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목요일
사실 부검 진행에 있어서 아버지의 협조를 구하는 게 난관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아버지는 늘 나에게 법의학의 진로를 하라고 유도한 사람 아니던가. 오랜 시간 공들여 세뇌한 대상인 내가, 직접 찾아와서 부검을 해달라고 부탁하면 응당 수락할 것이라 기대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아버지와 관련되면 늘 내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징크스는 오늘도 깨지지 않나 보다.
"왜 안 해주시겠다는 건가요?"
"질문이 잘 못 됐잖니"
겨우 한숨을 내뱉는 걸 참았다. 이미 허파 안에 잔뜩 빨려 들어온 숨은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천천히 흘러나가게만 둔다. 다행히 아직도 흠뻑 내리고 있는 눈들 덕에 내 입김은 크게 티 나지 않았다.
동면산 인근의 사건 현장.
전날에 부검이 결정된 이후, 전화로 상황을 대강 얼버무리고 부검을 요청드리자 오늘날 소환한 곳이 여기였다. 사건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부검을 해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헐레벌떡 왔건만, 아버지는 지난 몇 십분 간 동안 무릎 위까지 쌓인 눈을 해치며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이제야 날 사건 현장으로 불러낸 것이 승낙의 의사가 아니었음을 깨달아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 아버지의 말에 나의 말을 고르고 골라서 입을 열었다.
"왜 해야 하는지가 불명확한 건가요?"
"그렇지, 그게 먼저란다. 법의학자가 부검을 왜 하는지조차 모르고 하면 그게 의미가 있는 일이겠니"
그러니까 나의 무턱대고 한 제안은 아버지의 직업적 견해에는 맞지 않다는 말 되겠다. 법의학자에다가 대학 교수인 아버지를 잠시 과소평가했다. 학생이 교수에게 발표를 하듯 체계적으로 준비라도 해올걸 그랬나. 지금 어딜 가서 준비라도 해올 시간은 부족하니 어떻게든 머릿속으로 정리한 내용을 복기하며 보고한다.
"사건은 3일 전이고, 앞에 보이는 산 절벽 밑에 발견된 시신입니다. 추락사를 가장 의심하는 상황인데, 추락이 외인에 의한 것인지와 사망자가 마약 등의 약물을 복용해서인지가 관건이라 부검을 의뢰드리게 됐습니다"
나도 부검을 몇 차례 참관하면서 어깨너머 주워 들었던 경찰관들의 보고양식을 따라 해 말씀드렸다. 옆에서 바라보았을 때 여전히 변함없는 미소만 희미하게 있고 내 쪽은 쳐다보고 있지도 않다. 아버지 특유의 무표정. 부족하다는 뜻이다.
"... 보시면 아시겠지만, 현장은 기상 상황으로 인해 보존이 되지 못했고, 따로 발견된 증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전한 침묵.
"원래라면 군 내 사건이다 보니 군의관이 파견을 와서 검시와 부검을 진행할 텐데 지금 아시다시피 눈이 너무 내려서 양구와 춘천 사이 길이 통제되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어서요. 저 혼자서라도 할까 했는데, 마침 아버지도 계시니까..."
"그전에"
하고 말을 끊는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싶어 빤히 바라보자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본다.
"시신은 직접 확인해 봤니?"
"네, 전신을 다 탈의한 상태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당시 현장에서 노출된 부위들에 대해서는 평가한 바 있습니다"
"그래, 어땠니?"
"외인에 의한 손상 사라면 추락의 흔적과 외인의 손상흔이 구분되는지를 봐야 될 것이고, 유추되는 사망시각과..."
드디어 기회인가 싶어서 주절주절 내가 아는 법의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읊고 있자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아버지는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바라본다.
이것도 정답이 아닌가? 뭘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걸까.
우우웅!
계속해서 말을 끊기지 않게 노력하며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내 폰이 울린다. 확인해 보니 정작과장.
여전히 무관심해 보이는 아버지께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는다.
[군의관, 지금 전화 돼?]
