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수요일
부검은 누가 결정하는가, 바로 경찰 혹은 검찰이다.
그 두 주체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답하자면 아버지 말씀을 인용하길, '그놈이 그 놈이다.' 아마도 지금 상황과는 별개로, 수사권을 두고 알력 싸움을 하는 두 단체를 비판적으로 꼬집은 말이겠지만, 지금 내 상황에선 둘을 구분 지어야 한다.
방 형사를 주축으로 한 민간 경찰과 군 검찰 두 이해관계를 대립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나 방 형사가 반대를 하는 지금에선 특히.
"허, 갑자기 부검이라니요? 그게 지금 왜 나옵니까"
"대대장님 사망에 수상한 점이 있어서 형사님도 지금 이렇게 수사 중 아니신가요?"
"아니 뭐, 군의관 아무리 그래도 부검이라니... 일이 너무 커지잖아"
정작과장을 설득을 해서 군 검찰을 끌어들여야만 한다.
설득, 그건 정말 어렵지 않다. 설득해야 되는 대상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된다.
정작과장은 일요일부터 지금까지 대대장 사건으로 굉장히 시달렸다. 특히나 대대장의 사후 오물을 다 뒤집어쓴 채로 치우는 와중에 경찰이 들이닥쳐 영장까지 들이밀고 있다.
이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이 악재의 파도가 별 탈 없이 지나가는 것일 터. 그런 그에게 부검의 필요성을 설득하려면, 부검을 통해서 원하는 것이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제가 알기로 마약 사건은 군대 내에서 수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작과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만약 제 가정이 맞다면 대대장님의 사망과 마약 사건이 독립 사건이 아니라 연결돼 있을 수 있습니다"
이어서 어차피 시신이 지금 부대 내에 와 있을 테고, 군대 내에서 마약 여부 확인 등을 수사한 후에 경찰에게 넘겨도 되지 않느냐 하고 설득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말을 너무 길게 하면 사람들은 집중을 잃게 되고, 화자는 절박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럼 설득력도 떨어지고 설득이 아니라 구걸을 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일부러 반응을 기다리자 방 형사가 먼저 끼어든다.
"사건이랑 전혀 관련 없고, 불필요합니다"
이에 논리적으로 바로 반박할 수 있다.
대대장의 사망을 눈앞에서 봤던 내가 의사고, 당시 신체 손상이 부자연스러웠다거나, 부검을 통해서 명확한 사인이나 사건 증거를 찾을 수 있다거나, 마약 검출이 되는지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 필요 없는 말들이다.
내가 설득해야 하는 대상은 정작과장이지 방 형사가 아니니까.
오히려 둘의 의견차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니 굳이 내가 나서서 반박하기보단, 반대하는 방 형사를 보여주며 정작과장에게 더 어필하는 것이 맞다.
"왜 반대하시는 건지 이해가 안 갑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불필요하니까요"
그리 말하며 날 죽일 듯이 쳐다보는 방 형사. 무슨 개수작이냐고 묻는 듯하다.
"부대 수색 영장은 필요한데, 부검은 불필요하다고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갸웃하고 이 사람 이상하지 않냐는 듯 정작과장을 한번 흘깃 봐준 후에 말을 이어준다.
"... 왜죠? 저는 어쨌건 사건에 도움을 드리려고 제안하는 건데, 굳이 거절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불필요한 절차를 밟으면 시간과 인력이 낭비 되니까 그렇죠"
"그럼 부대 수색하면 사건이 그대로 종결되나요?"
당연히 아닐 거다. 부대를 수색 해서 '사람', '물건'을 동시에 찾아내지 못한다면 방 형사는 자신이 원하는 끝을 낼 수가 없다. '물건'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눈앞에서 '사람'이 버젓이 있음에도 못 알아보고 있다. 그러니 나도 자신 있게 뻗대고 있는 거다.
"저 근데 형... 군위관님, 부검이 뭐에요?"
미친놈의 질문에 넌 아직도 안 나갔냐며 정작과장이 호통을 쳤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나만 바라본다. 상황이 자신한테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궁금한 모양.
"시신을 분석해서 사인과 사건에 필요한 단서들을 얻는 방법이야"
대강 설명을 해주고, 마침 있는 김에 미친놈도 이용해 보자는 생각에 첨언한다.
