운 치킨집이 유명 맛집으로?!
열정은 넘치지만 실적은 제로인 마약단속반의 형사들이 잠복 수사를 위해 위장 창업으로 치킨집을 세운다. 그러나 수사에 포커스를 맞추려던 이들의 의도는 해당 치킨집이 유명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혼선을 빚게 되고, 이들 스스로도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2018년작 영화 '극한직업'의 설정이다. 처음 이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와, 이건 재미있을 수밖에 없겠다'라고 생각했고, 예상했던 대로 꽤 재미있었고 영화는 흥행에도 성공했다. 개인적으로 영화 '극한직업'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부분은,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과 애드립, 당시에 유행하는 개그 트렌드에만 맞추어져 있는 경향이 있었던 한국의 코메디 영화의 흐름을 거부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설정에 무게를 둔 작품이라는 점이다. 몇몇 부분들은 유치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군데군데 과장된 점이 보이며 무리수인 부분들도 있다. 그러나 잘 만든 아이디어 하나가 영화 전체를 끌어가는 힘과 에너지를 부여한다는 것을 보여준, 한국 코메디 영화계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불호 갈릴 만한 부분: 앞선 영화들보다 확실히 웃음의 강도와 빈도는 높지만 그만큼 보는 이에 따라서는 피로도가 높게 느껴질 수도 있다.
명장면: 수사의 흐름에 대해 격렬하게 싸우다가도 전화만 오면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네, 수원 왕갈비 통닭입니다."를 기계적으로 읊는 주인공의 웃픈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잔혹한 납치와 살인 앞에서 당사자들은 희희낙락?!
지독한 승부욕으로 게임에는 늘 진심인 부부 맥스와 애니, 매주 친구들과 즐거운 게임 모임을 갖는 그들 앞에 재수 없는 맥스의 형 브룩스가 나타나 게임의 스케일을 키워보자는 제안을 한다. 매번 형한테 지는 것이 콤플렉스였던 맥스는 이번만큼은 형을 이겨보겠다는 다짐으로 게임에 임하는데, 이번 게임의 테마는 바로 납치와 미스테리이다. 이벤트 회사 직원이 그럴듯하게 꾸미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납치당할 테니 한 번 자신을 찾아서 구출해 보라고 호언장담하는 브룩스, 그러나 절묘한 타이밍 속에 진짜 범죄자들이 집에 난입해서 그를 난폭하게 납치하고 브룩스는 "야, 이거 게임 아니야! 나 좀 구해줘!"라고 절박하게 외쳐보지만 맥스, 애니와 그의 친구들은 "네~납치 잘 당하시구요. 납치범님들, 운전 조심하세요."라는 식으로 장난스럽게 대응하고 모든 것이 이벤트 회사의 기획이라고 착각한 채로 각자의 승부욕을 불태운다는 것이 게임 나이트의 시놉시스이다. 본인과 주변인들의 목숨이 위협받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언밸런스함이 이 영화의 웃음 포인트이다. 이 영화가 빛나는 부분은 호러와 스릴러 영화의 장치인 점프 스케어나 기괴한 음악 등을 패러디 수준이 아닌 진짜 장르영화처럼 정공법으로 밀어붙이기에 그것이 코메디와 큰 간극을 만들어내며 웃음을 유발한다는 데에 있다. 게다가 자동차 추격씬이나 도주 장면 등이 실제로 훌륭한 연출력으로 긴박하게 잘 짜여 있기에 영화 자체가 잘 만들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천연덕스러운 배우들의 연기와 코메디와 스릴러를 적절히 매치한 조합이 돋보이는 웰메이드 작품이다.
호불호 갈릴 만한 부분: 코메디의 장르적 한계인데 아무래도 미국식 개그가 많다 보니 국내 관객에게는 다소 안 맞을 수 있다.
명장면: 정신 나간 주인공들의 이웃이자 경찰인 게리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들에서 배우 제시 플레먼스의 뛰어난 연기와 존재감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