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주치의를 만나고선
주치의라고 하니 참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벌써 3년째 같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있으니, 의사선생님이 참 친근하게 여겨진다. 지금 다니는 병원의 의사는 차분하고 조용한 편이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깔끔한 니트나 남방을 입고 앉아있다. 가운을 입지 않아서 의사를 마주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마음이 무겁지는 않다. 그동안의 나의 일상을 얘기하러 왔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착장이 마음에 들었다. 진료실 책상에는 흰 종이가 놓여 있고, 가끔 흰 종이에 무엇을 적기도 하지만, 대체로 내 얘기에 귀 기울이는 편이다. 그렇게 좋은 사람인 것 같은 의사를 만나 지금까지 진료를 받고 있다. 사실 병원을 내 발로 가지만 받은 질문에만 답을 할 뿐 내 얘기를 하길 매우 꺼리는 측에 속한다. 아마 나라는 환자를 대하는 의사도 참,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진료 초반에는 정적이 흐르기도 하는 진료실에서 민망함을 느낀 적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의사는 나의 주치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 진료를 받은 지 6개월 쯤 될 무렵에는 진료실에서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의사가 이제 편해진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이것저것 마음속 깊은 곳을 헤집다보니, 내 감정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겨우 눈물을 삼키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로 한다. 주치의 역시, 더 이야기 하고 싶지만, 시간 관계상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다음진료로 미루자고 했다. 하지만, 이미 감정의 폭발이 일어난 후라 집에 가는 길에 쏟아지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다. 길바닥에서 통곡을 하고, 자해를 하고 말았다. 다음 날, 병원에 전화를 해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를 하였다. 의사는 병원으로 올 것을 권유했다. 의사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부터는 진료시간을 조금 조정해야겠다고 한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과정 중 가장 힘든 것은 어떤 날은 할 말이 한마디도 없어서 진료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쏟아내야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진료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때의 위기를 넘기고, 라포가 형성된 요즘에는 진료시간이 항상 짧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 병원을 좋아하는 것에는 의사 선생님이 가장 큰 이유지만, 부수적으로는 대기실에 있는 책과 꽃도 있다. 병원에는 서가가 있는데, 그 서가에는 갈 때마다 새로운 책들이 꽂혀있다. 대기실에서의 시간동안 서가에 있는 책들의 제목을 훑으며 오늘은 또 무슨 얘기를 할까 기다린다. 대기실에는 항상 새로운 꽃들이 놓여있다. 그 꽃들을 보면 아주 잠시이지만 슬픈 마음이 가시기도 한다. 대기실에 놓여있는 꽃과 책들 덕분에 병원에 왔다는 긴장을 풀어내고 진료실로 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