"아 예 됩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어어 그 뭐, 형사 있잖아. 어제 돌아갔던]
네 하고 대답하고 다음 말을 기다리며 맘을 졸인다. 왜 중요한 사실을 전달할 때, 이 사람들은 두괄식이 아니라 주어를 먼저 꼭 언급을 해야만 할까.
[다른 경찰들이랑 같이 와서 이제 뭐, 부대 수색을 하겠다고 하네. 영장도 있겠다... 막을 명분이 없으니 뭐, 알겠다고는 했는데, 일단 알고 있으라고 연락했어]
"네 감사합니다"
[엉 시신도 군 병원에 보내놨으니까 뭐든 서두르라고. 우리도 괜히 뭐, 트집 안 잡히게 있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제 말씀드렸던 것 말입니다..."
[아 그것도 다 군 검찰에 보고는 올렸으니까. 뭐, 걱정 말고]
"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의무병이 보고하도록 지시해 놨습니다"
[어어 뭐, 알겠어. 나도 이제 좀... 야! 뭐 해!]
뚝! 하고 전화가 끊어진 화면을 잠시간 본다. 정작과장에게 어제 마약이 부대 내에 숨겨져 있다면 예상 가는 위치들을 추려서 보고했고, 의무병을 통해 감시해 두도록 지시도 해놨다. 방 씨가 먼저 찾지만 않는다면 문제는 없을 터다.
이제 내 심정을 곱씹어본다. 시간에 쫓기고 있고, 아버지만 설득하면 되는데, 아버지는 이유도 말해주지 않은 채 명쾌한 거절도 수락도 하지 않는 애매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사방이 뻥 뚫린 눈 밭에서 역설적으로 내가 느끼는 건, 압박감에서 비롯된 답답함. 상황에 대한 폐쇄공포로 인한 갑갑함이었다.
더는 못 참겠어서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설득하고자 절박한 마음에 외치듯 말했다.
"아버지"
"왜 그러니?"
"아들로서 부탁드립니다... 제발 부검을 맡아주세요"
이제야 몸을 돌려 날 온몸으로 바라본다. 홀로 눈이 내리지 않는 공간에라도 서있듯, 아버지의 검은 정장 위 두꺼운 검은 코트에는 흰 눈이 쌓인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날 보는 눈빛도 시야를 훼방 놓는 눈송이들을 뚫고 오직 나만을 집중하는 듯하다.
"부탁이 맞니?"
대뜸 나온 질문. 문득 떠오른 과거의 아버지의 수업. 청유와 명령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 주던 그 모습이 지금과 겹쳐 보인다. 명령은 아무리 어투와 자세 등으로 포장을 해도 지시자와 피지시자가 구분된다고 했던가. 그럼 내가 했던 것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군요"
"그렇지. 정말 아들의 부탁이었으면 내가 거절할 이유가 있겠니"
하고 자애롭게 웃어준다. 난 오히려 그 모습에 마음과 정신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갑갑함, 쫓기는 불안감, 압박감 등 그 모든 감정들은 다 부차적인 요인들로 중요성 면에서 후순위로 밀린다.
그러니까, 청유가 아닌 명령이었던 점이 걸려서 내가 알아서 고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기다렸던 건가. 어이가 없으면서도 참 한결같고 대단하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야 그럴 것이, 어떤 상황에서든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도록 하는 것. 아버지에게 배웠던 모든 내용들은 이 명제를 위한 수업들이었다.
그런 수업을 평생 동안 받아왔기에, 방 씨가 아무리 날고 기어서 부대 전체를 수색하고 증거를 조작하고 해서 날 체포해 어딘가에 잡아두더라도 난 어떻게든 길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날 제 뜻대로 유도하고 흔들 수 있는 건 눈앞의 이 사람, 아버지뿐이다.
뒤늦게 늑대 피하려다가 호랑이 만난다라는 속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아버지가 날 잡아먹을 호랑이일까? 모든 진실을 고해도 과연 나의 편을 들어줄까?
