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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8. 2016

과학은 선택이다

박철민 교수의 과학사 특강 3

과학이 하나의 체계이자 틀일뿐이라면, 어떤 기준에서 과학이 선이 되고, 악이 되는지 판단해보는 일도 중요하다.               




과학은 어떤 경우에 악이 되는가?

     

그래서 교수님은 바로 질문을 던지셨다.      


Q: 과학은 선일까요악일까요?”   

  

A: (긍정카드를 든 경우)

이혜린: “과학을 통해 혜택을 받으니, 과학에는 긍정적이다.” 

이건호: “과학은 약이다. 현실에 도움을 많이 준다.”     


A: (부정카드를 든 경우)

박근호: “과학이 자본과 결탁하면서 진정으로 사회 발전을 견인하기보다 현실의 이득만을 탐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몇 십년이 지나면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부정적이다.”

오승환: “과학이 긍정적인 부분은 분명히 있지만, 극단으로 치달으면 독이 된다.”     


과학이 필요한 부분은 분명히 인정하지만, 그걸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선이 되고, 악이 될 수 있다. 그건 어찌 보면, ‘칼이 선이냐, 악이냐?’는 질문과 똑같은 것이다. 칼을 잘 쓰면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맛난 세상을 만들 수 있지만, 잘못 쓰면 인명을 살상하는 도구가 되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는 당연히 ‘과학이란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한도전에 다룬 '선택 특집'. 그 근저는 사르트르의 말에서 시작됐다.



              

과학은 선택이다 1 - 납에 대한 과학적 신념

     

아래에서 살펴볼 인물은 대조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에게 과학은 ‘세상을 이롭게 할 학문’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걸 어떻게 이롭게 사용할 것인가 선택하는 부분에서 그들의 운명은 갈라졌고 후세의 평가 또한 달라졌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d) 사이의 C(choice)다.’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딱 이 말에 들어맞는다고 볼 수 있다. 



미즐리와 테트라에틸납.



토머스 미즐리Thomas Midgley(1889~1944)는 살아 있을 당시에 미국에서 매우 유명한 과학자였다. 특허를 100개 이상 소유했으며, 프레온가스를 개발하여 인류의 진보를 앞당겼다. 

그는 테트라에틸납(유연휘발유)이 자동차 엔진의 노킹현상knocking(엔진의 이상 점화 현상)을 크게 줄인다는 사실을 알고 테트라에틸납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에틸납은 휘발유의 연소력을 훨씬 증가시켰기 때문에 엄청나게 팔려 나갔다. 그러나 에틸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납 중독에 걸려 죽어가자, 그는 에틸납이 유해하지 않다고 주장했으며 납이 든 통에 손을 담그는 실험장면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가 살아 있을 당시엔 엄청난 사회적 지위와 부를 동시에 누렸다. 그의 과학적 확신은 세계를 점점 오염시켜 가고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었지만, 그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미즐리 그는 과연 그의 발명품이 인류에게 축복이라 생각했을까? 저주라 생각했을까?



클레어 패터슨Clair Patterson(1922~1995)은 지질학자였다. 그는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기 위해 방사성 기원 동위원소인 납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을 썼다. 그는 지구의 나이를 연구하는 도중 현대에 이르러 대기 중 납 농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진 사실을 알게 됐다. 납 농도의 증가가 유연휘발유의 사용 때문이라고 가설을 세웠지만 그걸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고민하던 끝에 그린란드는 눈이 내려 얼음이 생기면 층층이 쌓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과거의 납 농도를 알고 싶으면 그 해에 해당되는 얼음층의 납 농도를 조사하면 되는 것이다. 조사해 보니, 1923년 이전에는 대기 중에 납이 거의 없었음을 밝혀낸다. 유연휘발유가 사용되면서 납 농도가 비약적으로 올라갔으며 그에 따라 환경은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클레어 패터슨은 과학자적인 양심을 선택했다.



그런 사실을 밝혀낸 후로 그는 휘발유에 납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미국의 석유회사는 거대한 권력집단으로,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에게 지원해주던 연구자금을 끊는 것은 기본이고, 그가 재직하던 대학에 그를 해임하면 대학교에 기금을 주겠다고 전방위적인 압박을 펼쳐 그를 궁지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에틸납의 유해성을 널리 알렸으며 그 덕에 1980년엔 납의 사용을 금하는 법이 제정되었고 1986년엔 모든 유연 휘발유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그는 자신의 학문적인 양심을 지킴으로 핍박 받고 힘겨운 생애를 보냈지만, 그 덕에 인류는 환경오염의 피해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연휘발유란 말을 처음에 들었을 땐, '연기가 나지 않는 다는 뜻'에서 무연이라 쓴 줄만 알았다. 무식이 날뛰니 창피할 뿐^^;;




과학은 선택이다 2 - 자연을 위한 과학인간을 위한 과학?  

