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일요일
12월 6일 일요일, 생일이었던 이 날에 정확히 오후 5시 30분이었다. 달리면서 초겨울의 어렴풋한 차가움이 달리는 내 양 볼을 쓰다듬는 게 느꼈다.
오후 4시 10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었다. 경로는 관사를 나와 길을 건너면 나오는 논밭길. 크게 한 바퀴를 돌면 15.6km로 80분을 맞춰 뛰면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기분이 좋은 속도로 잠깐의 행복을 만끽하고 퇴근시간에 딱 맞게 끝낼 수 있었다.
1년 하고 반을 넘는 시간 동안 반복해 왔던 그 달리기 코스로, 생일이었던 그날도 그대로 따랐다. 달리기가 끝나가며 멀리서부터 보이던 관사의 형체가 점점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고, 귀에 꽂은 에어팟에선 50분짜리 랜덤 플레이리스트의 마지막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하루는 어땠나요? 오늘 날씨만큼 흐렸나요?]
센치한 가을 감성과 해가 짧아지며 생긴 약간의 우울한 초겨울 감성 사이의 노래와 후- 후- 하고 규칙적으로 나오는 내 숨소리.
무슨 생각이었을까, 충동적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관사가 아니라 관사 옆쪽의 작은 동네 야산으로. 이 순간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수백 수천번을 고민했음에도 결론짓지 못하고 그저 상념에 그쳤던 하나의 행동을 하기까지. 이번 주 내내 내리던 눈은 녹지 않고 두꺼운 장애물이 되어 내 앞길을 방해했지만 내 속도를 늦추되 멈추지 않고 앞서나갔다.
[... 수없이 해봤어요 노력이라는 걸 말예요]
처음 가보는 길이기에 약간 헤맸다. 분명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을 텐데 하얀 장애물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원했던 목적지의 정반대 편에 도착했었나 보다. 뒷산의 절벽이 날 마주 보고 있었다.
동네 뒷산이고 해발 고도라는 단위를 사용하기도 부끄러울 수준의 낮은 산이었지만, 강원도의 산답게 굉장히 험하고 뾰족한 외형이다. 저런 곳에서 떨어지면 같은 높이의 아파트보단 훨씬 위험할 것 같았다.
하지만 비장한 각오로 달려온 기세가 무색하게 잘 못 도착한 걸 깨닫자 김이 팍 새 버렸다. 마침 3분의 짧은 노래도 끝에 이미 다다르고 있었고, 그만큼 나의 각오도 금세 식어갔다.
[...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 사라지길]
'오늘은 정말 날이 아닌가 보다'
플레이리스트가 끝남과 동시에 찾아오는 적막. 그 뒤를 따라 같이 찾아온 지독한 권태, 무료함과 지루함. 결국 달리기로 인해 달아올랐던 나의 몸의 열기는 정신처럼 차갑게 식어가며 침전함을 느꼈다.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지만, 나의 경우엔 관성이었다. 뭐든지 쉽게 익숙해지고 그만큼 쉽게 질리곤 했던 나는 지난 몇 년간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었다. 치열했던 의대 내 생활도, 일분일초가 바빴던 대학 병원의 인턴 생활도 다 일시적인 자극일 뿐이었다. 굴레 같은 삶의 연속을 벗어나고자 선택했던 군대도 결국 같은 꼴을 맞았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정말 빌어먹게도 공감 가는 말이다.
그랬기에 죽으려 했다. 죽은 듯이 사는 것. 무자극의 삶, 이 공허함. 겨우 이런 이유만으로 죽음을 선택하기엔 너무 배부른 선택임을 나 스스로도 알기에 또 모순적이게 수 천 번은 망설였다.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오는 그 자극은 얼마나 짜릿할지. 죽음 그 이후를 생각할 필요 없다는 점에서 내 고질적인 질림을 해소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있었다.
이에 맞서는 지난 평생 동안 학습되어 온 사회, 윤리적인 규범들.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하진 않지만, 의미를 부여했던 사람이 나에게 남겼던 삶의 흔적이었던 만큼 무시할 수 없었다.
