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목요일
...
나는 고민했다. 아버지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그리고 이후의 일어날 전개에 대해서.
대답이 지연됨에 따라 발생한 침묵은 수술실 공기만큼이나 차가웠다. 문득 내 시선에 대대장의 노출된 뇌와 벗겨진 얼굴 가죽, 그리고 그 아래의 목이 보였다. 직접 촉진하여 확인하지 않는 이상 육안으로는 그 안의 손상 판별이 불가능하다.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라 살면서 마주하는 많은 상황들도 피차일반이다. 직접 닥친 그 순간들을 감각하고, 겪어보는 당사자가 되지 못한다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결론들만 겉으로 보고 그 안에 있던 속사정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해야 되는 것은 아버지가 내 입장이 되어 내 행동들에 대해 공감해 주길 바라고, 그의 자비에 모든 것을 맡기며 털어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내가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어떤 선택이 가장 이상적으로 보이는지와 어떻게 하면 내가 바라는 전개를 아버지도 바라게 할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럼 아버지의 현재 심리는 무엇일까, 시선을 들어 아버지와 눈을 맞췄다.
아들이 살인자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든 채 날 바라보는 저 눈 안쪽엔 어떤 생각들이 자리하고 있을까.
"... 혈관 손상이 명확하지 않다면 과다 출혈사로 보기 어렵습니다"
대답은 없다. 계속해보라는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그냥 말을 이어가기로 했다.
"뇌출혈의 정도나 두개골 및 두피 등의 상처가 크지 않으니 사인으로 삼기엔 부족합니다"
"추락하며 부딪힌 손상들로 인한 즉사도 아닐 근거들로 피부의 멍들이나 내부 장기의 염증 반응들이 있습니다"
"저체온사는 배제 진단이니 아직 그리 확정 짓기엔 이릅니다"
말을 쉼 없이 쏟아내고 보니 아버지가 들고 있는 폐조직이 눈에 띄었다. 아까 저걸 눌렀을 때 지방덩어리가 유출된다면 심장압박 당시에 대대장의 생존을 확신할 수 있다고 했던가. 그럼 그냥 눌러서 보여주면 되지 왜 나에게 먼저 물었던 것일까.
생각이 거기까지 연장되자 아버지의 심상에 대해 도박수를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남은 것은 둘, 과한 심장 압박으로 인한 심장 파열로 인한 사망이거나 혹은 다 배제되고 저체온사뿐이겠네요"
이번엔 내가 눌러보시지요 하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과연 그게 맞냐는 듯 고개를 약간 갸웃하고는 작은 한숨과 함께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내 요구에 응했다.
그리고 눌린 폐 조직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음성. 아버지는 심지어 시선을 나에게 그대로 둔 채 단면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누른다고 해서 육안으로 관찰되는 지방 덩어리가 나오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단다. 알고 있었니?"
"몰랐지만 그럴 거 같더라고요"
"그래, 보통은 지방 덩어리도 굉장히 작게 나오기 때문에 현미경으로 봐서 확인을 한단다. 알고 생각해 보면 참 당연하고 쉬운 내용인데 모르고 생각하면 놓치기 쉽지"
함정에 당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궁지를 탈출한 것에 대한 칭찬이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아직 끝은 아니니까. 아버지가 내릴 결론을 기다리고 있는데, 닫혀있는 출입구 문이 벌컥 하고 갑작스레 열렸고 우리 둘의 시선은 그쪽으로 돌아갔다.
"다 동작 그만! 손 들어!"
등장한 것은 권총을 들고 성난 채 성큼성큼 들어온 방 씨와 그 뒤를 따라 헐레벌떡 들어온 미친놈이다.
아, 결국 이 경주에서 내가 늦었고 졌나 보다. 끝이구나. 이 생각을 하니 자연스레 몸에 긴장도, 힘도 빠진다. 탈력감이 그 부재를 대신한다. 이제 체포되어 공허하고 무료한, 무자극의 삶을 살게 되겠구나 체념하고 쓰린 패배를 받아들이려는데 이어진 방 씨의 말을 듣고 나도 당황하고 말았다.