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치우며 어색하게 웃으며 아버지께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한다.
"하하, 그럼 저도 같이 부검에 참여해도 될까요?"
"그러자꾸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던데 딱 내 상황이랑 맞지 않니? 하하"
내 입장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같은 상황에 다른 속담을 떠올리는 건 동상이몽이 아닐까. 뭐든 당장의 문제는 해결이 됐다.
이제 다시 시간 싸움이다. 남은 건 병원에 가서 부검을 진행하고, 대대장의 타살 혐의 없음을 밝히는 것뿐이다.
여전히 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 양구의 어두컴컴한 대낮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
올려다본 부대는 3층짜리 단일 건물로 되어 있다. 방 씨와 같이 온 경찰관의 숫자는 도합 열명,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둔 채로 수색하기는 쉽지 않은 여건이다. 그런 만큼 수색 팀을 꾸리는 데까지 시간이 생각보다 더 소요됐다.
원래라면 어제 발부되는 즉시 혼자 오는 게 아니라 팀이 바로 출동하는 거였는데... 맘이 급해 혼자라도 와서 뭐라도 해보려다가 되려 당했다.
잠시 방 씨는 아직도 아려오는 인중가를 문지르며 이를 갈았다.
"각 층 별로 3명씩 붙고, 방 형사는 여기 잘 안다고 했지? 알아서 확인하고 지원 필요하면 불러"
팀장의 명령에 따라 수색팀이 나눠 흩어진다.
고인이 된 대대장의 폰을 포렌식 한 결과 발부된 수색 영장은, 대대장 살해에 사용된 범행 도구를 비롯한 추가 증거 물품들을 찾기 위한 것이다.
이는 명확하지 않아도 된다. 적당히 그럴싸한 것들을 찾기만 해도 나머지는 스토리를 쓰기 나름이다. 그리고 그런 물건들은 다른 경찰관들이 알아서 잘 찾아낼 것이다.
양구에서는 드문 큰 사건이니만큼 좋은 기회니까.
하지만 방 씨는 이제부터 그는 다른 경찰관들과 여기 부대원들의 눈을 피해 찾아야 되는 물건이 있다. 그 목적을 위해 다른 경찰관들이 다 건물 안을 들어가기를 기다리던 그는, 모두가 다 들어갔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도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발걸음은 남들과 다르게 1층의 한 구석을 목표로 향해 가고 있었다.
목적지는 의무실, 그 안의 의무 물자 창고라는 곳.
자신이 가장 먼저 보자마자 바로 지워버린, 대대장의 폰에 일기 형식으로 잘 적혀 있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방 씨는 1층 복도 끝, 의무실로 적혀 있는 입구를 찾았고, 문을 열었다.
...
문을 열자 보이는 건 몇십 년은 사용 안 했을 것 같은 구식 수술실 베드와 사람은커녕 고양이도 올라가면 망가질 것만 같은 원형 철제 의자 하나뿐이었다.
사실 군 병원에서 부검을 진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그걸 위한 시설 준비가 되어있을 거란 기대조차 품는 게 어리석은 것이긴 하다. 오히려 부검을 할 수 있는 자투리 공간이라도 있는 게 어딘가 싶었다.
이건 간절한 내 입장이었고, 아버지의 입장은 또 다를 수가 있다.
30년을 넘는 평생 동안 법의학 외길을 걸으며 자신만의 시설, 인력 등의 인프라를 전부 갖추며 부검을 해왔을 텐데 이런 누추한 곳에서 일을 맡기자니 눈치가 보인다.
다행히 너무 이른 걱정이었나 보다, 아버지는 귀하게도 흥겨워하며 휘파람을 부르는 게 아닌가.
"옛날 생각나네. 내가 법의학 처음 할 때만 해도 나무판자나 박스 깔고 일하곤 했었는데"
나의 첫 부검을 이런 환경에서 하는 게 오히려 전통성 있어 보이고 좋다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다.
아무래도 좋다. 나 홀로 머릿속에서 방 씨와의 경주를 펼치고 있었기에 내 진로 선택은 현재로선 정말이지 아무래도 좋다.