"누가 언제 어떻게 죽였는지를 특히 알기 좋은 방법이라, 마약과 관련돼 있다면 대대장님을 살해한 범인을 특정해서 잡을 수 있겠지"
"아아~"
"뭐 하는 새끼야! 당장 안나가!"
이 정도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결론을 내리겠지. 미친놈은 골똘히 생각하는 와중에 결국 정작과장한테 쫓겨서 내보내졌다. 이제 방에 남은 사람은 셋, 씩씩거리는 정작과장, 날 째려보는 방 형사와 나.
잠깐의 정적 끝에 입을 먼저 연 것은 정작과장이었다.
"뭐, 제 생각엔 군의관의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이네요... 특히 마약이라니 뭐, 이건 군대에서도 엄중히 수사해야 할 사안입니다"
"... 일단 부대 수색부터 먼저 하고 올 테니 그때 가서 이야기해보죠"
"예 뭐, 다녀오시죠"
바로 수색을 하려는 듯 일어나는 방 형사를 보며, 뒤늦게 '물건'의 위치를 아까 좀 옮겨둘걸 하고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제 와서 뭐 어쩌겠는가. 더불어 지금 '물건'이 숨겨져 있는 그 위치보다 더 잘 숨길 자신도 없다.
"군의관님과 할 이야기도 있으니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요?"
"뭐 괜찮은데, 저도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하고 날 쳐다보는 둘. 당연히 지금 내 상황에서 답은 정해져 있다.
"정작과장님과 먼저 상의 후에 결정하겠습니다"
"... 밖에서 기다리고 있죠"
방 형사가 방을 나가자 정작과장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의자에 눕듯이 앉는다. 그 짧은 사이에 몇 년은 늙은 듯 보인다.
"하... 이게 진짜 뭔 경우람"
"고생 많으십니다"
"그래... 군의관도 고생 많아, 뭐 저런 놈이 갑자기 들어와 가지고는"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래서 마약? 부검? 이게 다 뭔 소리야?"
"앞서 말씀드렸듯, 마약 사건은 군 내부에서 수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방 형사의 개입을 방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뭐 그건 좋은데... 그렇다고 아예 생뚱맞게 다 지어낸 건 아닐 거 아냐"
더 이야기해보라는 정작과장의 눈짓에 이어서 서술했다.
"맞습니다. 대대장님이 살해됐을 거라는 방 형사의 의심은 합당합니다"
"뭐?"
"중요한 건 누구에게 인데, 방 형사는 지금 부대 내의 사람들을 의심하고 있고, 저는 마약과 관련된 외부의 누군가로 생각하고 있어서 입장 차이가 발생한 겁니다"
"마약은 뭐, 도대체 왜 갑자기 나온 건데?"
"저도 아직 심증뿐이라... 그래서 부검을 언급한 겁니다. 그러면 명확하게 알 수도 있고, 적어도 부대 외부의 개입은 적어질 테니까요"
내 대답에 끙하고 이마를 짚는다. 늘어만 가는 고민 때문에 앓아눕는 모습이다.
이럴수록 정작과장이 내 설득에 넘어올 걸 알고 있다. 부검을 처음 언급한, 주사위를 던졌던 그 순간부터 이어져온 전능감이 나에게 모든 게 내 뜻대로 흘러갈 거란 속삭임이 그리될 거라고 장담해주고 있다.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게 표정을 주의하며 대답을 기다리자 내가 원하는 답이 나왔다.
"뭐 일단 군의관 말대로 하자고. 군 검찰에는 내가 보고 올리테니까, 저 형사 양반만 어떻게 잘 구슬려서 보내봐"
...
대대장실 밖 복도로 나와도 아무도 없어 부대 건물 정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제부터 쉼 없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눈송이들 때문에 가시거리는 짧았으나, 하늘로 역행하는 담배 연기로 방 형사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내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그를 향해 다가가자 그도 나를 발견했는지, 피던 담배를 발 밑에 던지고는 내게 다가왔다.
"뭐 하는 거야?"