"군의관! 널 마약 소지법 위반으로 긴급 체포한다!"
"... 마약 소지법 위반? 그게 무슨..."
개소리야는 겨우 참을 수 있었다.
부대를 수색해서 마약을 결국 찾아내었나? 근데 그럼 본인 혼자 몰래 챙기고 나는 살인이나 다른 죄목으로 잡아넣는 게 본인한테 이로울 텐데? 아니면 깔끔하게 자신의 계획을 전부 접고, 나 하나만 잡아 족치겠다는 각오로 이러는 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오랜만에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으니 방 씨가 총구를 내게 겨누며 다가왔다.
"당장 엎드려"
"아니, 적어도 무슨 상황인지는 설명을 해줘야 될..."
퍽!
하고 눈앞이 점멸한다. 다음 보이는 것은 차가운 수술실의 바닥. 턱이 부서질 듯 아프고 머릿속이 웅웅 거리며 시야가 제자리를 찾지 못해 흔들리는 걸로 보아 총구로 턱을 가격 당해 쓰러졌나 보다.
방 씨 이 개자식, 기어코 복수를 하는구나.
"수사관님, 미란다 원칙은 고지하셔야지요"
강제로 엎어진 나의 몸을 압박하며 팔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우려는 방 씨를 제지한 것은 아버지였다. 자세 때문에 보이진 않았지만 근처까지 다가와 방 씨를 말리려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였다.
"아니! 시발 경찰이 시민을 패도 돼?!"
"넌 뭐야! 이 개새끼가 너 이거 공무 집행 방해야!"
"어어, 짭새가 사람 잡는다!!"
잠시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이어지나 싶더니 쿵! 하고 내 바로 옆에 엎어뜨려진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미친놈이었다. 누구도 들어오지 말게 하라는 내 명령을 지키진 못했지만 어떻게든 뒷수습을 위해 따라 들어왔다가 같이 봉변을 당한 모양이다. 미친놈의 기절한 몸이 내 시야의 절반을 가렸다.
날 경호하라는 명목으로 데리고 온 것이지만 애당초 기대는 없었다. 본 목적은 그저 방 씨로부터 미친놈을 떼어두고 내 시야 안에 두려는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방 씨가 오고 있다거나 쳐들어 왔을 때 소란이라도 피워서 알림의 역할이라도 해낼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기대가 컸나 보다.
"더 이상의 과잉 진압은 멈춰주시고 절차대로 진행하십시오"
"넌!"
"교수님이라고 부르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 교수님은 누구십니까?"
미친놈과 다르게 인상이나 언행이 범상치 않았는지 방 씨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아니면 부검의 흔적들이 수술복 곳곳에 튀어있는 사람이, 두개골이 열린 시체와 그 시신 안에 자리하던 조각난 장기들 옆에 서서 이야기하니 당황한 것일 수도 있겠다.
"보시다시피 부검 중에 있던 법의학자입니다"
"... 신분증이나 신원을 증명할 수단을 제시해 주십시오"
"제가 그럴 의무는 없습니다"
"지금 저는 마약 소지범을 체포하는 과정입니다. 협조하지 않으시면, 공무 집행 방해나 본인도 마약 사범 공범으로 수사 대상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방 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버지가 하하하 하고 웃는다. 그 보기 드문 광경을 보기 위해 엎어진 상태로 고개를 돌리려고 노력하는데, 미친놈이 엎어지면서 떨어트린 총기가 눈에 들어온다.
"방금 발언은 협박 및 직권 남용에 해당하겠습니다. 또, 부검도 엄연한 공무 집행 과정에 해당되므로 본인이 공무 집행을 방해하고 있음을 경고드립니다. 특히 긴급체포라고 말씀하셨는데, 도주 우려가 없어 보이는 용의자를 그렇게 과격한 방식으로 긴급 체포 한다는 것도 의문스럽네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되로 받은 방 씨는 고민 중일 것이다. 저 교수님을 자신의 형사 지위로 치울 수는 없음은 깨달았을 터, 무력으로 제압해도 되는지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지 등등.
나 또한 고민 중이었다. 아직 수갑을 채우진 못 했기에 잠깐이라도 방 씨를 뿌리칠 수만 있다면 저 총을 잡아서...