방 씨는 '물건'의 위치를 모르는 기색이었다. 경찰서의 인력을 투입해서 부대 건물을 다 뒤져봐도 적어도 몇 시간은 걸릴 터. 관건은 부검도 평균적으로 몇 시간씩 걸린다는 건데, 대대장의 사인이야 외부 흔적들만 봐도 저명하니까 서두르기만 한다면...
"와 씨... 무거라, 형... 구뉘관님 이거 어따 둘까요?"
상념을 깨트린건 환자 이송용 베드를 병원 의무병과 밀고 들어온 미친놈이었다. 시신을 들고 나르는 것도 아니라 이송용 베드를 미는 것뿐인데도 무겁다고 투덜거리는 게 참 한결같다. 수술실 베드 옆에 붙여두라 하고, 괜히 미친놈이 아버지의 관심을 끌지 않았나 살폈지만 다행히 추억에 젖어있어서인지 듣지 못한 눈치다.
"하나 둘 셋 하면 옮기는 거야 자, 하나... 둘... 셋!"
쿵!
내가 시신 밑에 깔린 모포를 당기고, 의무병과 미친놈이 어깨와 다리 부분을 각각 달라붙어 들어 끙끙거리며 겨우 수술실 베드로 옮겨 시신을 준비시키자마자 미친놈은 시체랑 같이 있는 이 방을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나한테 애걸한다.
"더 시킬 일 없죠?? 그럼 저 이제 밖에 있을까요?"
"어, 밖에서 아무도 못 들어오게 잘 지켜야 돼 알지?"
"아 물론이죠! 이제 총도 있는데, 아무도 못 오죠"
하고는 메던 총을 들어 여기저기 겨냥하고 빵야빵야 발사하는 시늉을 하자, 병원 의무병이 기겁하며 미친놈을 끌고 나간다. 당연하면서도 다행인 이야기지만 실탄은 없다. 언제 부대가 수색될지도 모르고, 총기함도 수색하겠다고 할까 봐 정작과장이 미리 힘써서 총기만 반출해 둔 것뿐이지 실탄을 소지한 채 부대 밖으로 내보내주진 않았다.
"내 폰 간수 잘하고, 혹시 부대에서 전화 오면 받은 후에 꼭 나한테 전달해야 해"
"네에~"
다 떠나고 수술실에 나와 아버지만 남게 되자, 아버지가 다가왔다.
"둘이서만 부검을 하는 건 처음이네"
처음은 아니다. 어머니를 부검했을 때에도 우리 둘 뿐이었다. 이걸 아버지가 잊을 리가 없으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야만 이해를 할 수가 있다.
"... 제가 주도로 하는 건가요?"
"그렇지, 아무래도 나보단 군의관 선생님이 사건도 더 잘 알 텐데"
하고 껄껄 웃는다. 확실히 이 상황을 즐기는 게 보인다.
시신이 눈 앞에 있고, 곧 그 시신을 해부를 해야 되는 상황임에도 즐거워하는 모습이 퍽이나 부담스럽다.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땐 늘 진중하고 장난기 하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둘이서만 있으면 진면목이 나오는 게 나에게는 거북하다.
이 감정은 어머니의 부검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때에도 아버지는 사랑했던 배우자의 죽음에 슬퍼하기보단, 아들과 단 둘이서 부검을 처음으로 한다는 것에 즐거워했었다.
거북함, 거부감, 거리감 등 다양한 단어들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감정과는 별개로 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도 빠른 시간 내에.
대강 하하 마주 웃어넘긴 후에 병원 측에서 빌려온 수술용 도구들을 세팅하고 있자, 아버지는 잠시 별다른 반응 없는 날 보고 정말 주의 깊게 보지 않는 이상 티 안 날 정도로 갸웃한다. 아차 싶어 재빠르게 먼저 입을 연다.
"아버지, 그럼 시작할까요?"
