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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늘보 Aug 19. 2023

상실의 고통(두 번째 이야기)

이보다 더 불행한 기운이 어디 있을까? 그해... 동생도 아빠를 따라갔다

5월 유난히 아카시아 향이 진하던 그해 복숭아꽃은 무르익었다.

사람들은 우리 집 과수원에 유난히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꽃을 보고

한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좋은 사람이 갔다고 했다.

언젠가 바보온달 책을 읽으며 바보온달장군이 이 세상을 떠나는 날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기억이 났다.


아빠를 상여에 실던 날 힘이 장사여서 관이 잘 들어지질 않았다고

그냥 그런 얘길 들었는데 어쩌 마지막 가는 아빠의 모습을 그렇게 담고 싶은 나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


아빠의 부지런한 흔적은 동네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부지런함만 남기고 모든 것은 남은 가족의 몫이었다.


늦은 저녁 시끌벅적 싸우는 소리가 났다.


동네 아줌마 한분이 우리 논에 비닐을 몰래 가져가서

할아버지가 한소리 했더니 술을 마시며 억울하다고 따지러 왔다.


참고 있던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순간들 이였다.


할머니가 울면서 소리 지르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못된 동네아줌마는 아빠 없는 서러움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우리 가족에게 온갖 모진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우리 가족은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묵직하게 올라오는 그날  감정의 소용돌이는

가슴 한켠을  아프게 한다.


자기  친정 아버지 정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입에 담기 힘든 말을 거침없이 내 뱉고 갔던 사람 ,지금도 난 용서가 안된다.


막말의 끝에도 전혀 꺼림 낌 없이 당당하게 가는 뒷모습과 걸음걸이가 어제 일처럼 선하다.  


감히 우리 할아버지한테 우리 가족한테... 그 뒤로 성인이 돼서 까지도

난 인사도 안 했고 그 아줌마와 상대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했는데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같다.

그 집 삼촌과 우리 막내 삼촌과 친구였는데 살짝 인사만 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은지 늘 고민하면서...

아빠가 없어서 남편이 없어서 막아줄 자식이 없었지만 지금까지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우리 엄마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대  진정한 거인이 아닌가 싶다.

나라를 구하는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꿋꿋이 그 시대를 살아온 분,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신 분,

요즘처럼 힘든 날 엄마를 보며 새삼 숙연해질 때가 있다.


아빠는 증조할아버지 병으로 집안에 재산을 잃어서 힘들 때 태어난 10남매 형제 중 둘째 아들이다.

0인 집에 남의 농사를 지으며 사고가 나기 전까지 넓은 땅도 자기 것으로 사들이고 살림을 일구던 사람이었다.

4시에 일어나 삼양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5시 경운기에 전날 손질한 농산물을 가지고 경매장에 가서 물건을 내려놓고 경매가 마친 뒤 돌아오셨다. 돌아오실 때는

네 명의 딸들을 위해 사각 핑크색 딸기우유를 사 와서 나눠주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도 삼양 라면과 딸기 우유를 보면 아빠가 사무치게 그립다.


그렇게 아빠가 일군 살림의 몫은 엄마가 해야 할 몫이 되었고 넋이 나간 엄마는 자신에 닥친 숙명 앞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끔 엄마에게 묻곤 한다 그때 어떻게 살았냐고?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라고 답한다. 이보다 정확한 답이 어디 있을까?


아빠가 키우던 소를 감당할 사람이 없어서 떠나보내는 날이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던 날 소도 울었다 했다.

작은 송아지가 어느 날 가족이 되어 아빠가 가는 곳마다 함께하며 논을 갈고 밭을 갈면서

우리 집안을 일으켰다.

주인과 닮았다고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했던 소였다.  할아버지께서 자식을 보내고 아픈 마음을 달래며

그 소만큼은 지키고 싶어 하셨지만 여물부터 외양간까지 힘에 부친 할아버지는 소를 떠나보내기로 하셨다.

결국 자식 같은 소를  트럭에 실여 보내는 날 우리 가족은 모두 울었다.

트럭을 타고 가면서 큰 눈망울에 눈물 젖은 모습이 다시금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우리 집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았다.

10마리나... 그런데

그해 1마리 남기고 모두 그날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이보다 더 불행한 기운이 어디 있을까?'

싶던 날 그해 내가 진짜 아끼던 막내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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