다시 걸음을 돌려 원래의 경로대로 관사에 가려던 차였다. 무언가가 보였다.
익숙한 등산복과 우스울 정도로 희한한 신체비율, 짜리 몽땅한 팔다리와 두터운 몸통. 너무 질리도록 봐왔던 풍채였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했다. 대대장이었다.
상황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쓰러져 있는 대대장의 바로 뒤엔 절벽이 있었고, 그 몸뚱아리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절벽에서 떨어졌는지 다리는 골절되어 기괴한 각도로 구부러져 그 뼈가 튀어나와 있었고, 외투는 곳곳이 찢어지고 그 틈 사이로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의식 없는 듯 가만히 누워있으니, 죽었나 의문이 드는 몰골.
상황을 파악했지만 받아들이는 데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난리람. 꿈인가?
정말 오랜만에 심장이 뛰는 것을 자각했다. 생소하고도 낯설지만 또 반가운 감정,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전에, 나름 의사로서의 자동반사가 발동되는 게 먼저였다.
난 대대장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상태가 어떤지, 호흡을 하는지, 맥은 뛰고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했다.
"으으... 거기 누구... 군의관? 군의관이야?"
"... 대대장님"
"으아... 죽으란 법은 없구먼, 엉? 보면 알겠지만 내가 좀 으... 다쳤어. 빨리 나 좀 살려줘 봐"
대대장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실망이나 안도와는 다른 어떤 감정이 싹을 틔웠다. 이 생소한 감정을 이름을 붙이고 파악하기 위해 나 자신을 점검했다.
비현실적이고 전혀 예상 못한 광경에 당혹스러움을 느꼈고 점차 무슨 상황인지를 제대로 인지하게 되자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온몸에 혈류와 산소가 풍성하게 공급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대대장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내 육신을 짓누르던 무력감과 권태가 폭우에 씻겨 나가듯이 사라졌고, 그 무게감과 압박감은 마치 안개가 순식간에 걷히듯 없어졌다.
이를 깨닫자 가슴께에 스멀스멀 스며들어 간지럽히는 기쁨과 우스움... 희열. 여태 조용했던 건 이 순간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듯 가슴뼈를 박살내고 튀어나올 듯 격동하던 심장박동.
마치 갓 태어난 갓난아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모든 자극이 새롭게 다가왔고 생애 그 어느 때보다 격하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코 끝이 찡한 추위와 귓가를 스치던 12월의 찬바람도, 눈밭에 젖어 아려오던 발가락에서 오는 통각들 전부 치환되어 느껴지는 짜릿한 우월감.
물밀듯 들어오는 잊고 있던 감각들의 격류에 나도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처음엔 몰랐다. 황홀감의 극치에 다다른 몸에 맡겨 웃음을 참을 순 없었으나, 빵 하고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지도 못하고 입으로 손을 가린 채 입술을 오므리고 쿡쿡거리는 게 그 순간에 최선의 표현이었다.
"야 인마! 뭐 해! 당장 119 부르고 엉? 나 응급처치를 해야 될 거 아냐 인마!"
한껏 만끽하고 있던 나를 현실로 빼낸 고함소리마저 아름다운 음률처럼 들렸다. 대대장을 보니, 주섬주섬 품 안을 뒤져보고 있었다. 아마 핸드폰을 찾으려던 것이겠지,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절벽. 눈밭. 휑한 주말의 시골길 풍경.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아무도 이곳을 못 보리라 확신했다. 지난 6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주말 이 시간대에 이 근방에서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을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대대장님, 어쩌다 이렇게 된 건가요?"
"보면 몰라 인마! 산 타다가 미끄러져 떨어진 거잖아 엉? 지금 그게 중요해!"