"그러자, 브리핑 먼저"
브리핑, 흔히 수술실에서 수술을 시작할 때 환자 확인 목적으로 시행하는 절차다. 보통 부검의 경우엔 브리핑을 할 필요가 없는데, 이는 수사기관 측에서 부검을 의뢰하며 필요한 정보를 미리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부검만큼은 평소와는 다르다. 장소도, 사람도, 의뢰 과정도 모두 급하게 진행된 만큼 미흡점을 보완하고자 브리핑을 요청한 것이리라.
"네. 부검 시작하겠습니다. 52세 남성으로 3일 전 인근 산 절벽 아래에서 부상당한 채 발견된 후 cpr 시행하며 병원에 내원했으나 DOA로 판단돼 중단, 사망 선고된 분입니다. 수사 혐의점은 타살의 여부를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초 목격자는..."
어떻게 이야기할까 어제부터 고민했었다. 둘 중 하나, 진실이냐 거짓이냐. 결정은 내리고 왔다.
"최초 목격자는 부대 군의관, 저입니다"
거짓은, 완벽하게 속일 수 있을 때에만 사용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안 하는 것이 좋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브리핑에 아버지의 반응은 전무했다.
"당시 상황은?"
"등산복 착용 중이었고, 의식불명 상태였으며 airway 확인 불가했고, 호흡 맥박 없었습니다. Lt. tibia open fx 확인했습니다. cpr은 즉시 시행했었고, 구급차 이송 과정 중에서도 진행했었습니다"
짧다면 짧은 나의 브리핑이 끝나자 이미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음을 느꼈다.
불안감, 무엇에 대해? 아마도 잘못을 저지른 뒤 아버지에게 걸려 혼나는 것만 같은 이 상황에 대해서 불안한 것이다. 이성보다는 내재된 감정과 경험들로부터 비롯된 불안감이다 보니 어떻게 가라앉힐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심호흡을 하고 싶단 욕구가 올라왔지만, 그러면 티가 날 거다. 그저 내 땀이 안보이길, 목소리가 떨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타살 혐의점은?"
아버지가 시신에서 눈을 떼 나에게 붙이며 물었다. 타살 혐의점이라...
...
없다.
방 씨는 군의관의 치밀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진료실에는 정말 아무런 흔적조차 없다. 개인 물품마저도 하나쯤은 있을 법하거늘, 오직 진료에 필요할 법한 의료 물자들만이 조촐하게 있을 뿐이었다.
분명 2년 가까이 이곳에서 지냈다고 들었는데, 마치 아예 들린 적 없는 것처럼 혹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처럼 자신의 그 어떤 자취도 남기지 않아 놨다.
이럴 수가 있나? 싶었지만 지난 며칠간 그놈의 정신 나간 아가리질을 생각해 보면 또 납득이 간다. 애초에 정상인이 아니니 이 꼴로 살고, 이 지경까지 상황을 몰고 왔겠지. 나름 형사로서의 직감이, 군의관 놈은 이번 일과 엮이지 않았더라도 정상적으로 살진 못했을 놈이라고 외친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군의관실이나 의무실에 트집 잡을 것 뭐 하나 없더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자신의 주목적은 의무 물자 창고니까. 사실 처음부터 의무 물자 창고를 뒤집어엎어놔야 했지만, 잠겨 있었기에 순서에서 밀렸다.
손잡이라도 부수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어리바리해 보이는 의무병이란 놈이 자신이 열쇠를 가지고 오겠다며 성가시게 굴고 있어 그럴 수 없었다. 소란을 피워봐야 방 씨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 그런데 아직도 왜 못 여는 거죠?"
"어... 그... 잠시만요, 이게 워낙 많아서요..."
의무병이란 놈은 도대체 어디에 열어야 되는 문이 그렇게도 많은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많은 열쇠들이 뭉쳐있는 꾸러미를 들고 나타났다. 하나하나 열쇠를 맞추고 돌리고 열리는지를 확인하고 있는데, 몇 분은 더 걸릴 것 같다.
