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수요일
출근을 해서 군의관실 나의 의자에 쓰러지듯 앉자 안도감이 밀려들어온다. 본래도 춥고 낡은 관사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했었지만, 어제는 유독 심했다. 잠에 반쯤 들어 꿈과 현실 사이를 왕복하며 뒤척이다가 새벽에 눈이 떠졌다. 그래서 지금 컨디션은 엉망이다. 당장 해야 될 것 투성인데.
우선, 방 씨가 찾은 대대장의 핸드폰에 담겨있을 정보들을 유추해야 한다. 새벽에 깨자마자 보낸 연락에 2시간 동안 아직도 답장이 없다. '사람'에 관해서 상의해야 될 문제가 있다고 떡밥을 던졌음에도 답이 없는 걸 보니까 뭔가 확실히 있긴 있다 싶다.
최악은 '사람'과 '물건'의 정보가 다 담겨있어서 나의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으로 상정된다. 이 경우 '일'을 진행하는데 나의 필요성은 없어지고,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으니 나는 위험 요인으로만 전락한다.
내가 만약 이 경우의 방 씨라면 나라는 위험요소는 무조건 처리할 거다.
그러면 어떻게? 처리하는 데엔 두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하나는 직접적으로 날 살해하는 것, 쉽지 않은 방법이다. 두 번째는 날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 당장 떠오르는 나의 죄목은 '살인'. 물론 이 방법도 쉽지 않을 거다.
우연히 부상당한 대대장을 발견하고 신고를 즉시 하지 않았단 것만으로는 '살인'에 해당되지 않으니까. 또 내가 신고를 지연했음을 증명하려면 방 씨 본인의 알리바이도 문제가 될 거다.
아니다, 너무 낙관적이다.
방 씨 본인이 양구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임을 잊지 말자, 여기는 그의 나와바리인 셈이다. 내 상식선에선 용납되지 않지만 대대장의 사망에 나를 누명으로 몰아가서 처리할 수도 있다. 이걸 최악으로 상정해야 한다.
이 최악을 견뎌내려면 나도 준비가 필요하다. 상대가 유리한 상황에서 싸워주지 말 것. 아버지가 예전에 이르길 손자병법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럼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의 수는 뭘까.
우우웅
문자다. 방 씨인가?
[97포병대대 장례 안내 문자...]
부대다. 대충 보니 대대장의 장례 날짜가 확정되었나 보다. 유가족이 없었는지 상주는 정작과장이 맡았고 장례도 군 병원 장례식장에서 조촐하게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게 개판으로 살았던 대대장인데 군대라서 그나마 사후에 이렇게 챙김 받는구나 싶다.
그래, 군대라서... 군인이라서... 생각해 보니 나도 군인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군 법이 적용된다는 것인데 어쩌면 이 점이 되려 날 살릴 수도
똑똑똑
...
바로 열리지 않는 문, 무병이다.
"어 들어와"
"네 군의관님, 어... 그, 대대장님 장례식 금일 진행 예정인 거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안 그래도 방금 문자 봤어. 고마워~"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군의관님? 그... 의무물자창고 확인은 앞으로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온갖 일들로 짧아진 내 인내심 탓에 순간 한숨을 내쉴 뻔하다가 겨우 참았다. 언제까지고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의무 물자 창고 점검을 들먹이는 걸까. 답답함과 성가심이 열기를 품고 가슴어림에서부터 머리까지 확 뻗친다. 동시에 이를 표출하지 않기 위해 힘을 꽉 준다.
사실 이렇게 화날 일은 아니다. 단지 그냥 내 상황의 답답함과 불안, 분노를 누군가한테 풀고 싶은 이 순간에 보인 만만한 사람이 의무병일 뿐이다. 이런 가짜 감정과 진짜 감정도 구분하지 못해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니 참는다.
"딱히 누가 나서서 일을 맡을 거 같진 않으니까, 그냥 쉬고 있어. 번거로웠지?"
