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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ul 04. 2017

기존의 욕망에 따를 때 썩는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허수아비 춤』을 읽으며 기상천외한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대기업, 그것도 총수 중심의 썩을 대로 썩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 같이 허무한 이야기이면서도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진실이기도 했다.          



▲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3부작 이후에 오랜만에 나온 소설이 바로 [허수아비춤]이다. 의미심장하다.



      

강남몽을 읽으며 구조의 한계를 직감하다 

    

『강남몽』은 그와 같은 의미에서 더욱 깊이 와 닿았던 소설이다. 오히려 정직하려고 하면, 원칙을 지키려고 하면 더 낙오하고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니 우울해졌다. 바르게 살면 낙오자가 되고 사회에서 매장당하게 된다.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기회에 편승하고 온갖 끈들을 끌어대기 위해 분주하며 남을 등쳐먹을지라도 성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게 정말 행복인 걸까?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만들어놓은 구조 자체가 문제였는데 그걸 ‘세상은 늘 그래’라는 말로 기정사실화하며 그 안에서만 대안을 모색하려 하기 때문에 그런 결론이 나온 것이다.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라는 아이히만의 절규가 결코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언제든 그런 현실 속에서만 고민하고 살아간다면, 그건 어느새 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니 말이다.                



▲ 황석영 작가가 쓴 [강남몽]은 강남 개발로 인해 어떻게 욕망이 불어나며, 그게 결국 어떤 파국을 향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삼성공화국을 우리가 만들었다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기 전에도 삼성에 관한 잡음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너무도 먼 이야기이며, 엄청 거대한 흐름의 이야기였기에 ‘이건희-이재용의 불법승계가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정도로 정리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왜 이렇게 떠들썩한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모른 채 하는 사이에 삼성공화국의 기반은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뿌리 뻗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몰라라 하며 관심을 꺼버리던 어느 날 마침내 이 책을 통해 그 민낯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이 『허수아비춤』의 기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삼성 내의 비자금 축적 과정과 권력기관 장악 과정, 편법 승계 과정, 그리고 이건희 회장 중심의 비이성적인 기업의 운영 방식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또 하나의 가족’이기를 자부했던 삼성은 웃는 얼굴로 칼을 들고 부모에게 돈을 뜯고 협박하기를 서슴지 않던 이들이었던 셈이다. 그건 우리가 기업을 살렸음에도 기업이 우릴 먹여 살린다고 느끼게끔, 언론과 권력을 통해 치밀하게 세뇌를 한 결과였다.                



▲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이 '또 하나의 제왕'이 되고, 소비자였던 우리가 노예가 되는 과정이 포인트다.




기업이 만든 헤게모니에 갇히는 순간우린 공범이 된다

     

이처럼 기존의 생각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공범자가 되어 버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의도적인 공범이냐, 어쩔 수 없는 공범이냐 따위의 이분법이 아니다. 생각하지 않을 때 누군가가 정해 놓은 헤게모니, 이데올로기를 맹목적으로 따를 때 같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 삼성을 비롯한 기업은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를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대한민국을 위해서, 삼성의 임직원을 위해서? 얼핏 생각해보면 모두가 정답일 거 같지만, 실상은 모두 정답이 아니다. 기업은 회장의 가족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기업을 키운 건 그 기업이 생산한 물건을 사고, 그들이 만든 아파트에 살며, 그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활용하는 우리들(물론 우리들도 기업을 키우기 위한 의지에 따라 행동한 것은 아니기에, 기업 성장의 달디 단 결과물을 무작정 주장할 순 없다)인데, 어느 순간 기업은 우리를 옥죄고 ‘기업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으로 협박을 일삼기 시작했다. 이런 걸 바로 ‘구덩이에 빠진 놈 구해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란 격’이지 않겠는가. 

이런 식인데도 무지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들의 권력을 유지해주기 위해 한 목숨 아낌없이 바치려 한다. 이미 썩고 문드러졌음에도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고만 있다. 그러니 어느 순간에 이르면 한 기업의 부도덕성으로 인해, 과욕으로 인해 전체가 위태로워질 순간도 있을 것이다.                



▲ 그들은 삼대 세습을 하기 위한 과정들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정관계를 쥐고 흔들 수 있어야 했다.




기업이 만든 삶의 방식이 아닌나만의 방식으로 살라 

    

이와 같은 현실을 대하고 보니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그와 더불어 지금껏 ‘그저 먹고 살기 급급하니,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며 살아가는 게 무슨 문제야’라는 생각에 대해서도 회의할 수 있게 됐다. 삼성에 취직하는 것이 효도의 첫째 조건이 되고, 사회적인 성공의 바로미터가 되며, 삼성 제품을 가진 것이 부의 상징이 되고, 삼성이 만든 아파트에 사는 게 재테크의 수단이 된 현실에서 어떻게 그들이 쳐놓은 촘촘한 그물망을 벗어나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 자신의 가치에 따라 행복을 구가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오히려 이런 고민이 진하면 진할수록 삶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고, 그로 인해 마지못해 사는 삶이 아닌, 진정 살고 싶어서 사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기존 욕망의 허구를 깨닫고 나의 가치를 찾아서 살아갈 때 기업도 부정적인 방식이 아닌 정당한 방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리라. 



▲ 결국 기업의 부도덕성은 기업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걸 방조하고 부추기는 우리의 잘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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