위협적으로 물어보는 방 씨, 그러나 개도 자기 집에서는 한 수 먹어주는 법. 부대 내에서는 내가 쫄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쪽이야말로"
내 말에 이내 하! 하고 웃더니 아예 얼굴을 맞대고 으르렁 거리듯 속삭거린다.
"또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는데, 자꾸 그렇게 니 좆대로 행동하다가 내가 너 잡아 쳐 넣을 수 있어"
"뭘로? 살인? 마약?"
"니 원하는 대로 죄목은 내가 맞춰 줄게"
이번엔 내가 웃을 차례다. 허세도 참, 현실성 있게 해야지. 여전히 날 감싸 안고 있는 전능감에서 비롯된 우월감은 방 씨를 비웃게 해준다.
"그게 되겠니? 법 공부 다시 해야겠는데"
"지금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나 본데... 너가 대대장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다 알고 있는 걸 기억 못 하나 봐?"
"겨우 그게 다야? 내가 대대장을 구조하는 과정에 사소한 문제가 있다 해도 그건 죄에 해당이 안돼... 시험해보고 싶으면 정식으로 체포한 뒤에 내 변호사랑 이야기해보던가"
"사소한 문제? 이 개새끼가 말장난을"
"정식으로 조사를 받게 되면,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겠지만 말이야... 그건 감당되겠어? 너가 대대장이랑 붙어먹고 횡령했던 과거들이랑 이번 마약 유통도 진행해 보려고 애썼던 모든 내용들까지 다 말할 수 있는데"
하! 하고 방 씨가 헛웃음을 내뱉고는 비릿하게 비웃는다. 그 웃음에 얼굴의 주름이 지는 게 인상적이다. 이 반응을 보아하니 전혀 내가 말한 내용이 협박으로 통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는 건 이미 나름의 대비가 되어있다는 건데.
"... 너 겨우 녹음 한 개 믿고 이렇게 까부는 거면"
"자기소개 시간이야? 어제 찾은 대대장 폰에 뭐가 적혀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너야 말로 그거 하나 믿고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지"
말을 두 번이나 끊자 아주 열이 머리끝까지 난 게 보인다. 눈빛으로 사람을 살해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날 죽였으리라. 또 동시에 여유로운 나와 달리 열받은 방 씨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누구의 말이 더 맞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만약 정말 본인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으면 애진작에 날 처리했거나 아니면 지금 나처럼 상대를 비웃고 있었겠지.
"그리고 네가 선수를 쳐놓고 내가 그냥 가만히 당해줄 거라 생각한 건 무슨 심보지?"
대대장 폰을 찾은 걸 내가 지레 짐작해서 언급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건, 일단 나의 가설은 기정 사실이 된다.
그럼 그 내용은 뭐였을까? 이제 슬슬 상대방의 패도 까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한 도발이었다.
사람은 절대 억울한 건 못 참는다. 도발을 하더라도 상대가 억울할 만한 부분을 특정해서 건드린다면 원하는 정보를 유도하기가 쉽다.
"부대 수색 좀 하겠다는데, 마약을 공개해 버려? 제정신이냐"
돌이켜보면, 수색 영장은 자신이 직접 부대 수색도 하고 겸사겸사 나를 감시 및 압박을 하기 위한 용도로 받아온 것일 거다. 만일 날 확정적으로 없앨 수 있었다면 체포영장을 내오던 했겠지.
그런 와중에 갑자기 내가 급발진해서 생각도 안 해본 마약 공개와 부검 카드를 꺼내서 일을 벌인 다음, 대뜸 찾아와서 도발을 하고 있으니 방 씨 입장에선 얼마나 억울할까.
하지만 아직 내가 원하는 정보는 안 나왔으니 이 억울함을 좀 더 긁어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수색을 왜 하는데? 부대 내는 내가, 부대 밖은 너가 맡기로 했는데 이틀 만에 약속 어긴 건 뭐지? 너 머리 안에 종양이라도 자라는 거 아냐?"
"시발! 내가 혼자 온 거 보면 몰라? 일 크게 안 만들려고 한 거 아냐!"
이어지는 방 씨의 설명은 이러했다.
전일 사건 현장 조사에서 대대장의 폰이 발견된 게 맞다. 데이터 복구가 됐고, 그 안에서 대대장이 기록해 둔 다양한 뇌물 횡령 리스트들이 발견됐다고 한다.