"아닙니다! 앞으로도 제가 그, 창고 정리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래, 하고 필요하면 내가 확인해 줄게"
"어 그러면 혹시 지금도 가능하십니까?"
하지만 끝까지 참기란 정말 쉽지 않다. 겨우 화를 내지 않고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손으로 눌러 마사지를 하고 나서야 입이 열린다.
"그래... 지금 한번 보자"
"넵 알겠습니다!"
하고 나가는 무병이. 원래 뭘 생각하고 있었는지 어떤 계획이었는지는, 금방 떠오른 계획들이 으레 그러하듯 벌써 휘발되어 날아가버렸다.
차라리 무병이의 이유모를 저 집착을 빨리 해결해 주고 나 홀로 다시 곰곰이 상황을 점검한다면 더 좋은 계획이 나올 수도 있겠지.
무병이의 안내를 받아 방을 나와 진료실의 입구 바로 옆에 아무도 왕래하고 싶지 않을 것 같은 몰골의 문 앞에 선다. 팻말조차 붙어있지 않고, 나도 1년 반 동안 한 번도 들여다볼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곳, 의무 물자 창고다.
녹슨 문고리의 열쇠 구멍에 그만큼 녹슨 열쇠를 끼어 맞춰 낑낑거리기를 몇 번, 분투 끝에 겨우 끼익 하고 문이 열리자 안에서 먼지와 함께 곰팡이 냄새가 후욱하고 쏟아져 나온다. 이게 정리를 꾸준히 해온 거라고?
기침을 몇 번 하고 있자 무병이가 손전등을 킨다.
"여기 설마 불도 안 들어오니?"
"어... 그렇습니다. 전등이 없습니다"
아주 가지가지한다... 고 생각하자마자 무병이가 손전등을 나에게 건네주고 본인은 나가는 게 아닌가
"그럼 그,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군의관님"
하고 문을 닫는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무병이가 방 씨의 사주를 받은 건가, 사실 흑막은 쟤였나 하고 닫힌 문고리를 돌리자 바로 열린다.
아 그냥 확인하는 과정은 자기 일 아니니까 나에게 맡기고 간 거구나. 역시 무병이는 언제고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문을 조금 열어두어 최소한의 빛과 환기를 확보하고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며 3평 남짓한 창고를 둘러본다. 최소 10년은 넘게 방치된 듯 보이는 비품들 투성이다. 거진 모든 물건들 다 먼지에 쌓여있는데 뭘 정리하고 점검을 맡았단 걸까...
물건들은 도대체 일반 대대급에 왜 있는지 모르겠는 무영등, 이런 게 있긴 있었구나 싶은 살균소독기 등을 헤치고 안쪽 끝까지 오자 의자와 쓰레기통, 작은 책상이 놓여있다.
먼지가 덜 쌓여있는 걸로 보아 최근까지 누군가가 앉았던 것 같다. 책상 위엔 이젠 정겨운 담배, 더 원 임팩트와 웬 노트북이 올려져 있다. 보아하니, 대대장이 생전에 혼자 시간을 보내던 공간이었나 보다.
호기심에 노트북을 켜보았지만 비밀번호가 걸려있어 현재로선 확인이 불가능하다. 예상되는 번호들도 입력해 봤지만 잠길 뿐이다.
"여기서 굳이 뭘 했던 거야"
말없이 숨만 쉬고 있으니 역겨운 냄새와 먼지들에 질식할 것 같아서 숨을 뱉기 위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좀 더 뒤져보자, 책상 밑 서랍을 발견해 당겨 열어본다. 스마트워치, 핸드폰들, 휴대용 게임기 등이 잔뜩 담겨있다.
아 여기가 대대장이 병사들 밀반입한 물건들 뺏어서 뒀던 공간이었구나.