   

맹그로브mangrove라고 아는가? 맹그로브는 아열대 지역의 하구 습지에 사는 산림의 일종으로, 홍수림紅樹林이나 해표림海漂林이라고도 한다. 맹그로브는 열대우림보다도 5배나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어 탄소 저감효과가 탁월하다고 한다. 또한 맹그로브가 자라는 곳은 하천이나 바다에서 흘러온 유기물이 분해되는 곳으로 풍부한 영향분이 있어 다양한 생물종이 살 수 있다고 한다. 



별 가치 없다고 느낀 것 속에서 가치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무너지면 우리 자신도 무너진다.



하지만 인간에게 이러한 자연환경은 별로 가치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영향분이 많다면 그곳에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을 키우고 싶어 하며, 자연 상태로 있는 맹그로브보다 벌목하여 원하는 재료로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동남아 등지에선 목탄의 원료로 쓰기 위해 벌채를 하며, 적은 돈으로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블랙타이거(홍다리얼룩새우)를 양식한다. 그러니 차차 맹그로브가 파괴되어 열대습지가 사라지고 간척지가 황폐해진다. 맹그로브의 훼손은 간척지를 불모지로 만들어 그곳에 살던 뭇 생명들을 죽게 만들며, 그건 곧 생태계 전체의 교란을 야기한다. 



맹그로브가 사는 생태계엔 다양한 종이 서식한다. 하지만 새우양식으로 인해 이 모든 게 파괴되었다.



주르겐 프리마베라Jurgenne Primavera는 수산학자다. 그녀는 1970년대에 블랙타이거 양식에 성공하여 새우양식업계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지금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적은 돈으로 새우를 먹을 수 있는 것도 그녀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현재는 윤리적인 먹거리를 찾아 블랙타이거를 반대하는 음식점도 늘어나고 있다고 함). 하지만 그녀는 새우양식장으로 인해 황폐해져가는 맹그로브를 보게 된다. 아마 부와 명예만을 좇는 사람이었다면, 자연이 파괴되든 말든 자신의 부와 명예를 지켜줄 새우양식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클레어 패터슨처럼 과학자적인 양심을 지켜야 할 때, 그 양심의 외침에 귀를 막지 않았다. 그래서 친환경적인 새우양식 방법을 연구했으며 은퇴하고 나서는 NGO 단체를 설립하여 맹그로브를 심는 일에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맹그로브와 생태계를 지켜내기 위해 여생을 보내고 있는 주르겐 프리마베라.




과학은 선택이며맹신보다는 통찰이 필요하다 

    

납의 유해성을 은폐하여 승승장구한 과학자와 그걸 밝혀내어 온갖 핍박을 받았던 과학자, 새우양식으로 떼돈을 벌기 위해 맹그로브를 파괴하던 과학자와 그 폐해를 알고 맹그로브의 씨를 뿌리는 과학자 중 우린 어떤 과학자가 될 것이며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과연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건 자신이 연구한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는 맹신이 자연을 파괴하며 삶을 왜곡시키는 대도 모른 체하느냐, 무언가 어긋났음을 인식하고 그걸 되돌릴 용기가 있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이러한 예는 현재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만금 사업’이나, ‘4대강 사업’이 그런 예이기 때문이다. 단시간 내에 이득을 얻기 위해 자연에게 인위적인 변화를 가했다. 결국 자연의 훼손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어느 순간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올 것이고, 그 때에 이르러서야 후회한들 소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통찰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에 대한 접근이 있어야 하며, 과학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극단적인 과학 맹신 주의는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갯벌이 무가치하다고 느껴, 좀 더 가치 있는 땅으로 만들려 한다.




첫 과학사 특강을 듣고 난 후  

   

1시간 30분이 훌쩍 흘렀다. 이번 강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버무린 알찬 시간이었다. 첫 시간치고는 학생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전혀 모르는 주제이고, 어려운 내용인데도 들으려는 적극성이 있었다. 

교수님도 단재학교에서 처음으로 특강을 하는 것이고, 우리도 이런 특강을 처음으로 듣는 것이기에 어색하여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도 있었는데, 그런 우려와는 달리 분위기가 좋았다. 과학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을 생각하고, 인생을 생각하며 삶의 자세를 고민해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북경에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에서는 폭풍우가 된다’는 나비효과는 나의 작은 행위가 결국 나의 인생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나비효과는 과학적인 선택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토머스 미즐리의 선택이 세계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친 것처럼 과학적인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교수님이 단재학생들에게 첫 강의에서 던진 화두는 ‘그래서 당신은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거였다. 



진지한 고민의 시간이었다.






목차     


1.과학 공부는 필요한가?

첫 만남, 그리고 방식

과학 공부는 정말 필요할까?

공부의 원의     


2. 과학은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원래의 의미에 가까운 공부란?

과학은 세상을 보고 궁금해 하는 데서 시작된다

과학은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과학은 어떤 경우에 악이 되는가?     


3. 과학은 선택이다  

과학은 선택이다 1 – 납에 대한 과학적 신념

과학은 선택이다 2 – 자연을 위한 과학? 인간을 위한 과학?

과학은 선택이며, 맹신보다는 통찰이 필요하다

첫 과학사 특강을 듣고 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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