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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ul 03. 2017

또 하나의 가족, 그들을 생각하다

'허수아비 춤'을 읽고

몇 해 전 신문기사를 봤던 게 생각난다. 국내 모 대기업에서 신입사원교육을 하며 카드섹션을 하게 했다는 기사였다.                




취직만 시켜준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 

    

그렇게 하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단연 단체심을 길러 애사심을 키우기 위해서 란다. 그땐 그런 이유가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기업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이끌어가야 하는 곳이기에 돌출 행동보다 단합과 협동이 제일 중요한 가치라고 받아들인 까닭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대기업에 취직된 그들이 은근히 부럽기도 했다. 취직이 힘들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현실에, 그들은 정규직이며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직장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항간엔 ‘취직만 시켜준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라는 말이 떠돈다. 그건 결코 우스갯소리로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건 살고 싶다는 절규이며 세상을 향한 울부짖음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카드섹션쯤 하는 게 뭐 그리 어렵고도 문제가 되는 일이겠는가. 그런 생각이 나에게도 있었기에 그 기사를 보며 비판할 수 없었던 것이고, 부러워하기만 했던 것이다.                



▲ 삼성에선 신입사원들에게 카드섹션을 하도록 한다. 애사심도 높이고 단합심도 높인다는 취지겠지만, 석연치 않다.




당연한 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현실이 당연하다고, 방치하고 외면할 수만은 없다. 이렇게 취직하기 힘든 세상,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렇게 치열해진 사회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보는 세력은 누구인가? 그리고 카드세션의 이면에 감추어진 내용은 무엇인가?

이렇게 파고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타락한 자본주의에 기생하며 사회를 뒤흔들고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해온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숨기고 위장하려 할수록 더욱 뚜렷해진다. 이 사회를 ‘자본’, ‘이익’이란 단일한 가치로 획일화시키고 그런 길로만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돈으로 맺어져 피보다 진한 관계

     

대기업, 그들은 한국사회의 임금이다. 자본주의는 돈이 모든 가치의 상전 노릇을 하는 세상이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논리를 퍼뜨리는 세상이다. 돈을 가장 많이 가진 자, 그가 자본주의의 왕이여야만 하는 건 당연하다. 그들은 조선시대의 왕처럼 사대부 세력의 견제를 받는 왕도 아니다. 돈만이 최고의 가치가 된 세상이기에 돈으로 사람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도 있다. 

기업의 이익이란 실상 기업의 이익만은 아니라 할 수 있다. 그건 그 기업을 위해 일한 사람들의 몫이기도 하며, 그 기업 제품을 사서 쓴 소비자의 몫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런 일반론이나 상식은 들어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기업은 주식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 재산이어야 맞지만, 오히려 창업자 가족의 재산이기만 하다. 그래서 공공의 재산을 창업자 가족 중심으로 편법 승계하도록 애쓰며, 결국 회장 자리까지 몇 대에 걸쳐 세습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법성을 얘기해봐야 입만 아프다. 정상적인 자유 경제 흐름을 왜곡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하고, 그 로비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적인 비자금 세탁이 이루어진다. 기업의 이윤이 회장 개인의 돈처럼 사용되고, 그게 정치, 행정, 사법 할 것 없이 전방위적으로 살포되어 ‘또 하나의 가족’이 만들어진다. 피보다 진한 돈으로 맺어져 정말로 또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탄생한 것이다. 뇌물을 받은 고위공무원들은 그 돈으로 인해 피해보지 않을 거라 믿으며, 혹 불미스런 사건으로 잘린다 해도 기업이 자신들을 기용해줄 거라 믿는다. 관리가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을 ‘전관(轉官)’이라 한다고 하니, 더 구구하게 말해봤자 쓸 데 없는 짓이지 않겠는가. 이로써 왕의 권력은 물셀 틈 없이 탄탄하게 지켜지고 왕은 그 위에서 떵떵거리며 산다. 기업왕국은 이렇게 탄생했다. 

대기업이 윤리적인 경영을 하며 모두를 위한 경영을 했다면 이렇게 비판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그런 행위가 결국 모두를 자멸케 하는 크나큰 악임을 알기에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다. 



▲ 북한의 3대 세습은 늘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재벌의 세습은 용인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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