문득 어제 하루동안 떠올랐던 위화감이 다시금 지나간다. 나도, 군수과도, 대대장 대리를 하고 있는 정작과장도 모르는 의무 물자 창고 확인 과제. 대대장이 자주 다니던 곳이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들락날락거리지 않는 의무실 창고. 그 안에 꾸려 놓은 자기만의 비밀 공간.
여기다.
서랍과 책상을 좀 더 뒤져보다가 찾는 게 없어서 재빠르게 손전등을 창고 이곳저곳을 비추며 '물건'을 찾는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이젠 손마저 떨린다. 머릿속에서도 비상이다.
'과연 여기에 있을까? 어떤 모양일까? 어느 정도의 크기지?'
하지만 손전등 빛만의 시야로는 무언갈 특정해서 찾기에 너무 좁다. 손전등을 잠시 책상에 올려두고 노트북 화면이라도 켜둔 후에 내 핸드폰을 꺼내 손전등까지 켜도 부족해, 서랍에 있던 폰들을 하나씩 다 켜서 조금이라도 광자의 수를 늘려본다.
아주 조금 밝아진 창고 안을 다시금 자세히 둘러본다.
이곳에 있을 가능성은 굉장히 높다. 모양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미친놈의 말에 따르면 프로틴 파우더 안에 넣어 반입했다고 하니 아마도 포장이 되어 있을 거다. 크기도 크진 않을 거다. 마약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몇 백 그람도 안되지 않을까. 그럼 내 손 크기보다 크진 않을 거다.
"내가 대대장이라면..."
더러운 사람. 무식하고, 무례하며 몰상식한 사람이다. 어디에 숨겼을까 생각해 보니 아마도 더러운 곳일 거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똥을 더러워서 피하기 마련이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곳을 찾아서 기어들어가기 마련이니까. 근데 창고 전체가 더러운 상황이다.
여기서 어떻게 더...?
손전등에 순간 책상 옆의 쓰레기통이 보인다. 아마 재떨이 겸 휴지통으로 사용했을 법한 오물이 묻어있는 쓰레기통. 바로 뚜껑을 집어던지고 안의 뭔지 모를 불쾌한 쓰레기들을 숨 막고 치우며 안을 탐색하자 어떤 비닐포장지로 감싼 네모난 물체가 손에 걸린다.
다시 손전등을 물체에 직격으로 쏴보니 명확하게 보인다. 다른 물건들과는 다르게 먼지 한 톨 없이 놓여있는 포장되고 테이프로 가로세로 압축된 물체, 최근에 둔 것이 분명하다. 크기는 핸드폰 한 개 크기에 포장은 슈톨렌 빵이라도 담은 것처럼 비닐로 꼼꼼하고 촘촘하게 감싸져 있지만 반투명한 비닐의 특성상 안의 흰색 가루 내용물들이 빛에 비춰 보인다.
이거다. 뜯어서 확인해 봐? 아니다. 괜한 위험 부담을 내가 안을 필요는 없다.
일단은 다시 원래 위치에 돌려놓는다. 이제 '사람'과 '물건'을 찾았으니 우선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밖으로 나와 군의관실로 돌아가려는데 무병이가 눈에 밟힌다. 여전히 맹하게 컴퓨터 화면만을 보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내심 혹시나 했던 의심이 사라진다. 우리 무병이는 역시 아무것도 모를 거다. 단순히 대대장 노예로서 명령받은 업무만 반복적으로 해왔던 거겠지.
"물자 창고 정리 잘해놨네"
"어, 그렇습니까?"
"보니까 앞으로 분기에 한 번만 하면 되겠더라"
"넵 알겠습니다"
전혀 미련 없어 보이는 무병이를 뒤로 하고 군의관실로 들어간다. 문을 이번엔 아예 잠그고 자리에 앉아 생각을 정리한다.
'사람'은 미친놈, 찾았다. '물건'도 의무 물자 창고에, 찾았다. 이제 나의 선택지는 두 개다.