지금이라도 의무병을 치우고 손잡이를 박살내고 안에 들어가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자, 의무병이 잠시 멈칫하더니 방 씨를 돌아본다.
"저... 근데 죄송한데요, 옆에서 보고 계시니까 좀 긴장돼서 그러는데 혹시 안에서 기다려주실 수는 없을까요?"
방 씨는 이제 손잡이 대신 눈앞의 의무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는데, 그 순간 머뭇거리던 의무병이 열쇠 꾸러미를 놓쳤다.
챙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온 바닥에 흩뿌려지는 열쇠들. 으아아 하며 오히려 방 씨를 원망에 찬 눈으로 째려보는 의무병. 인내심의 한계를 맞은 방 씨.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나오세요"
"어... 제가 해드려야 하는데"
"더 이상 이렇게 시간 지연시키면, 공무 집행 방해로 취급하겠습니다. 나오세요"
잔뜩 겁먹은 의무병을 밖으로 쫓아내고, 의무실 근처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방 씨는 권총을 꺼내 들었다. 권총을 양손으로 꽉 쥔 그는 문의 손잡이를 내리쳤다.
...
쾅!
하고 지휘통제실로 들어온 의무병은 곧바로 날아올 욕지거리들을 대비했지만, 워낙 안이 소란스러웠던 터라 아무도 자신이 문을 박차듯이 들어온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직 경찰들이 수사하기 전인지 부대원들은 간부 병사 구분 없이 바쁘게 움직이며 서류나 개인 물품 등을 정리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의무병은 평소보다 세배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혼잡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에 공황이 찾아올 지경이었지만, 겨우 자신이 찾아야 될 사람을 식별할 수 있었다.
"쓸데없는 것들은 다 치우라고! 뭐, 반입금지 품목들 오늘만큼은 책 잡지 않을 테니까! 외부 인원한테 식별되기 전에 알아서 뭐, 다 치우라는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뭐든 간에 혼자서 판단하지 마! 다 물어보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해! 뭐 이건 어떡하지? 싶은 것들 다 물어보고 지시에만 따르라고!"
"저... 정작과장님!"
"그리고! 자신들의 개인화기! 절대 잃어버리지 않게 주의하도록 하고! 뭐, 만약에라도 외부 인원들 있는데 분실한다 하면 그게 더 큰일이니까! 주의하도록 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정작과장니임!!"
겨우 인파를 뚫고 정작과장의 인근까지 도착했지만 그는 주위에서 쏟아지는 질문들을 쳐내고, 자신의 지시를 외치는 데 바빠 의무병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사방을 돌아보며 외치고 있는 정작과장의 주의를 돌려보려고 의무병은 양손을 정작과장 앞에서 흔들며 계속해서 불러 잠시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뭐야 의무병, 왜?"
"의무 물자 창고에 어떤 형사님이 무단으로 침입하려고 합니다! 군의관님한테 알려야 합니다!"
의무병이 급히 보고한 내용 중에 정작과장의 분산된 주의를 끈 것은 오직 한 단어뿐이었다. 창고.
"창고! 탄약 창고! 탄약반장은 애들 모아서 탄약 창고에 있는 뭐, 물자들도 다 관리 감독 하도록 해! 탄 한 개라도 분실되면 마찬가지로 엄중하게 처벌할 거라고 말하고!"
"과장님, 탄약반 애들 다 생활관에서 경찰 협조 중인데 어떡합니까?"
"아니 뭐, 내가 일일이 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해? 뭐, 초등학생이야? 이런 건 뭐, 좀 알아서 인원 모아서 가라고!"
겨우 전달한 자신의 보고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가 버리자 의무병은 다시 정작과장에게 애원해 보려던 차였다.
"너, 의무병. 당장 할 거 없지. 나랑 탄약 창고로 가자"
"어...? 아니 탄약반장님 저는..."
의무병이 상황 설명을 기다려주지 않는 탄약 반장은 그를 끌고 탄약 창고로 갈 뿐이었다. 의무병은 저항 한번 없이 끌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