거짓말이다. 등산을 할 거였으면 높은 산을 갔었겠지. 뭔가 볼 일이 있으니 동네 야산에 왔다가 봉변을 당할 터이다. 관건은 혼자 온 것인지 동행이 있었던 것인지. 잠시 고민을 해봤다. 동행이 있었다면 나에게 이렇게 필사적으로 구조요청을 하고 있지 않았겠지. 그럼 혼자 거나, 아니면...
결론이 나왔고, 이제 내 맘껏 즐겨도 되겠다. 나도 더 이상 잔뜩 신난 이 설렘을 참을 수 없었다.
겨우 폰을 찾아 꺼낸 대대장의 손을 걷어찼다. 폰은 그대로 몇 미터 뒤, 눈 밭 어딘가로 날아갔다. 평소였으면 이런 내 행동에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박살난 인형처럼 고장난 몸뚱이로 그러긴 제한됐다.
"뭐 하는 짓이야 인마! 감히 상관을 폭행해! 이 개버러지만도 못한 좆같은 새끼가 다 있나! 엉? 당장 주워와 이 씨! 발! 놈아!!"
결국 걸레 문 입으로 온갖 저주와 욕설, 되지도 않는 협박만을 숨 하나 고르지도 않고 외쳐 대는데, 그 모습이 귀여울 지경이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런 반응이라니... 설렘이 더욱 커져갔고, 그에 반비례하는 내 자제력은 점차 바닥났다. 나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툭 하고 튀어나왔다.
"그렇게 고함지르고 힘 빼면 오래 못 살아요 대대장님"
"... 엉? 너 인마... 너..."
그렇게 나와 대대장이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보통 사람의 감정이란 게 순식간에 바뀌기 어렵다. 그렇기에 어렵사리 그 순간을 포착하면 인간의 감각 및 운동 신경의 속도와 얼굴 근육 정밀한 움직임에 경외감이 든다.
이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분노와 답답함, 고통으로 잔뜩 찌부러진 눈썹과 미간의 주름에 윗입술이 올라가며 드러난 이.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이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몇 초만에 전환된다.
순식간에 확장되는 동공과 펴지는 미간 그리고 위로 올라가는 눈썹에 오히려 이마에 주름이 진다. 입술은 서로 벌어져 있지만 아까와 달리 윗입술에 힘이 빠져 그저 아 하고 벌리고 있는 모양새라 안의 이는 보이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전체적으로 멍청해 보이는 인상이 된다.
가까이 다가가서 구경하려고 하니 대대장이 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이며 시선을 피했다. 정말이지 처음 보여주는 낯선 모습이 내 가슴에 불을 더 크게 지폈다. 지금 내 눈앞의 저 나약한 육신이 지난 세월 간 모두를 그렇게 깔아뭉개며 고압적으로 대하던 그 대대장이 맞는가? 지금의 모습과 평소의 모습이 겹쳐 보이자 그 대비되는 거리감에 결국 못 참고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그럼에도 더는 욕도 못하고 날 쳐다보지도 못하는 대대장. 정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 더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내가 제안을 했다.
"절 한번 설득해 보겠습니까?"
"엉? 인마... 그게 무슨..."
"살려달라고 빌어보라고요. 상황 파악이 잘 안 되세요?"
이해를 못 한 듯 얼타는 그의 옆에 무릎을 대고 앉았다. 자, 하늘이 내려준 절호의 기회를 맘껏 누려야 한다. 그렇지만 너무 빨리 끝내서도 안되고, 첫 경험인 걸 티 내서 모든 걸 망쳐버려도 안된다. 그러기 위해선 행동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진행해야 한다.
어차피 눈 밭의 흔적들이 있는 이상 내가 대대장과 조우했던 것을 숨길 수는 없다. 그럼 조우해서 무엇을 했는지만 준비해 두면 된다. 너무 쉬운 일이다. 죽어가는 대대장을 보았고, 구조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자, 이제 이 내용에 맞게만 행동하면 된다.
"인마... 이봐, 군의관. 자네가 이러면 안 되지. 의사 되면서 선서도 했을 거 아냐? 그런 사람이 이러면 되겠어?"