철컥!
"... 업무 중에 방해한 건 죄송했습니다. 원체 꼼수가 많은 놈이고, 급한 사건이라 그랬습니다"
수갑이 채어졌다. 그리고 등에서 느껴지는 사람 무게의 압박감에 이성과 제정신을 되찾았다. 뿌리치고 총을 잡아서 뭐? 형사와 육탄전이라도 벌일 셈이었나?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들에 의해 나도 모르게 아드레날린의 지배를 받았나 보다. 흥분, 가장 피해야 하는 신경의 활성화다. 흥분하면 당연한 것들을 놓치게 된다. 깨달음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지난 며칠간 나는 흥분 상태가 아니었던가. 내가 놓쳤던 것들이 얼마나 많이 또 뭐가 있었을까.
늦게나마 미란다 원칙을 외는 방 씨의 말을 한 귀로 흘러들으며 전의 일들을 짚으며 앞으로에 대해 생각하던 때였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군의관은 오늘 저와 하루 종일 같이 있었는데, 마약이나 다른 불법적인 물건을 소지하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는 와중에도요"
"그건 이제부터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아뇨, 긴급체포를 하신 거 아닌가요? 긴급 체포가 성립되려면 적어도 용의자가 당장 마약을 소지하고 있거나, 숨기고 있음이 확실할 때 하셔야죠"
"군의관님!! 큰일 났습니다! 방 형사가 의무 창고 뒤져보고는 지금 여기로 쳐들어오고 있습...어...어!!! 우욱!"
뒤늦게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뒤따라 어벙한 무병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뒤에 시신을 봤는지 헛구역질하는 소리도. 그제야 지금의 상황 파악이 반쯤 됐다.
방 씨가 부대 수색을 마치고 나서 날 찾아온 것이다.
아, 대대장의 폰에서 자신이 물건들을 어디에 숨겨뒀었는지 기록돼 있었나. 그걸 통해 이미 물건의 위치를 확신하고 있었기에 수색을 감행했고, 그렇게 마약을 찾고 나서 그걸로 자신이 독점하고 이용할게 아니라 나를 잡아넣기로 결정한 건가.
그렇게 해봤자 본인이 얻는 이득이라고는 없을 텐데, 그저 내가 손해를 감수할 정도로 싫어서 이런 일을 했다기엔 납득이 여전히 안된다. 무언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분명히 있다.
"부대를 다녀오신 건가 보군요, 언급했던 마약은 그곳에 있었던가요?"
"제가 답할 의무는 없습니다만"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우욱! 헉, 헉! 자꾸 군의관님이 가지고 있다면서 무작정 여기로 왔습니다!"
무병이의 탄로에 작은 한숨과 함께 방 씨의 욕설이 귓가에서 들렸다. 아까 의무창고를 수색했다고 했는데, 아무것도 못 찾고 나를 찾아왔다고?
잠시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곧바로 뒤이어 방 씨가 나에게 속삭였다.
"다 닥치게 하고, 너랑 나 둘이서만 이야기하자"
상황은 둘 중 하나다.
마약을 찾았고, 그걸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들고 나에게 왔다. 혹은 마약을 찾지 못했고, 나에게 왔다. 전자의 경우엔 납득이 가는 이유를 못 찾겠다. 후자의 경우라면 납득은 간다. 분명 있어야 할 곳에 없으니, 내가 가지고 갔다는 가정으로 찾아온 것이리라.
물론 어느 쪽이건 내 답은 똑같다.
"싫은데? 내가 왜"
"이 새끼가 진짜..."
속삭이듯 대답한 나의 말에 방 씨의 조용한 욕설이 귓등에 들린다. 표정도 상상된다. 주름진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 채 이를 갈고 있겠지.
"형사님! 전 마약을 소지한 적도, 소지하지도 않았습니다. 무슨 오해를 하고 절 체포하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무고한 사람 잡지 말아 주십시오!"
"닥쳐 좀"
하고 무언가를 찾기 위해 내 몸을 옷 위로 더듬는다. 수술복 차림이었기에 금세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는지 손은 곧 갈 곳을 잃고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는군요 형사님, 뭐 찾은 것도 없다면 이제 그만 제 아들을 놓아주시겠습니까"
"아들?"