정말 방 씨와 협력해서 '일'을 같이 하는 것, 최악의 선택, 그리고 '사람', '물건'을 신고해 버려서 여기서 다 끝내버리는 것, 최선의 선택.
하지만 최선의 선택에도 문제가 있다. 바로 신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신고를 하면, 양구 경찰서에서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될 것이고 그럼 방 씨에게 적발될 확률은 굉장히 높다. 그럼 다시 아까의 고민처럼 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에 부대 대대장이 사망했는데, 그 신고자이자 최종 목격자가 군의관인데, 며칠 뒤 신고된 마약의 위치가 의무 물자 창고면 솔직히 나였어도 군의관부터 잡아들이고 보겠다.
그러니 내가 해야 되는 것은 이 마약을 양구 경찰서가 아닌 다른 관할에서 맡게 해야 된다. 그리고 그 방법을 아까 떠올렸었는데...
다시 핸드폰을 꺼내 문자 내역을 확인한다. 무언가가 기억이 잘 안 날 때는 그때의 상황을 재현하는 게 최선이라고 아버지가 가르쳐줬던게 생각난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늘 의존하는 내 자신이 싫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군인, 그래. 내가 군인이라는 신분을 이용해야 한다. 군 경찰/감찰에게 신고를 해서 일을 끝낸다. 그럼 방 씨는 날 어찌하지 못하고 마약은 날라간다.
가급적 방 씨도 같이 날려보내면 좋겠는데... 이거는 일단 마약 그 위험 요인부터 처리를 하고 나서 생각해보자. 그럼 그냥 인터넷으로 신고를 할까? 아니다. 빠르게 일을 처리해야 내가 더 안전하다.
마음을 먹은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군의관실과 여전히 맹한 무병이와 의무실을 뒤로한 채 복도로 나와 정작과장을 찾아 나섰다.
...
똑똑똑
"정작과장님, 군의관입니다"
"... 어,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선 대대장실. 평소였으면 군의관, 뭐 때문에 왔어하고 날 반겨줬을 정작과장은 다른 손님 때문에 바빠 보인다. 그리고 그 손님의 정체는 몇 번 보지 않았음에도 상당히 낯이 익다. 방 씨. 아니, 방 형사.
방 형사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나만 보이게 씩 웃어 보인다. 마치 반갑다는 뉘앙스. 하지만 난 전혀 반갑지가 않다. 영어 표현 중에 '나비가 배 안에 있다'라는 은유적 표현이 있다. 지금이 딱 그런 기분이다. 속이 철렁 내려앉고, 그 여파로 다른 장기들이 마치 나비처럼 둥둥 떠다니는 이 긴장감과 이 숨막히는 압박감.
"어 군의관 방 형사님은 알지? 뭐, 잠깐만 기다려줘"
"마저 이야기해도 될까요?"
"예 뭐, 그러십시오"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서요. 부대 내도 조사를 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이렇게 오게 됐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뭐 때문인지를 알려주셔야 저희도 협조를 하지요. 대뜸 찾아오셔서는, 뭐 수상한 거 있나 없나 안 그래도 정신없는 부대를 들쑤신다는 게 참"
찾은 대대장의 폰, 거기에 뭐가 담겨있었길래 방 형사가 이렇게 부대까지 찾아오게 된 걸까. '사람'과 '물건'의 정보? 그건 방 형사 본인도 연루되어 있어서 이렇게 대놓고 활동하기엔 부담스러울 텐데. 더군다나 수사권이 민간 경찰에 있지 않을 터다.
수사권. 이 점에 대해 좀 더 기억나는 것을 떠올려보자면, 몇몇 중범죄는 민간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부대 내를 수사할 수가 있다. 성범죄랑 입대 전 범죄 그리고... 살인.