구조 행위에도 불가피한 손상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가슴 압박을 하면 갈비뼈가 골절될 수 있고, 삽관 과정에는 치아나 목 안의 구조들에 대한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흔적들은 해명할 필요조차 없이 자연스럽고 쉽게 받아들여질 테니, 그 연장선에서 놀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어서 119 좀 불러주고, 나 좀 도와줘봐. 그러면 다 없던 일로 해주고, 내가 엉? 표창도 주고 다 해줄게"
여전히 상황을 어떻게든 부정하고 나와 타협해 보려고 애쓰는 대대장은 옆에 앉은 날 붙잡으며 애원했다. 아드레날린이 아직 분출 중이라 가능한 건지, 아님 겉보기보단 추락하며 다친 것이 크지 않은 건지 애매하다. 우선 못 움직이게부터 해야 하는데, 마침 또 시끄러운 입도 동시에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머리를 기울이고 턱을 들어 올려 환자 호흡을 돕기 위한 수법.
각 손을 대대장의 턱 아래와 이마에 댔다. 무얼 하는 건지는 몰라도 낌새가 좋지 않음을 눈치챘는지 내 손목을 잡아 저지하려고 했지만 힘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이... 개... 새끼... 가 무슨 짓을!"
금세 부정의 단계를 뛰어넘어 원래 평소의 분노 단계로 접어든 대대장. 난 날 죽일 듯이 노려보는 대대장의 눈을 마주 보며 힘을 주었다. 이마를 짚은 왼손은 아래로, 턱 아래에 댄 오른손은 왼손 쪽으로 밀어버렸다. 과할 정도로 세게.
느껴지는 저항감. 추락하며 이곳저곳 부딪혀서 분명 이미 경추 손상이 있을 거라 판단하고 쉽게 될 줄 알았는데 한 번에 되지는 않았다. 괜찮다, 반동을 주어서 몇 번 더 같은 행동을 반복하니 뚝! 하는 소리와 함께 대대장의 팔에 힘이 빠짐을 느꼈다.
"어억..."
눈에도 힘이 풀린다. 대대장의 의식이 그 아래로 침전하는 것을 본다. 죽은 것은 아니다. 내가 일으킨 경추의 손상으로 인해 발생한 통증으로 기절하는 것. 아직 난 재미를 볼 게 많다. 뺨을 몇 차례 후리자 다시 의식이 돌아온다.
"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숨 쉬는 것이 많이 힘겨워졌는지 헐떡거리며 말을 가까스로 내뱉는다. 이제 고함지를 힘도, 나에게 저항할 힘도 없을 거다. 팔다리도 횡격막처럼 힘이 빠질 테니까. 신경 손상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특히 영상검사를 하지 않는 이상 보기 어렵다는 점도 한몫하는데, 보통 죽어서 병원에 도착하는 DOA의 경우엔 영상검사를 안 한다. 그러니 대대장의 물음에 대답하자면,
"네"
"인마..."
"대대장님은 무사하실 거 같으세요?"
대답을 바라고 물은 질문은 아니었는데, 대대장은 어떻게든 말을 꺼냈다.
"잘못했어... 그러니 제발..."
잘못이라, 지난 시간 동안 대대장에게 시달렸던 모든 과정들이 이제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사사건건 했던 침해와 온갖 모욕, 괄시, 무시, 방해 등등. 아 그랬었지. 오해를 할 만하다. 내게 원한을 샀기에 복수를 당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난 오해를 바로잡지는 않았다.
"고해하세요"
그러자 대대장은 천천히 자신이 저질렀던 죄목들에 대해 서술하며 용서를 구했다. 난 차분히 그의 말을 경청하는 척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차피 나의 마음은 이미 몇 분 전에 정해져 있었다.
해는 뉘엿뉘엿 다 지어 어둠만이 주위를 덮어갔다. 말단 부위들을 괴롭히던 바람도 차오르는 어둠에 숨죽이듯 잦아들었다. 이제 주변엔 고요함만이 남았고, 희미해져 가는 대대장의 목소리도 그 고요함을 뚫고 퍼지진 못했지만 또 멈추지도 않았다.