하고 날 누르는 압박감의 무게중심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아마 아버지의 말에 놀라 그와 나를 돌아보며 방금 말의 진위성을 판별하고 있나 보다. 그 덕에 몸을 약간 들어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릴 수 있었고, 이제야 수술실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수술실 베드를 가운데에 두고 방 씨와 대치 중인 아버지, 그 옆엔 무병이가 겨우 시취와 부검의 환경에 적응을 했는지 단독 군장 차림을 한 채 힘겨워하며 서있었다.
날 깔아뭉갠 방 씨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고개는 나에게가 아니라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기 위함인지 돌아가 있었다. 무언가 생각하는지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고 다시 방 씨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된 거구만"
"... 형사님, 계속 그렇게 강제로 억류하고 계시면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겠습니다"
"너도 닥쳐"
하고 총구를 아버지께 겨눈다. 그에 내가 경악해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어쩐지 뭔 부검 같은 소리를 꺼낸다 싶더니,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거다 이거지"
"형사님... 지금 상황에 대해서 정말 잘 해명해야 하실 겁니다"
"너야말로"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권총이 장전되는 소리가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울려 퍼졌다. 아버지도 더 이상은 입을 열지 않고 한걸음 뒤로 물러설 뿐이었다. 무병이도 뒤늦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는지 자신의 총구를 방 씨에게 겨눠야 하는지 당황하다가 그냥 몸으로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어어... 왜 이러십니까, 그... 그러지 마십시오"
"병사, 당장 그 사람 포박하도록 마약사범 공범이다"
용기 내서 나선 무병이는 이어지는 방 씨의 명령에 고장 나버렸다. 누구 말을 따라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 방 씨도 그 모습을 보고 무병이의 협조는 빠르게 포기한 후, 나에게서 떨어져서 아버지에게 다가가 여분의 수갑을 꺼내더니 나처럼 구속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절대 네가 다 틀렸으니까 사고 그만 치는 게 좋을걸"
나의 협박 어린 조언도
"... 이번 일은 각오하셔야 될 겁니다"
아버지의 선언도
"하여간 아들이나 아버지나"
확신에 찬 방 씨의 귀에는 그저 헛소리나 허풍으로만 들렸나 보다.
그는 아버지도 내 옆에다가 몰아두고 무릎을 꿇린 채 수술실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서랍 하나하나를 열어보며 확인했다. 그럼에도 보이는 것이 없자 대대장의 열린 복강과 흉강을 총으로 헤짚으며 확인했고, 무병이는 그 광경에 다시 헛구역질을 하며 덜덜 떨었다. 나도 몸을 벌레처럼 꿈틀거려 겨우 무릎으로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옆을 보니 아버지가 평온하게 앉아있음을 발견했다. 일견 지루해 보이는 듯한 인상.
방 씨는 결국 수색을 빈 손으로 끝내고 대대장의 시신이 눕혀져 있는 베드에 걸터앉아 입을 열었다.
"마약을 어디에 숨겼지?"
"그러니까, 내가 안 숨겼다니까"
"대대장의 폰에는 자기가 누구로부터 무엇을 언제 받았고, 어디에 어떻게 숨겼는지도 다 기록했어"
침묵을 고수한다. 나도 아버지처럼 평온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몸의 흥분을, 긴장을 의도적으로 보내주고 그토록 질리던 권태와 무료함을 억지로 되돌린다. 방 씨가 말을 다시 이어갔다.
"마약은 의무물자 창고 쓰레기통에, 다른 휴지들에 가려서 숨겨놨다고 적혀있었지. 그걸 네가 몰랐을 리가 없어"
내가 답을 안 하자 수술실은 금세 차가운 침묵 속에 빠졌다. 차가운 물이 끼얹어진 듯한 느낌. 세상이 1인칭을 벗어나 3인칭으로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미친놈은 아직도 기절해 있고, 무병이는 아직도 고장난 채 혼자 덜덜 떨고 있으며 나와 아버지는 방 씨의 말만을 기다렸다.