"이유를 말씀드리면 부대가 더... 소란스러워질 텐데요"
"거 참 사람 답답하게 잘하시네, 뭐 협박이라고 하는 겁니까?"
"아뇨 그보단"
하고 방 형사는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정작과장에게 건네준다. 건네받은 종이에 써져 있는 내용을 보자마자 표정이 굳는 정작과장. 눈을 깜빡이며 제대로 읽었나 몇 번을 확인한 뒤 책상에 고이 내려놓는다.
적혀있는 제목은 [압수 수색 영장]
"하하 형사님 뭐, 마실 거라도 좀... 여기 커피 좀 타와라"
고개만 까딱이는 방 형사를 보고 정작과장이 크게 외치자 대대장실과 연결돼 있는 운전병실에 병사가 넵! 하고 대답한다. 그런 와중에 방 형사는 아직까지 굳은 채 서서 수색 영장의 내용을 훑어보려는 나를 보고 입을 연다.
"군의관님도 여기 앉으시죠, 마침 여쭤볼게 더 있었는데"
"... 네"
"우선 일요일에 산책하시다가 우연히 사건 현장을 보셨다고 했죠?"
"네"
"집에서 나온 시간이 언제입니까?"
수색 영장의 내용은 대강 살인의 가능성이 대두되었고, 조사를 더 진행할 필요성이 있어 용의자 색출을 위해 부대를 수색할 권한을 주겠다는 것.
어젯밤부터 방금까지 내내 걱정했던 대로다. 날 살인죄로 엮어서 처리하려는 것, 이게 방 씨의 노림수다.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대비하려고 했건만, 방 씨가 조금 더 빨랐다.
물론 그냥 당해줄 생각은 없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정작과장이 재빠르게 끼어든다.
"아이 형사님, 군의관이 뭐 했다고 이러십니까. 순둥하고 말 잘 듣고 해서 대대장님도 얼마나 아꼈는데요"
"다 절차라서요, 그래서 언제인가요 군의관님"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해도 그것만으로는 살인죄를 성립시킬 수 없다. 하지만 대대장의 폰에 담긴 정보를 내가 모르니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수는 없다. 정보의 비대칭이란 이렇게 불합리한 거다.
정보의 비대칭...
"저녁 7시쯤이었습니다"
"7시요? 시간을 입증할만한 게 있을까요?"
"관사 입구에 cctv가 있어서 아마 거기에 나오는 시간이 찍혔을 겁니다"
"... 아 그런가요?"
방 형사는 잠시 고개를 갸웃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나온 시간이 그보다 훨씬 일찍이라는 걸 방 형사는 안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이 들통날 증거를 직접 제시한다는 게 의심스러운 모양.
그런 와중에 정작과장은 앞에서 내 칭찬과 잘 알지도 모르는 내 일과 루틴을 둘러대며 원래 그 시간에 자주 산책을 다녔네 어쩌네부터 대대장이 생전에 원래 자주 넘어졌다는 둥 아무 말을 내뱉고 있다. 날 어떻게든 감싸주려는 의리에 감동을 받진 않는다.
왜냐면 관사에 달린 cctv는 녹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걸 나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짓말이다. 물론 확인하면 금세 아무것도 녹화된 게 없음을 알게 되고, 나의 알리바이가 증명되지 않겠지만 일단 지금 당장의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 그거면 된다. 그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고 지금 이 불리함만 넘어가면 되는데
"커피 나왔습니다"
하고 커피 한 잔만 띡 책상에 내려놓는 운전병 아니, 미친놈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의 등장에 나 혼자 속으로 화들짝 놀란다. 생각해 보니, 수송부가 아니라 부대 본 건물에 대기하는 운전병은 amb운전병과 대대장 직속 운전병 둘 뿐이라 서로 휴가나 자리가 비워질 때 업무를 커버해 준다. 근데 그게 하필이면 지금이라니...