사실 난 대대장의 온갖 악행들에 별다른 감흥이 남아있지는 않다. 물론 귀찮고 성가시고 처음에는 화도 났었지만, 다른 그 어떤 자극들과 마찬가지로 전부 흐르는 시간에 마모되어 사라졌다. 오히려 대대장을 처음 만나고 몸소 겪었던 그 벌레 같은 역겨움이 그립기도 했다.
다시 대대장을 보니 딱 죽어가는 벌레처럼 보였다. 분명 온몸 곳곳을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지만 큰 혈관들은 무사한지 아직 의식도 잃지 않고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이 벌레 특유의 질긴 생명력 같았다.
문득 대대장을 보며 역한 기분이 들었다. 잊고 있었던 느낌이 다시 찾아오자 반가웠고 또 덕분에 깨달았다.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실감하고 있음을.
무엇이 날 이렇게 살아있게 만드는가, 살인에 대한 기대? 압도적인 지위 차이에서 오는 우월감? 아니면 내 맘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괜찮다는 해방감?
지금으로선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한 번만으로 어떤 가설을 입증시킬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괜찮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한번 하고 나면 분명 그다음도 있을 것이다.
점차 잦아들어가는 목소리의 내용은 더 이상 날 향해 살려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쳐다보며 생전 자신의 죄들을 고해하는 것이었다.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이대로 두면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대대장의 가슴팍에 무릎을 대고 올라탔다.
"..."
신경 손상으로 인해 약화된 호흡근으로는 내 무게를 이기고 숨을 내쉴 수가 없었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눈 안의 빛이 고장난 전등처럼 점멸하다가 꺼진다. 그렇게 몇 초 자세를 유지하다가 다시 대대장의 오른편으로 내려와 양손을 포개 그의 가슴팍에 올렸다. 무게를 실어서.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콰지직!
갈비뼈가 무게와 힘이 실린 압박에 결국 부러지며 함몰된다. 멈추지 않고 몇 번 더 압박하자 움찔하는 게 느껴진다.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삼십 번을 채우고 대대장의 입에 내 숨을 한껏 밀어 넣자 그의 몸에 다시금 생기가 돌아온다.
"뭐... 왜..."
아예 의식마저 바로 돌아올 줄은 몰랐기에 나도 놀라 대대장을 쳐다보자 눈이 마주친다. 아차, 표정 관리 하는 것을 잊어먹었다.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의 눈동자에 반사되어 비친다.
곧, 감정이 그의 눈에 차오른다. 원망, 분노, 억울함, 두려움. 비슷한 눈을 본 적이 있었는데, 고라니를 차로 쳤을 때였다. 죽어가는 고라니의 눈이 마치 사람처럼 비슷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몇 분 더 기다리자 잠시간 머무르던 생기가 다시금 떠나는 게 보였다. 그리고 또다시 반복.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콰직! 뿌드득!
가슴에 정상적으로 남아있던 뼈들도 점차 압박에 못 이겨 부서져 내린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많은 압박이 필요했다. 두 번의 사이클을 반복하자 그제야 다시금 자발 호흡이 돌아왔다. 이번엔 말을 한 글자도 하지 못하고 날 쳐다보는 눈엔 의문이 보인다.
몇 분도 채 못 버티고 다시 죽는다. 그럼 나는 되살린다. 몇 번을 똑같이 반복했을까? 어느 순간부터 대대장의 눈에는 체념, 혹은 수용만이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했다. 나의 온몸은 땀에 젖고 장갑 속의 내 손은 부어 퉁퉁해졌으며 숨이 턱 끝까지 찬다.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순간이, 되살아나며 눈에 비치는 감정이, 그리고 나의 모습이 너무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119 신고를 한 시각은 일요일 19시 49분.
지금은 목요일, 수술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유희의 끝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