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과 공감의 기술, 홍보에서 배웠다1
3일...
그가 퇴사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애초 그를 뽑게 된 건 민간 홍보전문가로 카피라이터를 뽑아보라는
장관님 지시 때문이었다.
모 대행사 출신 카피라이터를 어렵사리 뽑아놓고,
직원들은 부산에서 열린 회의를 맘 편히 다녀왔으리라.
"잘 지냈어? 공무원 생활 적응 좀 됐어?" 라는 인사를
목구멍까지 끌어올리며 문을 열었을텐데.
인사를 받아야 할 그는 사막의 물 한방울처럼 순식간에 증발했고
책상은 재개발이라도 하려는 듯 황량했다.
"00씨, 어디 갔어?"
"그만 뒀는데요"
"뭐?"
그로부터 몇 달 후 그 빈 자리를 채운 건 나였다.
카피라이터를 뽑으라는 지시는 불변이었고,
어쩌다 나는 서류-면접을 수석(?)으로 통과하여 입사했다.
(한명만 뽑으니 당근 수석)
3일 정도 그 자리에 있어보니, 나는 영매라도 된 듯 전임자가 했을 법한 말을
똑같이 지껄이고 있었다. 물론 속으로만.
"신이시여 ~ 어찌 하여 나를 이곳에 떨구셨습니꺄~"
낡고 칙칙한 사무실, 거의 하루 종일 돌아가는 두 대의 복사기,
거기서 뿜어나오는 소음과 분진,
지시와 복종으로 돌아가는 경직된 공무원 문화에
카피라이터와 딱히 상관 없어보이는
낯설고 어려운 업무까지 가세하여 내 숨통에 초크를 걸어왔다.
그 중에서 가장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건 '보고양식'이었다.
민간에서는 내 멋대로 PPT든 워드든 손글씨든 상관 없이 카피문안을 써서
들이대면 됐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양식은 무적권 아래아한글,
이어지는 □○-※의 향연, 딱 정해진 서체와 크기, 줄간격,
공무원 사회에서 통하는 용어들과 공무원 스타일의 문장과 구성까지
넘어야 할 산이 Kill러만자로 급이었다.
그 중에서도 앞줄맞춤은 나를 더욱 실색하게 했다.
어떻게든 보고서를 만들어 대변인님께 보여드리니
문장의 앞줄을 좀 맞춰보라는 지시가 하달된 것이다.
자리로 돌아와 아무리 맞추려 시도해봤지만 삐져나온 코털처럼 삐뚤빼뚤이었다.
지금은 앞줄맞춤을 눈감고도 할 수 있지만,
당시의 내 수준은 그저 엔터키를 눌러 스페이스키로 조정하는 정도의 수준이었으니까.
(이걸로는 앞줄이 안 맞는다.)
물론 누군가 방법을 알려주긴 했는데 워낙 속사포 랩처럼 알려주어
머리에 하나도 남지 않았고 더 묻자니 완전히 나를 무시하면서 짜증낼 거 같았다.
그때는 유튜브도 없었고, 뭘 검색해야 이 문제가 해결될지 검색어조차 생각 안 났다.
죄없는 엔터키만 때리며 머리털이 곤두선 나에게 재보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지방출장 중인 모 사무관님에게 전화를 걸고 말았다. 그것도 밤에.
"여보세요. 사무관님...접니다. 밤 늦게 죄송한데요"
"예, 무슨 일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