아마 대대장 본인이 나중에 잊지 않고 사람들 등쳐먹기 위해서였겠지.
어쨌건 그 리스트 때문에 대대장의 비리와 연루된 사람 중에 악감정을 가진 누군가가 살해를 했다는 가능성이 경찰 내에서 제기됐고, 사건 단서와 용의자 색출을 위해 수색 영장이 발부됐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방 씨는 자신 외의 다른 경찰들이 부대를 들쑤시다가 '일'이 그르쳐질까 염려돼 먼저 왔다고 하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내 생각에 방 씨는 먼저 와서 자신과 연관된 증거가 없는지 확인하고 '물건'이나 '사람'을 미리 치워두려고 했던 거리라.
흠, 근데 생각해 보니 대대장의 폰에서 자신과 관련된 증거는 나오지 않았나 보다. 만약 그랬다면 방 씨도 이렇게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닐 수가 없을 테니까. 아니면...
본인이 증거를 조작해서 본인에 관한 내용을 지웠던가.
이러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는 게, 증거를 한번 조작할 수 있었다면 두 번 세 번도 할 수 있다는 거다. 자신의 이름 대신 날 집어넣는 것도 가능해진다는 뜻. 그럼 방 씨도 날 몰아세울 방도가 아예 없는 건 아니란 뜻도 된다.
"근데 갑자기 너 새끼가 오히려 사건을 크게 벌렸잖아. 이제 뭐 어떡할 건데"
그러게 어떡할까?
사실 이제 답은 정해졌다. 방 씨도 나를 못 믿고 나도 방 씨를 못 믿는다.
더불어 이미 나는 '사람', '물건' 그리고 지금 이 대화까지 포함한 '증거'도 다 준비된 상황이다. 굳이 더 이상 되지도 않는 연극을 하며 방 씨와 협력하는 척을 할 필요가 없다.
"이제 마약이랑 증거 넘기고 사건 마무리 하는 거지"
"? 이제 와서 그게 무슨 개소리야"
"충고 하나 하자면, 지금 발 빼. 적어도 대대장이랑 같이 연루돼서 잡혀가는 건 피할 수 있을 테니까"
더 이상 말로는 제대로 된 대화가 안 되겠다고 판단한 건지 곧바로 멱살을 잡고 손을 들어 올리는 방 씨. 하지만 이전처럼 날 후려갈기진 못하고 망설인다. 그야 여긴 내 부대고,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이 모습을 볼지 모르니까. 그런 방 씨를 마주보고 웃어주며 더 그의 심기를 긁어 줬다.
"어차피 너랑 대대장이랑 엮였다는 증거는 아직 없잖아. 여기서 끝내면 적어도 너도 손해는 아닐 거야"
별 의미 없는 설득인걸 나도 안다. 방 씨는 들은 것 같지도 않다. 그저 계속 멱살만 잡고 날 칠지말지만 계속 고민하는 눈치. 잠시 인상 찌푸려서 주름이 더욱 늘어난 방 씨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월요일 때가 떠올랐다.
그러고빈 내가 갚아줘야 할 빚이 하나 있었지.
난 바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콰직!
이마로 방 씨의 콧대를 박았다. 박치기. 종합격투기에서도 금지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악이자 최강의 공격기술이다.
"억!... 시.. 팔... 놈이?!"
바로 멱살은 풀리고 자신의 얼굴을 양손으로 부여잡는 방 씨. 난 상쾌한 마음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그럼 난 바빠서, 조심히 들어가라고"
뒷걸음질로 잠시 거리를 벌리다가 뒤를 돌아 부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주머니 속 핸드폰 녹음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내리자 보이는 건 내 발치어림.
방 씨가 내다 버린 담배꽁초가 그 짧은 사이 내린 함박눈에 뒤덮여서는, 한줄기 가냘픈 잔연기 만으로 호흡해 가며 그 압박에 천천히 질식하고 있었다.
...
들어와서 가장 먼저 찾은 건 미친놈이었다. 이제 지난 며칠간 정신없던 '일'의 끝이 코앞인 지금, 가장 고민이 되는 대상은 미친놈이다. 마약쟁이에, 군대 내까지 마약을 가지고 온 범죄자지만, 사실 나에게 피해를 준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미친놈이 아니었다면 대대장이 그날 죽지 않았을 수도 있기에 나한텐 고마운 대상이기도 하다. 마냥 신고를 해서 넘기기엔 마음이 이상하다.