혹시 방 형사가 의도한 바인가 싶어 흘낏 보니, 다행히 방 형사는 미친놈에겐 전혀 관심 없는지 받은 커피만 한 모금 홀짝이고 있다.
애타는 속을 감추고 미친놈을 쳐다보자, 얘도 나 못지않게 지금 굉장히 긴장한 기색이다. 상황 파악은 전혀 못했겠지만 일단 경찰, 얘 입장에서는 짭새가 뜬 격이니 불안할 만도 하다.
일단 방 씨가 '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는 건 알겠다. 그럼 어제 대대장의 폰에서 얻은 정보는 뭐였을까. '물건'에 대한 정보? 왜 이 시점에서부터 나를 처리를 하려는 걸까. 본인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혹시 뭐 때문에 그러시는지 뭐, 제가 알 수 있을까요?"
"그것까진 모르셔도 됩니다"
하고 나에게 여유롭게 웃어 보이는 방 형사. 본인의 안위는 전혀 걱정 안하는 눈치다. 그 뜻은 뭘로 날 어떻게 하든 본인의 안위가 보장된다는 것. 대대장의 폰을 찾았단 가정 하에 생각해보면, 그 안에 내용 중에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들은 다 이미 처리를 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에 대한 불리한 증거는 맘껏 조작해놨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난 지금 뭘 어떻게 해야 될까?
"cctv는 이따 확인해 보면 될 일이고, 과장님? 저는 이제 부대 안을 좀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하 형사님... 뭐 다 좋지만, 지금 대대장님 장례식도 진행해야 하고, 부대 분위기도 뒤숭숭한데 뭐, 꼭 지금이어야겠습니까?"
"금방 끝날테니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지금 상황에서 부탁을 드릴 필요 없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 형사님 뭐 그리 급하십니까"
"... 과장님 아까부터 자꾸 왜 이러시죠? 일 하려는 사람 붙잡고 불편하게"
누가 봐도 갑의 입장에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의 말뽄새에 정작과장이 열받는 게 느껴진다.
"하... 씨,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 뭐라고요?"
"야 운전병, 너 커피 내가 뭐, 한 잔 콕 집어서 타오라고 했어?"
"예? 저요?"
하지만 역시나 갑을 관계가 명확한 지금 상황에서 분노의 방향을 애꿎은 미친놈에게 돌리는 거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 너 뭐, 일 똑바로 안 해? 누가 손님 왔는데 한 잔만 뭐, 틱 놔둬! 그리고 일 끝났으면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 임무 수행 해야지! 너 뭐 해 인마!"
"아니 왜 갑자기 저한테 지... 러세요!"
"음, 저는 그럼 이만"
이등병을 상대로 드잡이질을 하려는 정작과장과 미친놈 호칭답게 순순히 안 당해주는 미친놈, 그리고 날 쳐다보고 따라 나오라는 손짓 한 번과 일어나는 방 형사. 그리고 개판 오 분 전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행동을 결정한 나.
지금은 당장 행동해야 할 때다. 도박수를 던진다.
"안 그래도 형사님과 정작과장님께 요청드리고자 싶었던 점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정작과장, 방 형사, 미친놈의 시선이 집중된다.
"지난 며칠간 대대장님의 사망에 관해서 의사로서 되짚어 봤을 때 확실히 의아했던 점들이 있었습니다"
심호흡을 한번 마지막으로 들이쉬고
"대대장님이 어쩌면 생전에 마약을 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선수를 친다. 방 형사는 마시던 커피에 사레가 들렸는지 뱉을 뻔하다가 겨우 컥컥 거리는 데서 멈추고, 미친놈은 날 미친놈 쳐다보듯이 보며 덜덜 떨고, 정작과장은 그게 뭔 소리인지 엥 하는 눈치다.
"마침 형사님께서도 대대장님 사망에 관해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있다고 하시니, 의사로서 정식으로 수사 과정에 도움이 되고자, 부검을 요청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