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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Oct 03. 2016

부담 덜고, 그냥 써라

현세에게 카톡 받던 날, 글쓰기를 생각하다

한 달 전에 프랑스에 간 현세에게 어제 갑자기 카톡이 왔다. 

현세에게 카톡이 자주 오는 편은 아니지만, 간혹 카페에 들어와서 아이들이 쓴 글에 댓글을 남기기도 하고, 민석이나 지훈이와 틈틈이 소식을 주고받고 있는 것 같기에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다. 그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대한 연락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아니면 현세가 간혹 소식 전해주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처음엔 후자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지만, 나름 현세가 잘 적응하는 것 같아서 이젠 그저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내맡기기로 했다. 연락을 주면 얘기 나누고, 그렇지 않으면 놔두는 식으로 말이다.                



▲ 현세가 보내온 사진들.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응원한다~ 맘껏 누비고 오시라.




현세는 그렇게 한 걸음씩 나간다

     

오늘 얘기하려는 부분은 현세가 보낸 카톡의 내용에 있다. 현세는 내가 쓰는 후기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간혹 블로그에 들어와 어떤 글들이 올라와 있나 보기도 하고, 읽은 글에 대해서 여러 얘기도 해준다. 그래서 어제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한거다봤는데, 한번 찾아볼게요. 그영화”라고 말한 것이다. 그만큼 내가 어떤 글을 쓰며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도 할 수 있고, 내 글에 비친 단재학교의 상황이 궁금하기도 하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 



▲ 10편으로 썼던 영화 후기를 다 봤다는 게 놀랍기까지 하다.



현세의 글은 작년 여름을 기준으로 비약적인 성장이 있었다. 그 전만 해도 영화를 보고 후기를 쓰거나, 여행을 하고 여행기를 쓰거나 숙제로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니 ‘마지못해 쓰는 정도의 글’만 썼었다. 물론 여기서 확실히 얘기해야 할 것은 아이들이 쓰는 글을 무시하거나, 수준이 낮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한 나이 때 그만한 글을 쓰는 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좀 더 정성스레 쓸 수 있는 것도 마지못해 쓰다 보니, 내용도 부실하고 오타가 있고 비문도 많다. 더욱이 ‘한글’이란 프로그램으로 글을 쓰도록 권유하는데도 도무지 현세는 그런 귀찮은 짓은 하지 않으려 한다.  



▲ 예전엔 정해준 틀에서만 적당히 쓰는 정도였다.



그러던 글이 작년 여름에 ‘미션 임파서블’을 쓰면서 비약적인 성장이 있었다. 글의 내용이 훨씬 풍부해졌고 자신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건 누가 봐도 현세가 고민하여 쓴 글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 글 중 단연 백미는 ‘스물’과 ‘베테랑’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본 영화이지만, 이렇게까지 섬세하고 깊이 있게 분석할 수 있을 거라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현세가 쓴 후기를 보면 더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함께 비를 맞았던 인연들

     

현세의 글이 이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 데엔 두 사람의 도움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현세와 3년이란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며 여러 영향을 준 민석이다. 민석이는 재작년부터 자신이 쓸 수 있는 기록을 모조리 남기고 있다. 카자흐스탄에 2주 동안 갔다 와선 아무도 숙제로 내준 적도 없음에도 그걸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그 뿐인가, 작년엔 아이들끼리 1주일간 오이도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것도 빠짐없이 글로 썼다. 어느 날 민석이에게 “요즘 글 쓰는 것에 필 좀 받았나 보다?”라고 물으니, “이런 식으로 남겨 놓으면 좋더라고요. 글을 쓰다 보면 그 때가 다시 생각나기도 하고, 그 글을 다시 읽다 보면 문뜩 그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라고 대답하더라. 민석이의 말에 글 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은 고스란히 현세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 민석이가 쓴 장장 15편의 기록들. 인내심과의 싸움인데,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썼다.



둘째는 애증병존의 관계인 내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엔 아무리 ‘친구 같다’ 포장할지라도 애증병존이 상존할 수밖에 없다. 교사는 학생에게 한 번이라도 더 싫은 소리를 해야 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학생은 ‘엄청 깐깐하고, 융통성 없네’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향을 가장 많이 주고받는 관계라 감히 말할 수 있다. 더욱이 그 때는 영화팀 아이들이 내 블로그에 들어와 ‘국토종단기’를 훑어보고 있었다. 종단기 중 진천에서 고추를 심고 이장님이 품삯을 주려 하자, 나는 받지 않고 “나중에 고추 딸 대나 불러 주세요”라고 멋들어지게(?) 했던 말을 따라하며 나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전혀 기분 나쁘지 않는 놀림이었다. 그만큼 내 글을 자세히 봤어야만 할 수 있는 놀림거리이고, 거기엔 미움이 아니라 애정이 듬뿍 담겨져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 아이들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였다며 무진장 놀렸다. 하지만 난 그저 싱글벙글~



그렇게 내가 쓴 글들을 보게 됐고, 거기에 쓰여 있는 자신에 대한 평가도 여실히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 중에 맘에 안 드는 글들도, 뭔가 오해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글들도 있었겠지만, 아이들은 그것 또한 ‘교사의 생각’이라 인정해줘서 크게 불만을 표시하진 않았다. 바로 이런 부분들이 현세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 함께 성장해가는 기쁨이 있었다. 그러려면 우산을 들어주기보다 믿고 함께 비를 맞으며 나아가면 그뿐이다.



현세는 이처럼 민석이와 내 글을 보면서 좀 더 글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거라 할 수 있다. 물론 현세가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고 나름 잘 쓴다는 자부심도 있기 때문에 그런 외부 조건들과 마주치며 그 영향력은 더욱 증폭된 것이라 보아야 맞다. 그렇게 우린 ‘함께 비를 맞으’며 한 걸음씩 나간 것이다. 






글쓰기란 고상한 취미가 아닌 현실을 살아내는 것 

    

그래서 어제 카톡이 와선 “종환쌤 저에 대한 후기써주실 생각없으심미까”라고 물은 것이다. 여기엔 ‘이 사람은 나름 합리적인 근거로 글을 쓰기에, 참고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단재학교에서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글을 쓰다 보니, 글에 대한 부담에서 어느 정도 놓아졌고 오히려 편하게 느끼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글을 쓴다는 부담에서 놓여났고, 남이 자신에 대해 쓴 글을 보더라도, 혹 그 글이 편협한 생각에 의한 것이더라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게 되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현세는 나에게 이런 제안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현세의 카톡을 받던 그 순간,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는가. 



▲ 현세의 제안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글쓰기는 어찌 보면 배운 사람들의 전유물이거나, 고상한 언변을 풀어놓아야만 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예전엔 문자란 기득권의 전유물이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한 것만은 아니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맘만 먹으면 글을 쓸 수 있고, 사람들과 공유할 수도 있다. 이런 때일수록 글이란 부담을 벗고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맘껏 쓰고, 함께 돌려 보며 의견을 나눠보는 것도 좋다. 그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과정 속에 자신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며 한결 가벼워진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다. 그러니 현세가 글을 쓰면서 좀 더 가벼워지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글을 쓰며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고 앞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보면 된다. 바로 거기에 삶을 살아내는 진솔한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다.   



        

 ▲ 잘 써야 한다, 있어 보여야 한다는 부담은 덜고 그저 써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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