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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7. 2016

백제 최후의 수도 부여에 가다

2012년 부여 기행 1

왜 부여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도 경주와 같은 고대도시의 풍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부여가 나를 부르네

     

2010년에 내 발로 직접 경주를 찾아가 보곤 깜짝 놀랐다. 이미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와본 곳인데도 말이다. 수학여행엔 나의 의지, 관심과는 상관없이 큰 손의 힘에 이끌려 강제적으로 봐야만 하니, 어떤 거대한, 엄청난 것을 보더라도 감흥이 없다. 초등학생 시절에 본 경주는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었다.(내 기억 속의 경주는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었는데, 과연 그게 실제상황인지,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내가 원해서 찾아간 경주는 모든 게 남달랐다. 더운 여름에 찾아가서인지 음습하기보다 생기발랄했으며, 길가 곳곳에 있는 유적들을 보면서 역사의 흐름이 느껴져 꼭 시간여행을 온 것만 같았다. 대릉원의 숲길을 걸을 땐 삶과 죽음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긴장했고 그와 동시에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곳에서 다른 느낌이 들다니. 이것이야말로 여행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러한 감흥을 다시 느끼려 부여로 나는 가노라.                



단재 아이들과 부여를 찾아간다.




아는 만큼 보이는가아는 만큼만 보려 하는가

     

지금껏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고 떠난 적은 없었다. 온갖 감각을 활짝 열고 길을 떠나면 그 속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앎은 소통의 가능성이기도 하지만 소통을 막는 것이기도 하다. 아는 것에 대해선 관심 가지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선 무관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가? 아는 만큼만 보려 하는가?’

그렇다고 아는 것 하나 없이 세상에 무작정 나갈 수는 없는 법이다. 관점이 없이는 상이 맺히지 않기 때문이다. 앎은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과정 속에 필요한 것일 뿐 그것 자체에 좋고 나쁨을 이야기할 순 없다. 그렇기에 우린 앎에 대해 고민하며 아래의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 

앎은 본질로 들어가려는 적극적인 행위다          



사랑하면 참으로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참으로 보게 된다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으로 보게 된다 

보이는 것을 모은다면, 그것은 모으는 것이 아니다     

愛卽爲眞知 知卽爲眞看  

知卽爲眞愛 愛卽爲眞看  

看卽蓄之而 非徒蓄也  유한준 『석농화원』 


         

유한준의 위 말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인용구로 유명해진 말이다. 유한준의 이 말을 통해 우린 앎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건 상식으로 치부되는 저급한 앎이 아니라, 본질적인 앎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앎은 어떨 때 생기는가? 바로 사랑할 때, 관심 가지려 할 때 생긴다. 이렇게 말하면 꽤나 심오한 철학으로 들릴 테지만,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앎이 있기 때문에 관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알고 싶고, 하나라도 더 알려 하니 당연히 미세한 감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 사람의 반응 하나 하나에 좌절도 하고 안도도 하면서 서서히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앎이 쌓일 때 우린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앎은 대상과의 상호작용 속에 자연히 생겨난다.      



드디어 부여 터미널에 도착했다. 부여 구경도 식후경 밥부터 먹읍시다.




앎에 대한 강요가 아닌존재에 대한 관심으로 

    

앎의 이와 같은 속성이 있는데도 관심이나 사랑할 마음조차 없는 사람에게 앎을 던져주면 어떻게 될까? 유한준은 ‘모은다고 모아지냐’라고 일침을 놓는다. 오히려 아무 것도 안 남는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자신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한껏 기고만장해지며 세상과 타인을 자기 맘대로 재단하려 하니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린 다시 되물어야 한다. 사랑 없는 앎, 관심 없는 맹목적인 앎을 전해주지 못해서 안달하고 있지나 않은지 말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전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를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세상과 타인에 관심 갖고 사랑하게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말이 삥돌아 왔다. 아는 만큼 보되,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자극들에 미세한 감각을 곤두세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역사유적지를 간다는 건,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나를 사유하는 큰 눈이 뜨고자 해서 일 것이다. 유적지에 가서 나의 이름을 새기고 올 것이 아니라, 그 곳에 나의 관념을 새기고 오자.                



어느 곳에 가든 기초적인 것을 알고 가면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백제에 대한 간단한 사전조사 

    

백제의 수도는 총 세 번 옮겼다. 위례성(몽촌토성)⇒웅진(고구려에 의해 한강유역을 빼앗기자,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공주로 옮길 수밖에 없었음)⇒사비(웅진은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장소이긴 하나 성장하기엔 공간이 비좁아 성왕이 천도함, 사비는 새벽이 밝음이란 뜻임)로 옮긴 것이다. 

그렇기에 사비엔 재도약을 꿈꾸던 백제의 바람과 나당연합군에 의해 꿈이 산산조각 나버린 백제의 절망이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역시 역사에 대해 간략한 상식이 있는 것만으로도 역사기행은 첫 출발부터 다를 수 있다. 사랑하면 진정으로 알게 된다.



좌: 공주, 우:부여 / 공주는 산으로 둘러 쌓여 있지만 부여는 그렇지 않다.



부여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짜장면이 맛있다는 곳을 찾아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더라. 가격도 저렴하고 짜장면 맛도 괜찮았다. 거기에 면발은 수타가 아닌데도, 쫄깃쫄깃 하더라. 여행의 재미는 역시 지역 맛집 찾기다. 



중국집은 기본적인 맛은 하기에 가장 무난한 곳을 찾았다. 






목차     


1. 백제 최후의 수도 부여에 가다

부여가 나를 부르네

아는 만큼 보이는가, 아는 만큼만 보려 하는가

앎에 대한 강요가 아닌, 존재에 대한 관심으로

백제에 대한 간단한 사전조사     


2. 정림사지와 금동대향로로 본 백제

정림사지, 중흥의 찬가와 절망의 애가 

석불좌상, 겉이 아닌 속으로

부여박물관과 금동대향로

구드래 돌쌈밥

그린피아찜질방, 잘 수 없는 찜질방     


3. ‘삼천궁녀’ 이야기의 진실부소산성은 알고 있다

부소산성, 백제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

삼충사

낙화암, 만들어진 이야기가 과거를 재구성한다

장원 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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