떠들수록 정보를 더 흘릴 테고, 그만큼 나의 선택이 더 합리적이게 될 거니까.
"근데 찾아보니 그곳엔 없었고, 이 사실을 알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 상황은 뻔하지, 내가 네 개수작에 한두 번 놀아난 줄 아나?"
이제 상황은 후자로 확정되었다. 수색을 했음에도 못 찾아서 날 찾아왔다. 거짓말일 가능성은 없다. 방 씨가 거짓을 해서 이득을 보는 상황이 아니니까.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나도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른다는 거다.
분명 나는 마약을 쓰레기통에 그대로 뒀다. 굳이 내가 손댔음을 남기고 싶지 않았고, 그보다 더 좋은 선택지도 한정된 시간에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럼 나도, 방 씨도 아닌 사전 정보를 알고 있는 제삼자가 손을 댔다는 것인데. 조력자가 있었나? 그걸 내가 놓친 것인가? 실수에 대해 몸이 먼저 반응하려고 든다. 수치심, 모멸감.
아니다, 안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뭘 놓쳤는지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하나하나 검토하고 밝혀내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는 거다. 상대는 지금 내가 모든 것을 알고 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인의 형사라는 지위의 강점을 내세워 도박을 한 거다.
이 상황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뜬금없이 부검을 하겠다고 한 것부터 자기 아버지를 법의학자로 섭외해 둔 것까지. 아주 준비를 철저히 해두셨네 그래"
아버지까지 내가 미리 준비해 둔 한 수인 줄 착각하고 있다. 나를 고평가 하고 있다는 증거.
이 점을 이용하기 위해 애써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하고 검토하고 있는데 과열된 내 머리를 식히는 차가운 쇳덩어리가 이마에 느껴졌다.
총구. 고개는 가만히 둔 채 시선을 위로 들어 방 씨를 보았다. 그는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또 머리 굴리지. 내가 그동안 생각을 해봤는데 어차피 일은 글러먹은 것 같단 말이야. 관심이 너무 집중됐어. 너 때문에"
"... 난 정말 네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내 이득은 챙겨야겠지, 마약 사범을 체포한 업적 하나는 말이야"
거짓이다. 중간에 끼어든 말에 개의치 않고 이어가는 것, 거짓말의 하나의 특성 중 하나다. 거짓말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방해를 받더라도 준비된 자신의 레퍼토리를 그대로 끝까지 읊어야 된다는 강박.
"내가 말 안 하면 넌 절대 못 찾을 텐데?"
"알아내는 데엔 다양한 방법이 있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를 판단하려고 방 씨에게 캐물으려 하는데 옆에서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미 가지고 온 거네. 무슨 자신감인가 했더니만"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진 말의 파문에 방 씨에게서 일순간의 당황을 보았고, 찰나에 모든 상황이 그려졌다.
방 씨는 지금 마약을 가지고 있다. 쓰레기통에서 찾은 것이든, 따로 확보해 둔 물량이든 그 마약은 일을 진행할 수도 있는 물건이자 나와 아버지를 마약 사범으로 만들 수 있는 무기다.
그런데 굳이 물건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여기까지 와서 나와 아버지까지 억류하는 무기로 사용했다. 이런 초강수를 둔 점을 생각해 보면, 나에게 확실히 원하는 점이 있다.
나에게 원할 것은 뻔하다. 마약의 위치와 공급책인 사람.
그래, 아까 부대에서 마약을 못 찾았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군. 따로 마약을 확보해 둔 게 있었던 거였어.
또, 돕는 사람도 있었던 게 맞았다.
애써 찾은 권태와 무료함으로 포장된 마음의 평온이 한 번에 깨질 뻔했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러면 내가 너무 멍청하고 한심해 보이잖아. 이런 수치심이,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을 견디기가 어려웠지만, 직시해야 한다. 내가 놓쳤던 것.
부검을 이곳에서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마약을 따로 챙겨줄 수 있는 조력자. 굳이 나에게 단 한 번도 공급책이 누군지 묻지 않았던 이유.
미친놈.
3월 15일 일요일 오후7시
마지막 화를 연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