운전병 휴게실, 생활관을 둘러봐도 미친놈이 보이지 않자 혹시나 싶어 의무실로 돌아왔더니 무병이 옆에 앉아서 재잘거리고 있는 미친놈이 보였다.
"형님! 군위관님! 군위관 형님! 저랑 얘기 좀 해요"
"어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무병아 오늘은 셔터 내리자, 너도 들어가서 쉬어"
"어...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직 점심시간 전인데"
자신의 루틴이 망가지는 것을 쉽게 못 받아들이는 무병이를 겨우 설득해 내보내고, 똥 마려운 개처럼 끙끙거리는 미친놈을 군의관실로 끌고 들어왔다.
"와 아니 형님!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돼가는 거예요!"
"보면 모르겠니, 너 찾으려고 난리다 지금"
"... 예? 저 찾으려고 온 거라고요?"
정작과장을 설득하고, 방 씨에게 한방 먹인 직후라 그런가 나 자신이 반쯤 붕 떠 있는 기분이다.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을 체감하는 느낌, 굳이 거스르거나 막지 않고 떠들고 싶은 대로 놔두기로 맘을 먹자 입이 저절로 열린다.
"대대장 사망 건을 어떻게든 범죄에 엮어서 부대 내를 수사하려는 거야. 부대 밖에서 널 못 찾았으니까 안에 있다고 확신하는 거지"
"엥? 아니 진짜요? 시발... 그럼 아까 뭐 부검? 그건 왜 하자고 한 거예요?"
"그거 하면 대대장이 왜 죽었는지랑 나와. 그럼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부대 들쑤시는 시간을 줄일 수 있겠지"
정작과장이나 방 씨와 다르게 미친놈을 설득하는 데엔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사실 설득할 필요도 없다. 미친놈 스스로도 자신을 논리적으로 설득해 주기보다는, 그의 형님인 내가 뭘 어떻게 해라 하고 지시를 내려주는 걸 원할 거다.
아니나 다를까 질문에 대답해 준 것조차 제대로 이해를 못 한 모습이라 부연 설명을 해줬다.
"결국 시간 싸움이야. 내가 부검을 해서 그 형사 놈이랑 패거리들이 우리 부대를 못 기웃거리게 하거나 그전에 걔네들이 널 잡아내거나. 알겠니?"
"아 그런 거예요? 그럼 그거 먼저 빨리 하면 되겠네요"
"그런데, 걔네들이 그렇게 쉽게 가만 안 놔두겠지? 계속 방해할 거고 심하면 날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도 있어. 물론 그다음은 너일 거고"
"아 씨... 그럼 전 뭐 어쩌죠?"
"이제부터 우리는 무조건 같이 다니는 거야. 넌 내가 걔네들한테 방해 안 받게 호위하고, 난 걔네로부터 널 숨겨주고, 알겠니?"
잠시 자신에게 부여받은 임무를 골똘히 생각하던 미친놈은 나름의 해석을 통해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니까, 클럽 MD 할 때 부킹녀들 짜바리들한테 안 뺏기게 호위했던 것처럼 하면 되는 거죠?"
서로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는 못했지만 대충 맞겠지 하고 서로 긍정한다.
미친놈은 그답게 앞으로의 전투를 대비해서 자기 군장을 챙겨 오겠다며 떠났다. 이번에도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는 못했지만 더 얘기할 것도 없어 보내줬다.
아무래도 우리는 서로를 평생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거다. 이해를 바랄 필요도 없을 거다. 그러니 죄책감도 가지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찾은 오랜만의 평화이자 적막.
홀로 남게 되자 시점이 다시 1인칭으로, 현실감이 전능감의 부재를 비집고 들어와 자리 잡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점검을 할 때가 된 거다.
방 씨가 부대에 영장을 들고 온 이후부터는 놀람과 위기감, 이어지는 절박함에 도박수를 던졌다.
던진 도박수는 대대장의 마약 사실 공개와 부검. 정작과장을 설득해 군 감찰 측에 보고를 하도록 했고, 방 씨와는 아예 척을 졌다.
미친놈은 겁을 먹었고 나와 붙어 다니게 했다.
그리고 이미 나는 '물건'의 위치와 방 씨와의 대화한 것을 녹음해 둔 증거를 확보해 둔 상태다.
지피지기 중에서 나의 상황은 끝, 그럼 상대방은?
방 씨가 가지고 있는 카드는 아마 대대장의 폰에 담긴 정보들, 그리고 본인이 목격한 대대장 사망 순간 때 나의 행방 증거가 끝일 테다. 그 둘을 이용해 날 살인 사건 용의자로 몰아가는 게 최선일 터.
부검을 통해 대대장의 사망과 나와의 관련성이 없음만을 증명하면 방 씨의 모든 수는 차단되고, 이어서 군 검찰 측에 내가 모아둔 모든 내용을 전달하면 게임은 끝난다.
그럼 여기서 부검 과정을 점검해 보자. 군 검찰 측에서 부검을 지시하게 되면 보통 군의관 중에 부검의가 파견되어 와서 진행한다. 부검의는 갓 전문의를 따고 온, 병리과 전문의일 테니, 일반적인 법의학자보다는 경험해 본 부검 케이스가 굉장히 적을 터. 그러니 부검을 한다 해도 추락의 흔적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는 못할 거다.
안심을 해도 되겠지... 하는 순간이었다.
똑똑똑. 벌컥
"어 군의관, 쉬고 있었나? 형사는 잘 보냈고?"
노크와 동시에 열리는 문, 들어오는 건 정작과장이었다.
"네 정작과장님, 어쩐 일로"
"감찰 신고는 했고, 부검 진행할 수 있도록 군의관을 보내준다는데 뭐, 지금 눈 때문에 양구 들어오는 국도가 아예 막혔나 봐"
순간 꽃피우는 불안감. 아니, 불편함이다. 모든 게 뜻대로 되어가는 듯하다가 사소해 보이는 것 하나가 엇나갈 때의 불편함. 그리고 그 하나 때문에 다른 일들마저 엇나가게 될까 봐 하는 불안감. 규칙적으로 뛰던 심장이 한번 엇박을 탄다.
"그런데 수색 영장 때문에 뭐, 양구 경찰서 측에서는 빠른 시일 내로 와서 부대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하네... 일단 군 감찰에서 수사 나오는 게 우선이라고 미뤄는 봤는데, 영장이 나왔으니 사실 우리도 뭐 할 수 있는 게 마땅치가 않아"
이젠 현기증이다. 모든 게 내 손 안에서 내 맘대로 주무르던 일들이 사실은 다 허상이었다는 듯, 내 착각이었다는 듯 일그러지기 시작하는데, 그 괴리에서 비롯된 현기증.
"그래서 우리 군의관이 직접 부검을 진행하면 안 되냐고 질의를 하니까는, 또 그건 뭐, 안된다고 양구 경찰서는 반대를 하고 있네..."
방 씨가 손을 쓴 거 일수도 있다. 용의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부검을 하게 둬선 안된다고 했을 수도.
그게 아니라고 해도 나와 아예 척진 지금, 방 씨는 어떻게든 나를 먼저 처리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다.이렇게 시간이 지연될수록 그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게 된다.
"당장이라도 올 기센데 군의관은 뭐 좋은 생각 없나?"
시간은 없고 떠오르는 기막힌 방법은 더 이상 없다. 아까의 전능감도, 비현실감도, 붕 뜬 3인칭의 기분도 다 나를 떠났다.
지금 이곳에 있는 건 그저 분수에 맞지 않게 까불다가 일이 커지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애송이 한 명뿐.
목이 마른다. 선택지는 하나다. 답도 정해져 있다. 그렇지만 내뱉고 싶지 않다.
이 선택을 하면 결국 나는 여전히 애새끼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일 테니까. 심지어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최악의 순간일수록 무슨 선택이든 빠르게 결정 내리고, 밀어붙여서라도 해결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아버지에게.
결심하고, 침을 꿀꺽 삼킨 뒤 겨우 입을 제대로 열어 소리를 낸다.
"제가 아는 고명한 법의학자분이 지금 양구에 와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